봉준호 | 괴물

꽤나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한국사회의 시스템 부재를 우울하게 응시하며 한국인들을 ‘집도 절도 없는 고아’ 선언 해버리는 <괴물>에 대해, 나까지 뻔한 말을 보태고 싶진 않다. 그냥, 참 슬펐다. 그렇게 고단하게 생존해야 하는 나, 당신, 우리, 우리 소시민들, 민중. 결국은, 어른이 죽는 게 아니라 어리디 어리고 자기 방어 능력 하나 없는 아이가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를 감싸다 죽는다. 이건 봉준호식 (차칸) 마초근성일 수도 있고(어리고 순전한 희생양은 <살인의 추억>에서도 등장했으니까), 약한 이가 더 약한 이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에 대한 봉준호식 죄책감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결국 딸이 유사-손자로 대체되는 건 확대가족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씁쓸했어.

하긴, 봉준호가 간절하게 찾아 헤매는 건 포악한 괴물의 아버지가 아닌, 희생적이고 착한 ‘아버지’니까. 그리고 그건, 봉준호만이 아니니까. 아버지와 장남 사이의 그 관계는 감히 차남도 딸도 끼어들 수 없는 관계인 게야. 어머니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고. (어머니는 장남의 주의를 분산시키거든.) 어쩔 수 있겠남. 그것이 상징이 작동하는 방식인데, 거기에 페미니즘을 들이미는 건 좀 우스워. 영화는, 있는 상징 공식을 사용하고 있을 뿐인걸. 근데 봉준호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긴 있나봐. 어머니라는 상징을 두려워하는 듯. 하긴,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남자아이에게 어머니는, 아이성을 상기시켜주는 존재밖에 안 될 거야. 애타게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두려운 존재인 건 당연할 거야. 아마도 그 아이들은 어머니란 존재가 절대로 이해되지 않을 거야.

변희봉(봉준호)과 백윤식(장준환). 성공적으로 부활한 아버지들.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음을 느끼는 30대 후반 아이들의 절실한 롤모델 찾기. 포악한 괴물같은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아버지를 살려내선, 다시 죽이고 싶어해. 그 아버지를 구해주고 싶어해. 그리고 아버지의 희생을 요구해. 아버지를 죽여본 아들만이 제대로 아버지가 되지 않겠어? 근데 대한민국 남자들은 아버지를 죽여본 역사가 없거든. 포악한 괴물일 뿐이었던 대한민국 남자들의 아버지는 아들이 채 자라기도 전에 어느 날 집도 절도 없는 외부인 손에 죽어버리거든. 괴물과 변희봉, 결국은 아버지의 양면인 게야. 죽여야 할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죽어주는 아버지. 살부의식이 드디어 완성됐어. (그런데, 죽여놓고 보니 그 괴물이 사실은 어머니였던 겐가? 자궁에서 끌어낸 세주잖아.) 봉준호의 다음 작품은 그래서, 어디로 튈까.

봉준호, 가장 상업적인 자본으로 가장 개인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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