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꼬마 지젝들

어설픈 꼬마 지젝들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철학자, 사상가, 사회 비평가로서의 지젝은 내 관심 상대가 아니고, 나는 훌륭한 영화평론가로서의 지젝을 높이 평가한다. 사람들이 참 잘 잊어먹는 게, 그가 기본적으로 영화광이란 사실이다. 지젝은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그것도 여러 번, 철저히 소화한 방대한 영화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가 쓰는 영화관련글들은 영화문법과 역사, 그리하여 하나의 텍스트가 위치한 거대한 줄기와 그 안에서의 그 텍스트의 위치와 그 의미를 잘 인지하고 있을 뿐아니라, 기본 텍스트에 아주 충실한, 그렇기에 기본 텍스트를 극복하는 글을 쓴다. 쇼트와 시퀀스, 영상 및 사운드의 편집의 리듬에 대한 언급은, 괜히 구색 맞추려고 쓰는 부분이 아니다.

헌데 지젝의 글을 읽어온 한국의 꼬마 지젝-지향자들은, 이걸 지젝 혹은 라캉의 이론에 따라 아무렇게나 (영화) 텍스트를 절단내도 된다고 받아들인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 자신 고유의 일관된 영화철학을 펼칠 수 있는 글을 쓸 능력이 되는 사람들마저 과도하게 지젝에게 기대며 심지어 지젝과 라캉의 이론에 따라 텍스트를 해체(극복이 아니다! 텍스트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자기 멋대로 분절시키는데!)해 버리곤 어설픈 꼬마 지젝이 되기를 자청한다. 도대체 왜? 영화든 문학이든, 하나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이론과 비평계 자체가 그것으로만 흘러가는 건 마치 영화 고유의 텍스트성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고유의 역사와 문법에 대한 통찰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지젝, 라캉 한 줄 인용하고 인상비평으로 일관하거나 아예 텍스트를 이론에 맞게 뜯어맞추는 글이 어떻게 영화평론이란 말인가? 그런 글을 쓰면 개나소나 영화평론가인가? 도대체 어쩌다 지젝이 영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군림하게 됐단 말인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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