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이 남긴 것

스크린수 622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그리고 <태풍>과 <역도산> 때에도 터져나온 스크린 잠식 현상에 대한 비명이 <괴물> 때 비로소 커다란 울림이 되어 나온 것은, <괴물>이 관객의 지지를 아주 단단히 받는 영화였기에 더욱 의미있다. 영화 <괴물>을 지지하지만 <괴물>을 둘러싼 영화시장의 현상은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 어쩌면 이것은 아직 근대화가 덜 된 채 자본이 마구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는 상태인 한국 영화시장에서 적어도 한 가지에 대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더할 수 없는 호기였다. 그러나 이문식의 의미있는 지적은 <플라이 대디> 홍보 과정에서의 멘트라며 평가절하 당했고, 김기덕의 꼬집기는 김기덕 감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함께 떠밀려갔다.

그 김기덕 감독이 출연했던 “백분토론”에 대해, 방송을 보지 못하고 아킬레스님의 친절하고 자세한 요약을 읽었다. 그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것이다. <괴물>의 스크린 점령 현상에 대해 시장의 논리를 들어 옹호했던 오기민 프로듀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외치며 적극적으로 스크린쿼타 사수 운동에 앞장서는 영화제작자이고, 그 현상을 비판했던 강한섭 교수는 역시 시장의 논리를 들어 스크린쿼타 축소쪽에 찬성을 했던 영화평론가라는 것이다.

YES24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이송희일 감독이 <괴물>과 영화적 다양성에 대해 쓴 글은, 오랜만에 참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글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비단 만들어진 영화의 국적뿐 아니라 이야기의 종류와 제작 형태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말이다. 나는 한미 FTA를 비판하고 스크린쿼타 축소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는데, 이것은 적어도 전세계의 영화가 자본과 기술과 전세계적 배급력을 앞세운 헐리웃 영화로 획일화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이 국내의 거대 자본을 지지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에도 반대한다. 오늘은 저예산 제작자이지만 내일은 큰 거 한 방을 꿈꾸는 영세 제작자들이 <괴물> 현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평소 그렇게도 크게 외치던 “문화적 다양성” 운운의 말을 먹고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가 간다고 해서 그걸 지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오기민 프로듀서를 비롯해 스크린쿼타 사수운동에 앞장서 있는 영화인들이 종종 하는 “시장의 논리가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국내영화 내에서도 적절한 곳에 적용시켜 주길 원한다. 영화노동자들의 빈곤한 노동현실 역시 한번 더 확인하기도 원한다.

관객으로서의 나는 철저하게 상업영화와 특히 블럭버스터들로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영화들을 주로 보러 다닌다. 하지만 내 취향이 그렇다고 해서, 또한 내가 봉감독을 무지 좋아하고 봉감독의 영화들을 또 무지 좋아한다고 해서, 지금의 영화시장이 국내 거대자본을 더욱 거대하게 키워주는 독과점 시스템이고 이것이 영화시장 전체와 나아가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다양한 영화들을 보고 싶기 때문에 스크린쿼타를 지지하며, 똑같은 이유로 <괴물>의 스크린 잠식 현상을 비판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프린트 벌수 제한일지 일정 수익의 독립영화 지원 의무화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한쪽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외쳤던 사람들이 <괴물>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을 때, 또 한쪽에선 바로 그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괴물>의 배급형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ps. 현재 한국영화계는 투자, 제작, 배급과 극장산업을 망라하는 CJ의 거대 독점체계가 이루어져 있고 그 뒤를 동양(제작/배급의 쇼박스-극장산업의 메가박스 라인) 및 시네마서비스(제작/배급)가 추격하고 있으며, 롯데시네마(배급/극장산업, 조만간 제작 및 투자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가 새로이 시장에서 물량공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의 동네 구석구석까지 CGV가 들어가 있고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프리머스도 공격적으로 멀티플렉스를 열고 있지만,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의 제작자와 감독은 극장을 잡지 못해 울상을 짓는 현상,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 “볼 영화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관객의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해지고 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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