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 라디오 스타

Radio Star

기본도 안 된 시나리오...


<라디오 스타>에 쏟아진 하나같이 호평일색의 반응을 보고 약간 당황했다. 이건 뭐랄까, 만인이 모두 ‘착하다’고 공언해준 사람을 보고 “그 사람 사실은 바보던데…”라고 느낌을 섣불리 입밖에 내놓는 게 왠지 판을 단단히 깨며 외려 내가 못되고 뾰죽한 사람으로 몰릴 것같은 그런 분위기. 영화가 다루는 건 두 남자의 – 어딜 봐서도 주류에서 단단히 밀려나 있는 – 우정과 연대이고, 누가 봐도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인데, 이 영화의 설정이 왜 그 따위냐고 투덜거리는 게 지극히 정당하다고 당연히 생각했다가 모두가 아니오!를 외치니 혼자 헷갈리는 판이랄까, 뭐 그렇다.


연출에 대해선 논하지 못하겠는 게, 일단 시나리오의 인물 설정이 심하게 거슬려서 연출 부분은 아예 찬찬히 볼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내 보다보다 최근에 이렇게 게으르고 부실한 기초공사 시나리오는 처음 봤다. 긴 머리에 가죽재킷과 선글라스, 절걱거리는 액세서리는 ‘메탈 보컬’의 외모인데 부르는 건 발라드고 더구나 80년대 후반에 ‘가수왕’을 받았다? 이 사람들아 서태지도 락 하겠다고 댄스 아이돌로 출발한 게 한국 가요판이다. 픽션이고 판타지라도 이건 너무하다. 차라리 아예 환상월드를 창조하던가, 이남이 이선희 박남정 늘어놓으며 실제 역사를 언급하고(그나마 트로트는 왜 빼먹어? 실제 88년 가수왕은 주현미라며?) 레드 제플린 딥퍼플에 너바나 들먹이면서 붕어가수 어쩌고 하는 거, 그거 이제 막 락 쪼금 듣기 시작한 중딩이 가요 무시하면서 내뱉는 ‘상상의’ 상투어구 아닌가? 게다가 신중현의 적자? 잘봐줘도 김경호 중딩 빠돌이가 신중현 이후 한국락은 김경호다! 라고 외치면서 어디서 슬쩍 (그것도 정확하지 못하게) 줏어들은 무식한 평론가의 무식한 글줄 몇 개 인용하는 꼴과 너무너무 똑같다, 그것도 이미 90년대 중후반에 (나를 포함한) 락 초짜들이 숱하게 해먹은 코미디인데 그걸 2000년대 중반에 극장에서 다시 봐야 한다고? 민망하기가 콩 심으면 콩나물 나온다고 외치는 세 살짜리 보는 것과 삐까삐까한 데다 신중현 선생에 대한 어마어마한 모욕이다. 근데 웃기게도 삽입된 영화음악들은 또 음악 좀 들은 까라가 아닌가. 죄다 신중현으로 조신하게. 마침 오지 오스본 듣고있던 J.가 이 노래엔 “Good Bye to Romance”가 딱인데 안 들어갔다고 했는데 “안그래도 넣으려다 저작권료 비싸서 뺐다”는 얘기 듣고 그럼 그렇지, 했다는. 게다가 이 영화가 이뤄내는 화해와 우정, 자체는 뭐 나름 좋은 시도인데 그게 호소하는 ‘복고 정서’ 역시 ‘너무 쉬운’ ‘상상의’ 정서라 불편.


그러므로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꽤 괜찮은 시놉시스를 갖고 초기 개발 설정에서 안주해버린 게을러터진 무자격의 시나리오를 무난하게 연출했는데 김양과 안성기와 음악이 한껏 살려놓았다, 가 되겠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빠이 분노다. 잘못쓴 시나리오와 싸구려 시나리오는 이해받을 수 있지만 게을러터진 시나리오는 비판이 아닌 경멸을 받아 마땅하고, 아주 괜찮을 수도 있었던 시놉을 게으름으로 망쳐놓은데다 신중현 선생에 대한 모욕 때문에 더욱 괘씸죄 추가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긴 말 필요없이 완전공감. 갠적으로 이렇게 이유없이 무조건적으로 착한 영화 진짜 별루에요.
    드디어 같이 욕할사람 하나 찾았다. 흐흐흐

  2. 이 영화와는 관련이 없지만 … 전 얼마 전에야 [왕의 남자]라는 것을 보고 … 솔직히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봤는지도 … 또한, 이슈가 되었는지도 … …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뭐 사람들에 따라서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아마도 제가 이상한 존재이겠지만 – 같이 본 집안의 어르신도 기대 이하라는 느낌을 말하시기도 했지만 … 요즘 한국 영화 – 특히, 흥행에서 대단한 성적을 올린 영화들의 내용은 외화내빈의 전형은 아닐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 왕의 남자>는 천만이 넘네마네 할 때 극장에서 보았는데, 저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전통적인 영화문법으론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고… 세 캐릭터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다른 부족함들을 메꾸고 넘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주로 캐릭터간의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는 듯하고요.
      이준익 감독 영화에선 현대 다른 영화들이 갖고 있지 않는 “데카당트한 정서”가 있는데, 그게 어떨 땐 퀴어하게, 어떨 땐 시니컬하게, 어떨 땐 살짝 빛바랜 팬시함을 덧입고 나타나는 듯합니다. 바로 그 점이 현대 관객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같고요.

    • 네, 귀여웠어요. ㅎ 특히 갸들의 코스프레 패션쇼! 아마 슬쩍 ‘비틀즈’의 앨범사진 하나가 패러디된 장면도 있었죠? 줄줄이 횡단보도 건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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