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나타나는 아이리시 코드들

한국에서 나오는 민족주의 얘기, 별로 안 좋아라 한다. 아니 좀 싫어라 한다. 물론 나 역시 “다케시마는 우리 땅” 소리에 허걱 하고, 친일 잔재 청산 못한 채 오히려 일본 잔재를 기본 토대로 삼아버린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몰역사성에 분노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란 것이 언제나 우리와 다른 사람을 가르고, 우리 안에서 맹목적이면서 다른 사람을 배제해 버리기에, 아무리 ‘저항담론’으로 민족주의 얘기가 중요하다는 건 인정해도, 지금에 와서 무조건 민족주의 외쳐버리면 짜증난다. 한민족이 아니라서 이주노동자 착취해도 되고, 같은 민족 아니어서 길가는 일본 사람 테러해 버리는 건 나쁜 일 아닌가. 또, 같은 민족이라고 정주영을 영웅 취급하는 것도 짱나고 말이다. (정주영 죽을 때 한총련에서 추도사 성명 발표했었다.) ‘같은 민족’이라며 억지로 동류의식을 강요받는 순간, 그 안에서 예를 들어 성차별이나 계급차별 같은 건, 장애인차별과 성적소수자 차별 같은 문제는 지워져 버리고 만다. 민족주의자들이 성차별이나 장애인문제를 비롯한 각종 소수자 문제에 둔감을 넘어서 무지로 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온갖 인종과 민족들이 드글대며 살아가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또 자신을 분명하게 ‘미국인’이라고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나의 뿌리”를 확인해 가는 작업으로서의 민족주의란, 이 좁은 땅덩이 위에서 비슷한 사람만 봐온 한국이란 나라에서 말하는 민족주의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소수인종학을 가르치고 있는 일레인 김이라는 훌륭한 학자가 썼던 글이, 나의 뿌리,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서 민족주의로 결론을 맺는 걸 보고 허걱!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 보라. 그 미국 땅에서 원래부터 기득권이었던 WASP (White Anglo-Saxon Protetant)는 굳이 민족의식, 자신의 뿌리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인종과 민족이 섞이고 여러 혈통이 섞인다 해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게 대체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동네를 이루고 살다보면, 그 동네별 특성이란 게 나오는 법이다. 게다가 고난과 차별을 당하고, 한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나라의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긍지와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작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신뢰와 사랑으로 뭉친 유사 가족이 피로 이어진 전통적인 가족을 대체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절망 속에서도 꿈을 찾는 사람들이 나누는 최고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다. ‘여성 복싱’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진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플롯에서 풀어내지만, 매끈하게 잘 만든 영화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노인의 지혜와 따스한 사랑이 곳곳에 배어있을 뿐 아니라 이를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훌륭한 테크닉까지.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 내,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그토록 오랜 고난과 한을 쌓아온 아일랜드계, 즉 아이리시들의 주체성이나 긍지 같은 걸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아이리시 코드를 살펴보고, 우리가 접해온 수많은 다른 영화들의 아이리시 코드를 잠깐 디벼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1.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드러나는 아이리시 코드들

먼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모태가 된 책, “불타는 로프(The Burning Roap)”를 쓴 F.X.툴은 아일랜드인이다. 당연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역할을 맡은 영화의 주인공 프랭키 던 역시 아일랜드 계통. 그는 스크랩(모건 프리먼)의 퉁박에도 불구하고 계속 게일어(아일랜드 전통어)를 들여다보고, 게일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 예이츠의 시를 즐겨읽는다. 미국식으로 퓨전화된 레몬파이가 아니라, (정통 아일랜드 식의) ‘수제’ 레몬파이를 먹는 게 인생의 낙이었기도 하고. (매기와 함께 레몬파이를 먹고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까지 말하는 건 먹는 것 갖고 오버한 거라기보다는 그런 향수를 표현한 것일 게다.) 그리고… 매기 역시 아이리시다. 미국인 이름들 중 ‘오하라 O’hara’나 ‘맥도날드 McDonald’, ’피츠제럴드 Fitzgerald’처럼 O’나 Mc, Fitz로 시작되는 라스트 네임은 그가 아일랜드 계통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원래 ~의 아들이란 뜻.)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다시피, 프랭키가 매기에게 선사하는 ‘모쿠슈라(Mo Cuishle)’라는 말은 게일어, 즉 아일랜드어인데, 이 이름이 새겨진 가운을 처음 입고 등장한 경기 장면에서, 그녀의 등판의 글자를 보고 관객들이 호들갑을 떨며 반응하던 것을 기억하는가? “등판에 글씨 봤어?” 사람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신기하고 특이한 이름이어서가 아니다. 그 이름이 바로, “나는 자랑스러운 아일랜드인”이라는 선언문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녀가 처음 그 이름을 걸고 나선 그 경기가 바로 영국땅에서 벌어진 영국 챔피언과 싸우는 경기였기 때문에 아이리쉬 관중들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됐던 것이다. 아일랜드인 소설 원작자가 굳이 모쿠슈라의 첫 경기장으로 영국을 택한 것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다른 유럽 원정경기를 생략한 채 이 장면을 스크린에 담은 것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모쿠슈라의 가운 색, 초록색은 아이리쉬의 최대 명절인 성 패트릭 데이의 상징색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이며, 그 날을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초록색과 네잎 클로버이다. 그냥 초록색이면 우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게일어로 된 별명이 새겨진 초록색 가운은, 그냥 초록 가운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아이리시를 상징하는 가운인 것이다.

이후 경기장마다 모쿠슈라를 환호하는 사람들은, 그저 권투 잘 하는 선수 하나를 응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이리쉬의 전통을 내걸고 아이리쉬의 긍지와 주체성을 전면에 표현한 자신들의 대표주자를 응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헤비급이건 뭐건 미국에서 차례대로 선수들을 이기는 어떤 황인선수가 영어로 된 이름이나 단어가 아닌 한글로 “내 사랑”이라고 쓴, 청색과 붉은 색이 섞인 가운을 입고 매 경기에 출전한다면, 그리하여 첫회 KO승으로 연승을 거둔다면, 미국 내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밑바닥 한국 출신 미국인들에게 과연 어떤 긍지와 자부심을 줄지 말이다. 어쩌면 매기가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다 이긴 게임에서 결국 상대의 반칙으로 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고단하고 한 많은 역사와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2. 다양한 영화들에서 드러나는 고난과 한의 이름, 아이리시

원래 영국 본토에서 살고 있던 토박이들은 켈트인(혹은 셀트인)들이다. 아이리시의 선조들. 하지만 이 땅에 앵글로-색슨 족이 들어오면서 땅을 두고 싸우게 되고, 결국 켈트인들은 계속해서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역사적 저항과 반발심이 만들어낸 켈트 영웅이 바로 아더왕이다. 작년에 개봉한 클라이브 오언의 <킹 아서>은 바로 이 시기를 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적인 이야기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아더를 비롯해 갤러해드, 랜슬롯 등의 원탁의 기사들과 귀네비어가 모두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켈트인들, 그것도 여러 핏줄이 섞이기 이전의 켈트인들이기 때문이다.

영국 본토에서 주도권을 차지한 앵글로-색슨 족은 일찌감치 왕조를 열었고, 켈트인들은 잉글랜드로 흡수되거나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고 또 지금의 아일랜드 지역에 모여살게 되는데, 특히 지금의 아일랜드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자신들의 문화를 강하게 보존해오게 된다. 영국은 잉글랜드를 기반으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합병해 브리튼 제국을 경영하게 된다. 노르만인이 앵글로-색슨족을 접수한 이후에도, 아일랜드는 영국 왕에 따라 때로는 브리튼 왕의 간섭을 받는 자치 왕(종주왕) 하에 자치를 하기도, 영국 본토의 직접 통치를 받기도 했지만, 결코 독립을 위한 봉기를 멈춰본 적이 없다. 결정적으로, 영국 왕이 국교를 영국 국교로 전환하고 난 후에도 아일랜드인들은 카톨릭을 고수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인 대다수에겐 위대한 왕일지 모르지만,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착취와 차별과 직접통치, 그리고 개종을 강요한 왕인 것이다.

1800년에 아일랜드가 법적으로 대영제국에 통합된 이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더욱 거세졌으며, 결국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이루어내어 아일랜드 공화국(그 이전은 에이레, 수도는 더블린)을 성립하긴 하지만, 이것은 아일랜드 섬의 일부일 뿐이다. 영국이 영국 잉글랜드의 본토인들을 역사적으로 계속 이주시켜 잉글랜드인과 아일랜드인들이 혼재된 북 아일랜드는 여러 모로 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여기에서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IRA와 잉글랜드인들 사이의 반목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일랜드 분쟁’의 배경인 것이다. 우리가 ‘피의 일요일’이라 알고 있는 사건 – 영화 <블러디 선데이>, U2의 노래 “Sunday Bloody Sunday” 등 – 역시,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아일랜드인들을 향해 영국이 무기로 진압한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더 복서> 등을 감독한 짐 쉐리단의 일련의 작품들이나 테리 조지 감독의 <어느 어머니의 아들>은, 바로 이러한 바로 이러한 긴장 속에서 아이리시들이 부당하게 받은 탄압을 고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형편이니 과연 아일랜드 사람들의 박탈감이 어떻겠는가. 영국 본토에 의해 계속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계속 독립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더욱 영국 본토에서 아무리 개발과 발전이 이루어진다 한들 아일랜드는 여전히 못 사는 동네에 불과할 뿐이다. 영국 내에서도 변방에 변방일 수밖에 없는. 알란 파커 감독의 전설적인 음악영화 <코미트먼트>에서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흑인이다”라는 대사까지 나오는 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IRA, 즉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가 무장 투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의외로 IRA가 등장하는 굉장히 많은 영화를 보아왔다. 존 부어맨 감독의 <제너럴>은 배경이 더블린이다. 바로 아일린드 공화국의 수도. <제너럴>의 영어가 도통 알아먹기 힘든 영어인 것은, 아이리시의 ‘사투리 영어’이기 때문이다. ‘장군’이라 불리던 도둑왕 마틴 카힐이 총을 맞는 것은 IRA한테서인데, 그가 아일랜드의 보물격인 명화들을 바로 왕당파 – 즉 영국 본토의 왕을 지지하는 – 에게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닐 조단 감독의 경우,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헌신한 아이리시 영웅 마이클 콜린즈에 관해 만든 영화가 바로 리암 니슨이 열연한 <마이클 콜린즈>. <크라잉 게임>은 좀 별난 로맨스가 아니라, 사실 매우 정치적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영화다. 우리의 주인공 스테판 리가 바로 IRA의 일원이며, 그가 억류했던 영국인 병사인 포레스트 휘태커는, 정통 앵글로-색슨인이 아니라 흑인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만나게 되는 제이드 데이비슨은 흑인 혼혈에 트랜스젠더. 이쯤 되면 이 영화는 결국 소수자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죽일 수밖에 없는 모순을 사랑을 통해 화해를 시도하는 영화가 아닌가 해석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돌아와 보면, 매기가 아버지와 갔던 곳이라며 프랭키를 데려가는 파이집 이름이 바로 IRA ROADSIDE DINER이다. IRA는 ‘아이라’라는 여성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IRA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으로 가보자. 아일랜드인들이 대거 미국땅에 발을 딛는 건 19세기 발생한 감자기근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아일랜드인들은 미국행을 택하기도, 영국행을 택하기도 했지만, 영국으로 갔던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정부에 의해 미국행을 강요받았다. 이 결과 이 시기에 대규모 아이리시의 미국 이민이 이루어진다. 고국에서 재산깨나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야 새로운 신천지 미국땅에서 새로운 농장을 일구며 부를 축적하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이루는 건 당연한 일. 아마도 아일랜드 이민사에 대해서는 톰 크루즈 주연의 <파 앤 어웨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리시들은 미국에 막 이민왔던 당시 ‘흑인 금지’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인 금지’ 팻말의 차별을 당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은 언제나 가난과 함께 심화되는 법. 그렇기에 그런 삶은 소방관이나 경찰처럼 말급의 공무원 진출이나 적극적인 정계진출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암흑의 세계에도 빠르게 진출한다. 지금이야 미국 갱영화 하면 <대부>를 비롯한 이탈리아 계통의 마피아를 떠올리지만, <대부>의 알 카포네가 자기 권력을 확립하면서 축출해낸 이전 갱이 바로 아이리시 갱 두목인 오배니언이었다. 코엔 형제의 누아르 걸작 <밀러스 크로싱>은 바로 아이리시 갱들 사이 세력다툼을 그린 영화다. 갱과 노동조합의 결탁을 고발했던 영화들, 예컨대 <워터프론트> 같은 영화는 바로 아이리시 갱과 아이리시 노동조합의 결탁을 고발하는 영화들이다.

미국영화에서 또 재미있는 건 경찰과 소방관들이 대강 아이리시인으로 표현된다는 사실. 지금도 미국 전체 경찰의 1% 이상이 아이리시라 한다.<분노의 역류>에서 소방관들의 장례식에 백파이프가 동원되는 건, 미국의 소방관들의 꽤 많은 퍼센테이지가 아이리시이기 때문이다. (‘백파이프’하면 바로 생각나시리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가 푸른 곰과 싸우는 웰터급 타이틀 매치를 할 때 프랭키가 “밴드도 불렀다”며 백파이프 연주자들의 뒤를 따라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장면을.) 이는 가난하고 전문기술이 없는 밑바닥 사람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기 위해 선택한 직업들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서부극에서 유난히 아이리시들이 많이 활약하는 현상도 이해가 된다. 대거 이민 당시 벌어진 남북전쟁에 아이리시들이 참전을 많이 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이 서부를 떠돌게 된 것.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의 영웅 존 웨인이 바로 아이리시다. 존 포드의 또다른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 극단의 빈곤으로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이들 역시 아이리시 가정들이다.

원래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도 90% 이상이 카톨릭을 믿는다. 주로 미국에서 터를 잡은 대다수의 아일랜드 출신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백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백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가 아닌 성당인 것.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도 ‘교회’가 아닌 ‘성당’이, 목사가 아닌 ‘신부’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리시 계통이기 때문이다.

3. 소중한, 나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렇게 아이리시 코드들을 살펴보면, 이 영화에서 프랭키가 매기를 향해 모쿠슈라, 즉 “내 소중한 나의 혈육”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조금 더 다면적으로 다가오고, 또한 사람들이 그토록 ‘모쿠슈라’를 연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조금더 짠하게 다가온다. 혹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매기가 경기를 벌이는 경기장 안에서 그녀를 응원하는 관중들은 심지어 아일랜드 국기를 들고 있기까지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보수성이 더욱 드러난다.

실제 자신의 피를 나눈 딸과 소식이 끊겨버린 그에게 ‘의붓딸’과도 같은 매기는, 아이리시들 특유의 문화습성을 가지고 있긴 해도 특별히 자기 뿌리에 대한 열망은 없다. 그녀는 자신의 팬들이 주로 아이리시라는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고, 병상에 누워서는 프랭키에게 “또 그놈의 잘난 게일 책 봐요?”라고 묻는다. 게일어 책을 노상 들여다보고 예이츠의 시에 심취한 프랭키와는 완전히 다르다. (예이츠의 시는 아일랜드의 전통문화유산을 영국의 문학 전통에서 새로이 정립하고자 했던 흐름에 서 있다.) 이들이 유사 부녀간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보수적인 사람으로 하여간 아들래미가 아닌 새로운 딸래미를 훈련시키고, 또 안락사하게 하는 정이란, 시대의 변화를 맞이한 진정한 보수주의자이기에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결단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엔 아주 흐릿하게, 아이리시로서의 정체성이 놓여있고.

원래 민족주의란 보수적인 것이다. 우리 가족, 우리 민족, ‘우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우리’를 만들어가는 테두리를 어떻게 놓을 것이냐에 따라, 유연성있는 보수와 꼴통 보수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겐, 제대로된 보수주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립다. 똥배짱 부리면서 자식들을 쥐어패는 보수주의자 아버지가 아니라, 자식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접고서 자식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보수주의자 아버지. 또한 다른 이를 기꺼이, 자신의 가족으로, 혈육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수주의자 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식의 보수주의가 놀라운 건, 원래 제대로된 보수주의가 그래야 하듯 넓디넓은 포용력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어느 한 구석은 찜찜한 느낌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의 전작인 <미스틱 리버>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나는 두 번 전율했는데, 한 번은 이 영화가 너무나 완성도 높은 걸작이기 때문이었고, 또 한 번은 가족주의와 가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4. 사족

미국이란 나라는 내가 어느 민족 출신이냐보다 내가 어느 국적의 사람이냐가 더 중요한 나라다.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살려면 그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흔히 재미교포 2세, 3세가 한국어도 못한다고 욕하는 한국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것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하며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으로 가족나무를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미덕, 그것이 특히 눈으로 척 보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살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미덕이다. 다양한 문화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유한 문화습성을 서로 알고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공존’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살펴본 아이리시 코드는 영화 전체를 관통해서 일관되게 나타나긴 하지만, 아이리쉬가 아닌 이들을 배척한다거나 미국 내 소 아일랜드를 세우자는 시도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함께 사는 와중에 자신의 뿌리라는 걸 조금 더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막말로 아이리시가 아니라고 해서 매기의 팬이 못되는 것도,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며 감동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 글은, 어차피 한국에서만 살 사람이라면 별로 읽을 필요도 없지만, 미국영화를 조금 더 재미있게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며 쓴 글이다. 이런 사족을 덧붙이는 것은 딴 게 아니라, 이 글에서 짚어본 아이리시 코드를 과도하게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나올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서적 : 빅자향, [영국사 –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오치 미치오 외, [마이너리티의 헐리웃]
그 외에, 최초의 글쓸 의욕의 자극이 된 엽기민원의 한 마디, 성 패트릭 데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고 이 글의 기획에 확신을 주신 마야님께 감사를.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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