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 마술은 속삭인다




신문기사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던져준다. 물론 이들의 관계와 연관성은 책장을 펼칠수록 촘촘하게 직교하고 마침내 강력한 중앙으로 모이며 미스테리는 밝혀진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만약 전형적인 추리/미스테리 소설의 구조만 갖고 있었다면, 아무리 지인이 편집해낸 책이라 해도 내 관심을 그렇게 끌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사건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그저 작가의 장기판 말로만 존재하는 추리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추리소설계의 여왕인 애거서 크리스티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도, 하필 내가 사춘기에 접한 두어 권의 책이 딱 그랬기 때문이다. 그저 게임만 존재하는. 사건의 범인만 지목하면 끝인. 하지만 추리소설은 언제나 범죄를 다루기 마련이고, 범죄란 인간의 왜곡된 소망과 욕망, 갈등과 불안과 공포와 애증이 서로 꽈리를 틀며 얽혀있다. 내가 좋아한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것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 ‘상처’라는 것은 좀더 나이가 들고서야 깨닫게 됐지만.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는 고등학생인 주인공뿐 아니라,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의 상처와 깨달음과 아픔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작가의 손길, 그리하여 범인의 지목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면하게 된 상처의 뒷수습과 선택의 기로가 소설의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이루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책을 출판한 북스피어에서 준비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소설에도 큰 기대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으면 절대 안 된다. 뒷부분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던 나는, 워낙 책에 푹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서 내렸고, 다시 반대편에서 타면서 또 순간적으로 책에 빠져들어 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또다시 역을 지나쳐 버렸다. 시간이 남아도는 백수인지라 두 시간이나 일찍 집에서 나서지 않았다면 분명 약속시간에 한참 늦어서 약속 상대를 당황케 했을 만한 사건이다. 이 소설은 확실히, 중반부에 접어들면 책장이 언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푹 빠지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장까지 넘기고 나면, 그제서야 아니 이 책을 내가 언제 다 읽었나, 하면서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한번 빠른 속도로 읽고 말 책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푸는 게임만 담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내면을, 그 공포와 두려움과 용기와 슬픔을,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좀더 찬찬히 음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누가 봐도 자살인 사건들이 사실은 타살이라는 사실 뒤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사실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 비밀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물들의 동기와 내면이기 때문이다.


자물쇠를 딸 수 있는 능력은, 자물쇠를 보았을 때 따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결단력과 올곧은 도덕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으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 그리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았을 때, 그 능력은 남을, 그리고 자신을 파괴시킨다. 그리고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혹은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라…’라며 변명을 하게 된다. 최악은 다른 사람을 파괴시키면서도 그게 죄인지 잘못인지 깨닫지조차 못하는 것. 모자장수님이 언제나 강조하시고 나 역시 동의하는 대로, 결국 멍청함은 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악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인간이기도 한 것을…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성실한 것. 난 일이 몰렸답시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건만.

  2. 아닛 노바리님의 지인분께서 편집하셨나요 전 아는 사람이 이 책낸 회사에 다녀서 이 책 선물받았는데 하하 ; 저도 이거 너무 재밋게 봤어요 ! 처음에 볼땐 별로였는데 뒤로 갈수록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

    • 앗, 그 회사 직원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 제가 아는 분이 혹시 담패설님이 아는 분이 아닌가 싶네요. 하하;;

    • 근디 담양은 나도 못 받은 책을 누구한테 받았삼? 재주 좋네.

    • 닥택은광 / 그러게 인덕을 쌓으셔야 한다니깐요. 아무리 층이 달라도 그렇지. ㅎㅎ 책 재밌어요, 꼭 읽어보세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