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로치 | 미트 페어런츠

분명히, 한동안 벤 스틸러의 영화를 찾아보면서 심지어 <디재스터>도 봤는데, 그리고 제이 로치 영화 찾아보면서 심지어 <알라스카, 미스테리>도 봤는데, <미트 페어런츠>는 분명히 봤을 법한 영화이건만 마치 처음 보는 영화 같다. 아니, 정말로 처음 보는 영화인가봐. 번역 마감으로 쫓기는 와중에 왜 하필 케이블에서 이걸 해주냐고. 그래서… 봤다.


젠장, 보면 볼수록 잭(로버트 드니로)은 요다/윈두, 그렉(벤 스틸러)은 아나킨으로 보이는 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그 온갖 실수들이 벤 스틸러가 븅신 같아서 혹은 악해서 일어나는 실수들이냐고. 처음부터 사시미 눈깔 뜨고 사람을 그딴 식으로 몰아가니까 소심한 인간이 잘 해 보려고 버둥버둥대다가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이런 영화는 사실 코미디가 아니라 재난영화다. 난 이런 류의 영화를 코미디로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정말로 부러워한다. 그 사람은, 벤 스틸러같은 실수들을 별로 안 하고 주변에서 능력있고 똑똑하다고 인정받으며 사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민망한 실수도 웃음으로, 인생의 해프닝으로 여길 줄 아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일 테니까. 어차피 나는 전자는 절대로 못 되니 후자나 되었으면 좋겠다.


그렉 수난곡…

근데 이 영화에서 벤 스틸러 캐릭터가 내게 감동을 준 건, 되지도 않을 임기응변으로 이래저래 하다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맹하게 굴고, 거짓말을 해도, 본질적인 면에서 언제나 진실하고 성실하며 착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난 일단 이런 사람이 너무 좋다. 근성과 배알이란 게 또 없진 않아서 비록 카메라를 향해서이긴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장인에게 ‘덤벼봐~’ 하면서 쿵푸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눈 똑바로 뜨고 대들면서 자기 할 말을 하는 데다 상황 역전도 시켜버리더란 것이다. 공항 사무실에서 거의 ‘취조당하며’ 거짓말 탐지를 받던 벤 스틸러가 어느 순간 로버트 드니로에게 취조를 퍼붓는 걸 보면서 어찌나 벤 스틸러가 늠름하고 멋있게 보이던지.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든 생각. 그 막나가던 꼴통 장인도 딸의 행복을 위해 그 마음에 한참 안 차고 뒷꼭지마저 미워죽겠는 사윗감을 잡으러 달려가는데, 우리 아나킨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보인 게 과연 누가 있었나 하는 거다. 아무리 그 애가 제다이고 초우즌 원이라 한들, 한창 피끓는 이십대 초반 어리디 어린 애한테 사시미 눈깔을 뜨고 이거 해봐, 저거 해봐, 그러다 부족한 거 나오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넌 역시 그 따위야, 이러면서 애 몰아세우고, 돌이킬 기회라는 건 단 한 번도 줄 생각도 않고, 엄한 짓거리나 시키고, 애가 왜 그 따위로 막 나가는지에 대해 정말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게다가 더 용서가 안 되는 건, 요다가 900년간 제다이를 훈련시킨 노인네란 거다. 평범한 휴머노이드 세계에서도 개망나니 출신이 나이 칠십이 되어 현자가 되는 일이 가뭄에 콩나는 격이나마 생기긴 생기는데, 최고 제다이라면서 구백살이나 처먹으며 그간 온갖 볼 꼴 못 볼 꼴에 온갖 종류의 제다이들 다 보고 훈련시켰을 노인네가 그따위로밖에 굴지 못한다는 건, 진정 용서가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요다를 이렇게 불경하게 부르게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사랑이 요물이여…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를 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트레이닝하는 게 아니라, 사시미 눈을 뜨고 잘 하나 못 하나 감시하면서 일일이 점수 매기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 길이 옳으니 무조건 내 길로 오라고 멱살잡고 끄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믿고, 내가 줄 수 있는 걸 주며, 헌신하는 것일 게다. 그게 부모 자식 간이든, 연인간이든, 자매간이든, 친구간이든. 자신에게 떳떳하고, 그 떳떳함과 자긍심으로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 그저 욕망이 아닌, 그저 내 옆에 두고픈 것이 아닌, 상대의 행복을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 벤 스틸러처럼. 혹은 막판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그러므로 나는, 저 요다가 아니라, 아나킨도 아니라, 모자라긴 해도 벤 스틸러가 되기 위해, 내 사람관계를 다시 돌아봐야 할 듯하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