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 미인의 가면




무려 2년만에야 출간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의 3권. 2권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넘어왔기 때문에 단번에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음마 라모츠웨는 정부 관료 – 이자 대추장의 친척 – 가 찾아와서 일을 의뢰하는 유명한 탐정이 되었다. 조수 탐정 마쿠치 부인은 2권에서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품게 하더니 3권에 오면 음마 라모츠웨와는 또다른 능력으로 라모츠웨만큼이나 카리스마를 가진 또다른 여자주인공이 된다. 오죽하면, 이 세번째 권이 취하고 있는 제목은 음마 라모츠웨가 아니라 마쿠치 부인이 해결한 사건이다. 게다가 그녀는 매 권마다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데, 1권에서는 그저 비서에 불과했다면, 2권에서 조수 탐정으로서 초짜 탐정일을 시작하고, 3권에서는 유능한 중간관리자로 변신을 한다. 마테코니 씨가 잘 다루지 못하던 날라리 수습공 둘을 어떤 방법으로인지는 몰라도 꽉 잡고 열심히 일하는 애들로 바꿔놓다니. 게다가 마테코니 씨가 직접 맡아서 할 때보다 정비소 운영도 더 잘 되지 않는가. 그러면서 탐정으로서도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준다.


1권과 2권에서 대형사건 하나가 중심 줄기를 이루고 다른 소소한 사건들이 가지를 이루었던 것과 달리, 3권에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두꺼운 줄기 사건이 없다. 각각 음마 라모츠웨가 맡은 ‘독살미수 의혹’과 마쿠치 부인이 맡은 ‘미인대회 후보 뒷조사’를 꼽는다고 해도, 딱히 이 두 사건이 중심 줄기를 이룬다고 보긴 어려우며, 이 두 사건만큼은 아니어도 야생소년의 미스터리는 가지 사건으로 보기엔 좀 굵다. 게다가 이 에피소드는 부분과 부분이 앞과 뒤에 너무 벌어져 있고. 게다가 어쩌면 4권에 가서는 주인공이 역전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워낙에 마쿠치 부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지라 책이 좀 많이 산만하다.


그런데 내가 재미있었던 건, 오히려 3권에서의 중심은 의뢰받은 사건이 아니라, 1권과 2권에서는 부수적인 서브 플롯으로만 기능했던,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 사이의 관계의 진행이라는 점이다. 마테코니 씨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영국에서 그토록 사랑받은 이유는, 뭔가 심각한 게 나올 듯 나올 듯하다가 안 나와버리는 데에서 느껴지는 허탈감 그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정말로 마테코니 씨한테 무슨 숨겨진 비밀(…)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우울증이었다니. 아아, 이 책의 앞 두 권을 읽고도 또 속다니, 하며 허탈감을 느꼈다. (2권에서 가정부가 범행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잡혀들어갔을 때 얼마나 허탈했는지를 그새 잊어먹었단 말이냐!) 그런데 그 허탈감이, 싫지가 않다. 뭐랄까, 어쩌면 내가 너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지 않는가, 내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오히려 들 정도였다.


그런데 마테코니 씨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설정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3권의 중심이라고 한 진짜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애의 권태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의 연애를 중심으로 1권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연애의 일반적인 과정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1권 대쉬 및 커플주아 탄생, 2권 연애 초기의 닭살 염장기, 3권 중고 커플의 권태기. 마테코니 씨의 우울증을 핑계로 묘사되는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 사이의 관계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보라. 매일 같이 먹던 저녁식사도 각자 해결해, 만나는 횟수도 줄어, 뭔 말을 해도 무덤덤하고 무관심해, 전화를 해도 시큰둥해, 애정표현도 별로 없어, 출장갔다가 돌아와서도 자기 볼일 다 본 다음에야 만나러 가… 이 커플, 정말 결혼을 하긴 하게 되는 걸까? 막 연애 초기라 그토록 열정적이고 호들갑스럽게 애정표현이 연발되던 2권과 정말 비교된다.


권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느냐 깨지느냐가 귀로에 설 텐데, 맨 마지막, 자신의 ‘다른 일’을 찾으며 조금씩 우울증에서 헤어나오고 있는 마테코니 씨, 그리고 그를 억지로 끌어 산에 함께 올라 서로 미소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 이들은 어쨌건 첫번째 위기는 무사히 넘긴 것같다. 그러나 서로 대판 싸우고 토라졌다가 화해한 거라면 몰라도, 이런 식의 위기는 두번째 위기를 불러온다는 게, 별로 많지도 않은 연애 경험상의 내 결론이다. 아니, 이들이 오히려 ‘비 온 뒤 땅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더욱 내밀하고 가까워진다면, 나는 오히려 사랑에 희망을 가질 테다. (… 연애 무능력자 티는 다 내고 있다;;)


3권이 2년만에 나왔으니 4권은 2008년에야 나오려나? 과연 마쿠치 부인의 능력은 어디까지일지, 그 수습공들은 어찌 될지,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들이 2권에서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한 남매는 또 어찌될지 참 궁금한데, 도대체 4권이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이래서 시리즈물은 완결된 다음에 한꺼번에 사서 한번에 읽어치워야 하는데, 4, 5권 나오길 응원하겠다고 덥썩 1~3권을 사버렸으니, 독자로서는 사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서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도다. 부디 북앳북스에서 4, 5권을 마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내 주시길 바란다.


 


ps. 근데… 2권에선 마테코니 씨가 상의없이 아이들을 데려오더니, 3권에선 음마 라모츠웨가 상의없이 마테코니 씨 정비소로 사무실을 들여가고, 마쿠치 부인을 승진시킨다.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이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작가의 ‘실수’일까, 아니면 그게 아프리카 식인 걸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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