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 | 수면의 과학

제목을 한국말로 옮기니 어째 좀 딱딱하죠?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엉겁결에 <수면의 과학>을 봤네요. 극장 안에서 너무 자주 퍼져나가는 웃음소리가 조금 강박적으로 들려 불편했지만,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아마도 대부분 아아 너무 귀여운 / 즐거운 영화였어 – 하며 자리를 일어설 것같은 그 타임에, 저는 한 방울 눈물이 나오더군요. 아마도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처절한 몸부림 뒤에 있는 좌절, 그것이 곧 감독의 좌절과 냉소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소통은 이토록이나 힘들고, 사랑 역시 그래서 불가능하다는,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거라는 그 좌절과 암울한 비관을 조용히 읊조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스테판의 꿈일 뿐이잖아요. 꿈에서야 스테판과 스테파니(샤를로트 갱스부르)는 함께 골든포니보이를 타고 달리지만, 현실에서 그는 모처럼 어렵게 잡은 데이트 약속도 지키지 못합니다. 꿈과 현실이 마구 뒤섞이는 증상을 겪고있는 스테판, 이라는 건 좋게 표현한 거고, 그러니까 결국, “나는 미쳐가고 있어”잖아요. 내 인식이 창조해내는 대상과 실제 대상이 다르다는 건 오래된 철학적 명제고 누구나 아는 거지만, 꿈과 현실이 뒤섞인 미친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내는 대상, 그 인식이 실제 인물과 너무 동떨어져 저 혼자 폭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안에서 나의 사랑은 저쪽에 가 닿을 수도 없고, 소통은 결국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내 꿈과 연결됐어! 우리가 서로 연결된 거야!”라는 스테판의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입니다. 그는 꿈결에 자기가 정말로 쪽지를 써서 밀어넣었단 걸 꿈에서 깨어나 분명히 확인했고 되찾아왔어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편지의 글귀를 그녀가 읊었을 때 그녀가 봤구나! 라고 추측하지 그녀가 내 두뇌와 연결됐어!라고 추측하진 않습니다. 나아가 내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쪽지를 읽었다!라고 우기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건 스테판의 이상형에 스테파니를, 현실을 끼워맞추는 짓이에요. 자신을 속이는 짓인 걸 알기에 결국은 데이트장 바로 앞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겠죠.


세 분 다 아주 귀엽습니다... 하하


안타깝게도 스테판은 자기 세계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그게 그의 본질인데요. 원래 에고가 강한 사람들은 ‘꿈과 현실이 섞인다’가 됐건 ‘내가 살짝 미쳐있다’가 됐건, 아니면 ‘내가 좀 싸이코다’가 됐건, 자신이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들을 하나씩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소통의, 사랑의 실패를 그 이유로 돌리지요. 실은 자기 세계 바깥의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인데도요. 그 누군가조차도 자신의 세계의 질서를 철저히 따라야 하죠. 스테판의 꿈 속에서 스테파니가 완벽하게 존재했던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특히 연애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열고 상대를 들여 일부를 파괴하고 재정립하면서, 또한 상대의 세계에 들어가 일부를 고리로 연결하면서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솔밤님도 지적하셨지만 현실에서 스테판은 스테파니와 연인관계를 시작해 보지도 못해요. 스테파니가 다른 사람과 춤을 춘 것만으로, 스테파니에겐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를 발전시키면서 자신을 배신당한 가련한 연인으로 위치짓지요. 스테판은 누군가와 그렇게 연애관계를 맺는다는 게 힘든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가오는 사람을 밀쳐내는 방법, 그러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방법엔 스테판이 써먹은 것도 꽤 좋은 스킬이긴 합니다. 먼저 폭주하고 자신이 배신당하는 포지션을 취하는 것. 그래서 질려서 스스로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것. 아마 스테파니가 안경 쓴 모습이 좋다는 말도 그냥 농담이 아닐 겁니다. 안녕은 세상을 좀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나와 상대 사이에 놓인 장벽의 상징을 갖고 있기도 하죠. 그 안경은, 자신이 아니라 스테파니가 쓴 것이어야 할 테고요.


알랭 샤바가 직장상사 '기'로 출연해 호연을 보여줍니다


스테판은 몸만 큰 어린아이입니다. 하지만 그가 밉지 않은 건, 자신의 어린아이적 특성을 굳이 부정하지도, 감추지도, 어른 흉내를 내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겠죠. 대부분 우리가 현실에서 ‘찌질남’들을 경멸하는 건, 그 사람의 어린아이가 너무 또렷이 보이는데도 그 자신은 어른의 가면으로 상대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오만을 부리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 그 어른의 가면을 더욱 두텁게 쓰고 권위를 내세우면서 막상 책임을 져야 할 때엔 자신이 원래 어린아이라고 무기로 내세우며 되도않을 언어적, 감정적 폭력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현대사회는, 굳이 성인 남자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는… 이쁘거나 원체 돈 많은 집 딸래미여야 가능하죠. ㅎㅎ


빠른 시일 내에 <이터널 선샤인>을 꼭 찾아봐야겠습니다. 미셸 공드리 이 사람, 솜씨가 정말 대단하군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세상에, 너무 예쁘고 너무 귀엽습니다! 이 녀석은 진정한 옴므파탈(Homme Fatal)이라니까요.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언제 봐도 얼굴이 참 우울합니다. 마치 자살시도 하고 정신과 치료 받은지 3개월 정도 된 사람같은 표정. 뭐,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어서 한번씩 다시 보게 되긴 하지만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1 Comments

  1. 휴먼 네이쳐 / 이터널 선샤인과 달리 찰리 카우프만이 참여하지 않았다길래, 별로 볼 마음이 없었는데..

    노바리님의 포스트를 읽고는 꼭 보고 싶어져서, 오늘 광화문 씨네큐브에 가려고 합니다. ㅎㅎ

  2. 저는 보고서 내내 씁쓸했죠. < 먼 네이처>와 < 터널 선샤인>을 워낙 좋게 봤기에, 찰리 카우프만의 부재를 뭐 있겠어 하다가 없는 티 너무 심하네 하고 말았네요.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기 곤란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느나, 이처럼 대책 없이 자기라는 쇠감옥 속에서 지극히 산만한 망상을 통해 현실에서는 끈임없이 퇴행하는 스테판을 바라보는 것은 참 괴롭더군요. 게다가 상대가 제가 어여뻐라 하는 샤를롯 갱스부르라 더더욱… ^^;

  3. hs / 재미있게 보셨나요? ^^

    자일 / 두 작품을 안 봐서 자일님 말씀에 토달기가 좀 그렇지만… 근데 전, “사춘기에 머물러버린 어른”이라는 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거든요. 한국에선 아직 이게 본격적으로 사고되진 않고 있지만, 곧 일반화될 거란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닉 혼비 – 잘 아시겠지만, 피버피치, 어바웃 어 보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등의 원작소설가 – 의 소설들이 그걸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 역시 전 그저 퇴행으로 보기보다는, 그런 시각으로 보고 싶었어요. 닉 혼비 소설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지만, 스테판은 아직 찾지를 못한 것일 뿐. 전 현대인들이 모두, 어른인 척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남자들은 더욱. 스테판은 적어도, 어른인 척은 안 하잖아요. 어쩌면 그게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또다른 종류의 어른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 면의 과학>은 그런 ‘대체된 어른스러움’까지 나가진 않지만…

    그리고…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건, 찾아보니 ‘정신분열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더군요. 현대인들은 (거의 대부분) 정신분열증 환자인 게 분명하니, 어쩌면 < 면의 과학>이 보여주는 건 현대인들의 근미래에 관한 암울한 디스토피아는 아닐까요. 하하;;

  4. 아아..저는 이터널선샤인보다 백만배는 재밌게 봤어요.

    아마 제가 ‘몸만 큰 어린 아이’라는 사실을 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테죠..

    평소의 현실에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다가..(모두들 멋드러진 가면을 쓰고 있잖아요ㅎㅎ)
    영화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누리다 왔습니다..

    감사해요.. 노바리님^^

    • 이미 있는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쓴 것 뿐인걸요. 감사는 미셸 공드리에게… ^^;
      소설 무용론자가 아니시라면, 나중에 닉 혼비 소설들을 한번 시도해 보세요. < 랑도 리콜이 되나요> < 바웃 어 보이> 등등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이에요. 축구를 좋아하신다면, 특히 [피버 피치]를 강력추천합니다. ^^;

  5. 아무래도 도식적인 ‘어른’의 틀로 영화와 스테판을 보기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스테판이 여섯살 이후로 현실과 상상을 분간 못한다고 하는데, 그 점에서 저는 일부러 성장을 거부, 즉 성장의 강요로부터 저항한 게 아니라 그저 발달단계에서 그저 멈추어 버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진짜 어른이든 어른인 척하든 어쨌든 악바구니 같은 관계맺음을 통해 사회화를 행해야 하지만, 스테판은 그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자꾸 자신만의 ‘행복한’ 세계로 숨어 버리지 않나 싶어요. 어른인 척은 안 하지만 어른일 수도 없고 더더욱 그것을 순수하다고도 할 수 없는 거겠죠.
    보시지도 않은 영화를 자꾸 거론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 터널~>에서 짐 캐리는 끊임없이 자기와의, 또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나아가 사회와의 투쟁을 벌입니다. 가련할 정도로요. 하지만 스테판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원래 그런 존재이다, 라고 한정 짓는 듯한 느낌을 줘 안타깝습니다.

    • 전 자본주의 사회가, 겉으로는 사회화와 어른이 되기를 권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덜 자란 소년으로 묶어두려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청소년기가 계속 연장되고 유예되는 것도 그렇고, 이미 자본 혹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기득권이 계속 유지되려면, 아들이 아버지의 목을 치는 순간을 계속 유예할 수밖에 없겠지요. 시장 개척의 측면에서도, 사실 어른스러움과 절제와 성숙을 모토로 하는 완성된 인간형은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가 반기는 소비지향 인간과 대치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 가운데 자아분열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제가 볼 땐 서구문학과 예술에선 이미 굉장히 보편적인 주제가 되었는데 아직 한국에선 낯선 것 같단 생각도 들고요. 말하자면 스테판 역시 그런 인간형이랄 수 있겠죠.

      아참, < 터널 선샤인> 봤습니다. … 이 영화는, 감상문을 못 쓸 것같습니다. 짐 캐리는, 물론 그의 퇴행욕구도 표현되긴 하지만, 그냥 어른이던걸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