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기타이 | 부퍼의 계곡에서 In the Valley of the Wupper (1993)

*이 글은 2015년 1월 30일 미디어스에 실렸다.

1992년 11월 23일, 네덜란드 벤로의 숲길에서 불에 그을린 시체가 발견되었다. 심한 구타를 당한 흔적이 또렷한 중장년의 남성이었다. 얼마 후 독일 부퍼탈에서 용의자들이 체포되었다. 그곳의 한 술집에 드나들던 20대 청년 둘, 그리고 31살의 술집 주인이었다. 이들은 극우파였고 스킨헤드였다.

조금 더 자세히 사건에 들어가 보자. 가해자인 청년 둘은 부퍼탈의 한 술집에서 ‘득녀’를 축하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며칠 전 실직한 중장년의 피해자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다 이 청년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한편으로 술 내기를 할 정도로 함께 어울렸지만 또한 신경을 곤두세우는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청년 둘은 이 남자에게 주먹질을 가했고 구타를 행했다. 여기에 술집 주인이 가세해 쓰러진 남자의 몸에 인화성이 강한 술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들은 불을 곧 끄기는 했지만, 쓰러진 남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술집 주인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부퍼탈에서 한참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벤로에 피해자를 버렸다. 피해자가 숨을 거둔 것이 차에 실리기 전이었는지, 이동 중이었는지 혹은 버려진 이후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경을 넘어서 시신이 발견된 탓에 시신은 곧 화장됐고 당시 이루어진 부검은 사후에 필요로 하는 정보 범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구타와 폭력의 순간에 “이 남자 유태인이야”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어야 해” “유태인은 태워 죽여야지”와 같은 혐오 발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 이 술집은 주인부터 극우파인, 주로 극우파들이 모이는 곳이라 알려져 있었다. 피해자는 “이 남자 유태인이야”라는 술집 주인의 말에 “그건 아니지만 반쯤 유태인 피가 섞였다”고 응수했다. 범죄의 과정에서 울려 퍼진 혐오 발언이 애초 굳은 신념의 발로였는지 위악의 농담이 섞여 있었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취중 발언들이란 언제나 일정 정도의 진심을 담고 있으며, 일정 정도 과장과 허세를 두르기도 한다. 과거사 때문에 반 유대주의와 인종혐오 범죄에 특히 엄격한 독일에서, 이 사건이 그저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처리될지, 계획 하에 저질러진 혐오범죄로 처리될지도 법적으로 예민한 이슈 중 하나였을 것이다.

In the Valley of the Wupper

아모스 기타이 감독의 카메라는 술집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은 물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범인들의 변호사, 심지어 범인 중 한 명의 부모까지 만나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네오 파시스트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인 <부퍼의 계곡에서>(1993)이다. 이 영화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변영주 감독의 추천으로 상영 중이다. 이번이 국내에선 첫 상영으로, 총 세 번의 상영 중 아직 두 번의 상영이 남아 있다.

영화 속 인터뷰이들의 입을 통해 우리는 이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들을 다각적인 방면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이들의 증언에서 묘한 긴장을 느끼게 된다. 범죄의 현장에서 혐오 발언이 있었음에도 검찰은 애써 ‘우발적인 사건’이라 주장한다. 범인 중 술집 주인은 독일서 나고 자란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 16세 때 독일로 이주한 폴란드계로 드러난다. 그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다. 20대 구타자 중 한 명은 발달지체로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아모스 기타이의 카메라는 이 범죄가 인종혐오 범죄였음을 증명하고 가해자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것보다 다른 데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것은 오히려 이 끔찍한 범죄가 토대를 두고 있는 어떤 분위기와 정서이다. 그리하여 그의 카메라가 만나는 것은 카니발에서 어울려 놀고 있는 평범한 10대 독일 청소년들이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른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던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조금씩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자신들이 ‘네오나치’라 불리는 것에 분개하며 “우리는 파시스트지만 네오나치는 아니에요”라고 입 모아 외치는 말들.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고작 18살의 아이가 내뱉는 “무솔리니 시절엔 살기 좋았는데…”라는 회고조의 말. “우리는 인종 혐오자도 아니고 네오나치도 아니에요, 우리 친구들 중엔 아랍 출신이나 이탈리아 출신 친구도 있어요”라는 항변. 저성장 경제에서 기인한 일자리 부족과 삶의 불안,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난민수용소로 향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몫을 빼앗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무례하고 범죄에 해당하는 아무 짓이나 다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은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받으며 역차별을 당한다는 것이다. 반유태주의와 인종차별, 혐오범죄가 아직까지 그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은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벌써 20여 년 전 독일의 10대였던 이들의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화법임을 느낀다. 근자의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여성 일반을 향하는 일련의 주장과 화법들이 이 독일 청소년들의 말과 꼭 닮았다.

카메라는 이제 독일에 살고 있는 터키계 이주민들을 만난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차별과 폭력, 두려움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느닷없이 집안에까지 들이닥치는 침입과 위협, 언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적개의 눈초리. 그러나 이들은 이미 독일에서 오랫동안 삶을 영위에 온 탓에 고향에 돌아가도 그곳 역시 낯선 타지일 뿐 정착할 수 없다.

반유태주의에 입각해 훼손된 유태인들의 묘비석을 훑던 감독의 카메라는 영화의 마지막, 아마도 벤로의 숲길로 짐작되는 숲을 훑는다. 그 위로 부퍼탈 술집 살인 사건을 서술하던 검찰과 사건 용의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내레이션이 얹힌다. 감독의 의도는 명백하다. 당장 벌어진 사건은 자신이 반쯤 유태인이라 밝힌 남자에 대한 린치와 살인이었지만, 제2의 부퍼탈 사건은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유대인뿐 아니라 터키인과 제3의 나라에서 온 다른 이주민일 수 있다. 가해자는 앨비스 프레슬리와 록음악 혹은 헤비메탈을 좋아하고 저녁엔 또래들과 축제나 놀이터를 어울려 다니는 평범한 이웃 아이들일 수 있다.

20여 년 전 독일에서의 사건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기록했던 이 감독이 우려하던 그 상황들은 비단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반복될 만한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최근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부퍼탈 사건과 샤를리 엡도 사건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샤를리 엡도 사건은 흔한 서방세계 백인들의 공격이 아닌, 그들에 대한 ‘역공격’의 형태를 띄고 있다. 철저히 계획된 ‘테러’였던지라 사상자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이민자 2, 3세대가 범인이었던 데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구호까지 빌렸다. 그만큼 복잡한 결과 맥락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퍼탈 사건에서 과연 우리가 가해자는 강자이고 피해자는 약자라 손쉽게 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 사건은 또한 어떠한가? 정반대의 면모와 위치를 지닌 듯 보이는 부퍼탈 사건과 샤를리 엡도 사건은 실상 공통의 뿌리와 연원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유럽의 정세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만을 가지고 있던 우리 입장에서는 현재 쏟아져 나오는 담론의 양과 속도를, 그 깊이를 채 따라가지 못한 채 헤맬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러하다. 독일에 거주하는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곳에서도 일반적으로 그렇다 한다.

근심스러운 것은, 20여 년 전부터 유럽 전역에서 우려해 온 일련의 현상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먼 나라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도 썼듯, 20년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익숙해진 화법들과 마주친다.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가며 거리에서 이들을 보는 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다문화 정책은 위태로운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주민들을 향한 혐오와 적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문화 아동을 위해 발의된 법안이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모함을 당하며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더욱이 현재의 한국은 이주민뿐 아니라 여성 일반을 향한 극심한 혐오의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다. <한겨레> 이재훈 기자가 지적하듯 모두가 피해자를 자처하는 가운데 모두가 모두에게 혐오와 분노와 적대를 드러내는 사회, 그게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벌써 93년에 선을 보였던 이 영화가 단지 과거의 기록일 뿐 아니라 현재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곧 다가올, 아니 이미 “우리 곁에 도래한 미래”에 대한 근심을 담은 암울한 기록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족. 이 영화를 만든 아모스 기타이가 이스라엘 국적으로 가졌다는 이유로, 이 영화가 ‘반유태주의 린치에 대한 즉각적인 시오니즘의 반응’이란 편견을 손쉽게 얻는 광경들을 목격했다. 나는 이러한 편견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과 감독의 의도를 왜곡하고 간과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프랑스 아르테, 영국의 채널포티비 등의 국영방송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공적 제작지원을 통해 만들어졌다. 감독 아모스 기타이는 그의 반시오니즘 성향 때문에 이스라엘에 출입을 금지당한 소위 ‘반체제 인사’였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반유태주의적 기반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경제적 양극화와 소외 계급의 증가, 그들의 분노를 인종혐오로 부추기는 극우의 확산, 깊어가는 증오와 적대 가운데 이로 인해 계속해서 발생하는 폭력들에 대한 깊은 우려와 성찰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이고도 다각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내일을 위한 시간 Deux jours, une nuit (2014)

*이 글은 2015년 1월 6일 미디어스에 실렸다.

Deux jours, une nuit
저와 닮았다고 합니다;

<아이즈>의 위근우 기자가 트위터에서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좌든 우든 인간에 대한 믿음이나 선의에 대한 믿음 자체를 잃어버린 이들을 보는 게 보수들의 패악질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들다”면서 <내일을 위한 시간>을 추천했다. 위근우 기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개봉 전부터 일찌감치 ‘새해 첫날 볼 영화’로 점 찍어두긴 했지만, 이 말이 큰 울림을 주면서 내 감상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병가 후 복직을 앞두고 ‘시험’에 든 산드라의 이야기이다. 물론 시험에 든 이는 산드라만은 아니다.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의 복직과 보너스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일방적이고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영화는 14명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결과를 애초 영화의 시작점으로 배치한 뒤 철저히 산드라의 뒤를 쫓으면서, 영화를 동료들이 아닌 산드라가 통과해야 하는 시험의 여정으로 풀어나간다. 누가 자기가 받을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이의 복직을 돕겠는가? 산드라는 이 ‘상식’에 가까운 판단에 도전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 재투표 때까지, 보너스를 선택했던 이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14명의 동료를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사정을 해야 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화의 원제대로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Deux jours, une nuit)’이다.

헌데 우울증의 회복 끄트머리에 서 있던 산드라는 이 과정을 시작하는 것부터가 버겁다. 무력감과 배신감에 그저 울기만 하다가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며 지레 자포자기를 한 뒤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영화 초반 산드라의 모습이 딱 그랬다. 의사가 끊으라 했던 약을 계속 먹어대면서 가까스로 길을 나선 것도, 복직에 표를 던졌던 친구와 남편의 강권에 가까운 격려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치러야 할 시험은 표면적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과연 돌릴 수 있느냐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옮길 수 있는가, 그리고 배신감과 무력감을 넘어서 동료들의 양심과 선의에 대한 믿음을 긍정, 혹은 회복할 수 있느냐이다.

해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매우 단순한 플롯과 구성(동료들을 하나하나 만나 설득하는 장면의 반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폭발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권리가 짓밟힐 때 사람들은 당연히 분노하지만, 직접 나서서 정면 대결을 하며 싸우기는 쉽지 않다. 또한 나에게는 섭섭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할 만한 선택을 한 친구나 동료들을 열 명 이상 직접 대면하는 일도,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나의 처지를 알리고 요구를 하는 것(그것은 결국 ‘아쉬운’ 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산드라 역시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몇 번이고 포기하려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리거나 남편의 등쌀(!)에 떠밀려 나가는 식이다. 그런 산드라가 동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관객인 우리는 그 동료가 과연 산드라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증을 갖게 되고, 기대를 갖게 된다. 산드라나 관객인 우리나, “과연 남의 복직을 위해 자기 보너스를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회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답은 예스냐 노냐 둘 중 하나일 뿐이다.

 

Deux jours, une nuit

 

그 돈이 절박한 건 동료들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동료들마다 사정도, 그 대답을 밝히는 과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집에 없는 척하고, 누군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쿨하게 거절한다. 뜻밖의 폭력 사건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산드라를 비열하게 심리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드라의 손을 꼭 부여잡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도 있다. 산드라는 이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가 치르는 시험에는, 당장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자리’만큼이나 중요한 것, 즉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각각의 반응을 배치한 순서는 웬만한 장르 영화의 스릴러 공식을 능가할 정도로 치밀하다. 그에 따라 관객인 우리 역시도 점점 큰 스릴을 느끼며 산드라에게 온전히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재투표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가 계약직이자 아프리카계인 젊은 알퐁스인 데에서 스릴은 최대점을 찍는다. 동시에 감독의 정치적 지향점으로서의 ‘연대’의 의미 역시 최대점을 찍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재투표가 치러지는 장면을, 우리는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거의 컷 없이 화면을 연결하는 건 다르덴 형제뿐 아니라 소위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는’ 많은 감독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르덴 감독의 화면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시종일관 깨알 같은 유머가 박혀 있고 TV 드라마적 편집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그래서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로 분류되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과 달리,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들은 주로 인물들의 눈높이에서,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계속 그의 뒤를 쫓아간다. 비전문 배우와 신인들을 많이 기용하기도 했지만, 조연으로 포진해 있는 전문 배우들도 그의 영화 안에서는, 마치 카메라가 계속 따라붙어 어느 순간 카메라가 있는 듯 없는 듯 너무 익숙해진 평범한 일반인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어린 피로에 찌든 표정이, 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이것은 “그 무거운 35mm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그러다 그 스타일 그대로 극 영화로 전향했던” 형제 감독에 대한 내 선입견일 수도 있겠으나… 반면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감독이 처음으로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인 스타를 기용한 첫 작품이다. 특출난 미모를 지닌 마리옹 코티아르조차, 다르덴 영화에서 우리 주변서 가끔 볼 수 있는 “좀 예쁜” 옆집 공장 노동자 정도로 보이는 건 좀 놀라운 일이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서 자칫 튀기 쉬운 스타 배우의 기용이, 이 영화에서는 미학적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문 배우의 능숙한 연기를 끌어낸 결과가 됐다. 무엇보다도 다르덴 영화의 스타일에 낯선 이질감과 부담을 느낄, 그러나 누구보다 다르덴 영화를 봐야 할 관객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춰준다.

유난히도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많았던 2014년, 특히나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는 좀처럼 타인의 선의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커튼으로 로프를 만들었던 어른, 친구들을 구하러 다시 물로 들어갔다가 끝내 주검으로 나온 아이들, 갑판에서 울고 있는 꼬맹이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안고 구조선으로 뛰었던 소년, 자기보다 고작 대여섯 살 어린 ‘제자’들을 구하려다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2, 30대 청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눈물을 흘렸으면서도 우리가 희망을 좀체 갖지 못하는 것은, 정작 그들을 지키고 구하는 게 의무였던 이들이 손 놓은 채 아무것도 못 하거나, 그들을 버리고 제 목숨부터 구하는 광경을 같이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비극이 우리 어른들이 만든 지금 세상에서 필연적인 결과물일 수밖에 없음을 자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누구보다 위로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일’을 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유족들을 떼강도로 모는 광경들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요구를 위해 나선 유족들에게 집단적으로 손가락질과 비난과 조롱이 퍼부어지는 광경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2014년은 내게 평생에 가장 힘들고 지옥 같은 기간이기도 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순진하고 나이브한 인간과 선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이 배반당했다는 슬픔과 분노, 이후 인간에 대해 갖게 된 환멸, 선의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회의 때문이었다.

 

Deux jours, une nuit

 

그러나 좀 낯뜨겁게 고백하자면, 새해 첫날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며 나는 큰 위로를 받았고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이것은 마치 종교적인 체험과 같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세상에 대한 무력감과, 비극과 이후 펼쳐진 아수라장을 지켜보며 얻은 깊은 슬픔을 통과한 후, 이 영화를 보고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사려 깊은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기만의 희망이 아닌, 진짜 희망. ‘여전히 놓지 못하는’ 희망이 아니라, 우리가 ‘감히 만들어가야 하는’ 희망. 증오와 절망과 분노보다, 희망과 믿음이 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의 선의를 믿는 한, 그리고 그 요청에 반응하는 한, 거기에 진짜 희망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것이든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든 선의를 가지고 있다. 이 선의는 다만 종종 큰 위기에 처하고, 이 처참한 세상에서 손쉽게 망각, 포기, 혹은 부정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이 선의를 부활시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존재한다는 긍정이며, 믿음이다. 이 믿음은 오히려 ‘용기’에 가깝다. 자포자기와 두려움을 이기는 것, 이기심을 인간의 당연하고도 가장 특징적인 속성으로 믿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 거절과 상처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아가 거절과 상처에 대한 공포로 ‘냉소’라는 손쉬운 방어막을 선택하거나 전파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사람의 선의를 믿는 것, 그리고 그 선의에 요청을 보내는 능동적인 행위까지. 용기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과정들이며 그 자체가 모두 용기의 과정이다. 그 요청에 선의로 반응하는 행위 역시 용기다. 그 용기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리고 다른 이를 구원한다. 더불어 더 큰 선의와 용기를 전파시키고 만들어낸다. 그것이 내가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며 얻게 된 희망의 정체이자 동력이다.

박찬경 | 만신 (2013)

* 이 글은 미디어스에 2014년 5월 7일에 실렸다.

만신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을 뒤늦게야 보았다. 다큐멘터리라고, 그렇다고 극영화라고도 부를 수 없는 이 영화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사실 실존하는 인물, 특히나 직업이 ‘무당’인 인물의 삶의 궤적과 그 직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영화가 취할 수 있는 형식이란 그리 다양하지 않다. <만신>은 내레이션과 재연 형식의 삽입 등 우리가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극장’ 류의 TV 다큐멘터리의 구성을 일부 도입하되, 감독의 예술적 도전과 시도가 섞여 서로 충돌하며 작품의 개성을 강화한다.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위해 얼굴과 이름이 덜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재연’ 수법이지만, <만신>은 도리어 유명하고 프로페셔널한 배우를 세 명이나 캐스팅해 재연 장면을 구성하며 극영화적 효과를 강조한다.

영화는 그저 김금화라는 개인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무당’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탐색한다. 여기에는 영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바, 일제시대에 가난한 집에서 특히나 여성으로 태어나 해방과 6.25, 군사독재 시대라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거치며 겪은 보편적인 고난과 한의 삶과,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겪었던 특수한 고난들이 함께 엮이고 포개진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무속신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의 변화, 이로 인한 그녀의 사회적 위상과 지위의 변화의 측면도 함께 다루어짐은 물론이다.

그러나 보다 간접적인 차원에서, <만신>은 무당이라는 존재가 지닌 예술적 측면과 사회적 기능의 측면을 함께 아우른다. 그리고 이 부분이 <만신>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재연하는 배우, 즉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를 통해 재연되는 실존 인물, 즉 김금화와 한 프레임에 함께 등장시켜 김금화로 하여금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를 바라보게 하는 신들이 그렇다. 이 신은 영화의 후반에서 무당이 주관하는 굿의 예술적 기능, 특히 공연예술적 속성이 강조되는 맥락과 맞물리면서 실재와 재현, 역사와 픽션, 삶과 예술의 경계를 흩뜨리고 다른 위치에서 새로이 긋는다.

17살에 신내림을 받고 고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었던 김금화는 전쟁 시기 북한군과 국군 양쪽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특히나 새마을운동이 전국 단위로 조직되었던 군사독재 시대에는, 정부는 물론 사회의 새로운 근간이 된 기독교로부터 동시에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하에서야 그녀는 비로소 일종의 타협의 지점에 서게 된다. 이는 정권의 정통성이 약했던 전두환 정권이 전통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장려한 결과이기도 했고, 이 기회를 김금화가 잘 ‘활용’한 덕이기도 했다. 무속이라는 전통문화의 계승자이자 수행자로서의 김금화와, 굿의 공연예술적 속성을 극대화한 엔터테인먼트 – 예술 산업에서 배우로서의 김금화의 존재는 더욱이 미디어를 등에 업고 그 사회적 위상의 면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낸다.

그녀는 주요무형문화재로서 매스컴을 통해 유명한 ‘스타’가 되었고, 자신의 영향력과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굿’을 일종의 ‘공연예술’로 무대에 올리고 어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이렇게 지적한다. “매스컴이 김금화를 이용한 것인지, 김금화가 매스컴을 갖고 논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미디어는 김금화가 사용했던 무수한 무구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만신

만약 개봉 즈음에 영화를 봤다면, <만신>은 내게 그저 ‘흥미롭고 특이한 영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세월호가 침몰하고 패닉과 깊은 우울과 분노에 휩싸인 상태로 보았고, 이 패닉과 우울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되새기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것은 이제 이 영화가 내게 이 비극과 함께 각인되었다는 것, 앞으로 이 영화를 되새길 때 필연적으로 이 참사와 연결된 이미지로 떠올리며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이 영화에 부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실 영화의 흔한 숙명이기도 하다. 영화는 영화제작사가 최종 완성 프린트를 뽑아낸 순간이 아니라, 관객이 각자의 주관과 감정과 개인의 맥락에 따라 해석하고 그 해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논쟁할 때 완성된다. 이러한 감상과 해석은 그 관객이 그 영화를 볼 때 어떤 시간적 맥락에 있었는가뿐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 어떤 환경에서 보았는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후반, 풍어제를 지내는 장면이 유난히 내 눈에 깊이 새겨진 것,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을 전체를 조감하는 버즈아이즈 숏에서 마을 세트가 거대한 배 모양으로 보인 것은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인천 앞바다 배 위에서 펼쳐지는 서해안 풍어제의 배연신 굿은 한동안 명맥이 끊길 뻔하다, 김금화가 대표로 있는 전통굿 보존회의 노력으로 다시 재개되었다. 영화는 자료 화면의 삽입을 통해 2012년 풍어제를 지내는 장면을 꽤 길게 보여준다. 화려한 원색의 무복을 입은 김금화가 풍어제를 주관하고 그의 신딸과 신아들들이 굿을 보위한다. 고기잡이 배의 만선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은 그저 복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바다에서 사라져간 목숨과 인연들을 위로하고 추모한다. 김금화는 남자 무당과 함께 각각 영산 할아밤과 영산 할맘을 ‘연기’하며 일종의 마당놀이 극과도 비슷한 굿을 펼친다. 풍랑으로 헤어진 부부가 오랜 시간이 흘러 노부부가 되어 어렵게 재회한다는 설정인데, 한 사람은 배의 선장이, 한 사람은 무녀가 돼 있다.

그러나 배의 선장이란 어쩌면 바다의 귀신이기도 할 터. 진혼굿은 망자의 넋을 달래지만 곧 산 자들, 죽은 이의 가족들을 위무하는 것이기도 하며, 산 자들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은 필연적으로 망자들을 위로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런 위무와 추모에는 필연적으로 음식과 음악, 춤과 연기와 공연이 수반된다. 우리가 애도의 공간에서 금기시하는 원색의 복색까지. 우리가 전통적으로 슬픔과 상실을 달래던 방식은 바로 이렇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예술 형태를 갖춘 것이었으며, 이 거대한 위로의 제의는 심지어 일종의 ‘잔치’라는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만신

무속신앙을 몰아냈던 근대 국가의 이념과 이성이 무속신앙을 양지화하여 근대국가와 공존하도록 ‘전통문화’라는 한정된 영역의 ‘타협지대’를 만들었을 때, 여기에는 암묵적인 역할 분담에 대한 합의가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화’라는 허락된 공간 안에서 무속은 ‘신앙’의 면을 거세당한 대신 문화와 공연이라는 예술 형태로 살아남았다. 아무리 우리가 자본주의에 침윤된 근대 국가와 이성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하더라도, 근대 국가와 제도가 역할을 발휘해야 할 영역에 종교나 무속이 주는 위안을 성급하게 아로새기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근대 국가와 제도의 영역이 아닌 부분들, 과거 종교와 무속과 신앙의 영역이었고 근대 이후 예술이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하게 된 영역들은 여전히 구분된 채 남아 있고, 국가와 제도의 힘이, 혹은 이 제도의 힘을 함부로 호출하여 이러한 예술의 영역에 금지를 명령/시도하는 것 역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인류사를 통해 우리가 쌓아온 지혜들, 그리고 예술들을 통해 망자와 망자의 가족들, 생사를 알 수 없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들, 그리고 이들을 보며 깊은 슬픔과 우울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들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 기회마저 서로에게서 앗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산 자들을 유령의 터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닐까.

켄 로치 |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 (2001)

* 이 글은 미디어스에 2014년 5월 28일 개제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켄 로치 특별전을 한 게 5월. 

The Navigators
포스터 귀엽죠잉.

1996년의 어느 날, 켄 로치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자신을 전직 철도 노동자라고 밝힌 롭 도버라는 남자가 보낸 이 편지에는 그가 18년간 일해 오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다. 마가렛 대처의 시대에도 끝까지 민영화의 길을 면했던 영국 철도가 결국 민영화된 때였다. 롭 도버는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철도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다만 다른 철도 노동자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굳건한 신념을 소유한 사회주의자이자 노조 활동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바로 이 신념 때문에 철도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편지에 흥미를 느낀 켄 로치는 각본을 보고 싶다고 답장한다. 마침 모래언덕에서 떨어져 힘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일을 나갈 수가 없었던 그는 이참에 생애 최초로 ‘시나리오 쓰기’라는 과제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는 6주에 걸쳐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정리해 초고를 완성했고, 이를 켄 로치에게 보냈다. 켄 로치는 초고를 본 소감을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시나리오는 삶으로 충만했고 캐릭터와 이야기가 가득했다.”

영국 철도가 민영화된 직후의 스산한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네비게이터>의 영화화 과정이 쉽게 진행된 건 아니었다. 구체적인 영화 제작의 준비가 갖춰지기까지는 이후로도 2년이 더 걸렸고, 마침내 1998년이 돼서야 롭 도버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정식으로 영화화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언제나 켄 로치와 함께 일해온 프로듀서 레베카 오브라이언, 촬영감독 배리 애크로이드, 편집자 조너선 모리스, 음악감독 조지 펜튼,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틴 존슨이 <네비게이터>를 위해 합류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계약하고 불과 1주일 후, 롭 도버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희귀 폐암의 일종인 중피종에 걸렸으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18년간 일했던 철도 작업장에서 계속 노출되었던 석면이 바로 발병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평생 고집스럽게 투쟁가의 삶을 살면서 언제나 낙천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레 포기한 의사들을 보며 “당신들보다 더 오래 살겠다” 다짐하며 전세계로 치료법을 수소문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돕기 위한 펀드를 조직했고, 치료법을 찾고 지지를 받기 위한 인터넷 페이지도 열었다. 

한편 그는 민영화가 진행되는 와중 아직까지 남아있던 회사들을 대상으로 법적 투쟁을 시작한다. 자신의 병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묻는 소송이었다. 그 와중에 “석면의 위험성과 심각한 노출도를 회사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회사 내부 메모에, 이 석면 지붕을 제거하는 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씌여 있었다. 

마침내 그는 법정에서 승소했고 완성된 영화를 미리 볼 수는 있었지만, 영화가 개봉하는 것까지 보지는 못했다. 10대 후반 사회주의자가 된 이래 평생을 노동자로, 또한 활동가로 살았던 그는 2001년 2월 20일 결국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영화는 그해 9월이 되어서야 토론토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영국에서는 12월에야 TV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가 죽은 지 사흘 후, 가디언 지에 켄 로치가 쓴 추모사가 실렸다. 켄 로치는 그 글을 “노동계급은 챔피언을 잃었다”고 끝맺었다(여기를 누르면 영어로 된 원문을 볼 수 있다). 그의 추모사를 통해, 그리고 10년 뒤 켄 로치 회고전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관객에게 환기시키는 영화 제작팀을 통해, 영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롭 도버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The Navigators

롭 도버의 경험과 삶, 나아가 생명과 죽음까지도 투영된 영화 <네비게이터>는, 그렇기 때문에 영국 철도의 민영화 이후 그 여파가 무엇이었는지 매우 구체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경쟁’과 ‘효율’을 외치며 도입된 민영화였지만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 회사의 정책 하에서 어리석고 비효율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일들까지 벌어진다. 

노조는 지원자에 한해 명예퇴직을 한다는 협상에 합의했지만 회사는 합의를 아무렇지 않게 뒤집고 전원 정리해고를 강제했다. 철도라는 복잡하고 유기적인 생명체의 전문가였던 철도 노동자들은 어제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되어 일당을 받는 일용 노동자가 된다. 이윤을 위하여 각종 안전 규칙은 무시되고 녹슨 선로는 방치된다. 롭 도버는 민영화 이후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철도 안전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영화 직후 영국 철도는 매년 대형 인명 피해를 동반한 사고가 났고, 롭 도버가 눈을 감기 직전인 2000년 10월 햇필드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는 여전히 민영화의 폐해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그리고 먼저 언급되는 사고이다. 그리고 이윤을 위해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은 <네비게이터>에서도 후반부 이야기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 된다. 노동자의 삶과 목숨, 그의 가정 모두 손쉽게 파괴되고, 이는 사람의 가치관과 내면까지도 하루아침에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켄 로치의 여타 90년대 영화들보다 훨씬 씁쓸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는 <네비게이터>는 2001년 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3년 만에 다시 상영되는 것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배급하는 비디오 외에, 상업적인 배급망을 통해서는 개봉은커녕 DVD도 출시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 영화가 이번에 큰 스크린에서 35mm 필름으로 상영되는 건 매우 드물고도 귀중한 기회이다. 더욱이 작년 수서발 KTX가 결국 민영화의 단계를 밟고 이후 착실하게 영국식 철도 민영화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지금, 이윤을 위해 각종 안전 규칙들을 무시했다가 대형 참사가 나고, 그 구조마저 이미 민영화되어 있었다는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의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The Navigators

이 영화가 보여주는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다. 있어서는 안 될 대규모의 인명 피해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희생자들의 숫자를 떠들고 그들에 대해 서둘러 추모의 눈물을 흘린 뒤 곧 잊어버린다. 이번에는,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잊지 않겠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도록 두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각자 답들을 찾고 있는 듯 보인다.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대규모의 어린 목숨들의 죽음 사이로,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죽음들 역시 필사적으로 보고 찾아내고 말해야 한다고. 소위 ‘효율적 운영’에서 제일 먼저 인원이 감축되고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 노동자들의 과로와 희생이 다시 필연적으로 대규모 참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늦은 뒤에야, 이미 보이지 않고 은폐되는 피해와 죽음들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죄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속절없이, 그렇게나 많이 떠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기 전에 분명히 있었을 어떤 죽음들, ‘은폐된’ 죽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노동자의 상황은 언제나 가장 먼저 생략되고 지워진다. 그가 소위 ‘데모’나 하는 ‘사회 불순세력’에 속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이제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은 이 시대에, 죽음은 선별되고 서열화된다. 어떤 이는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만으로 신문의 톱뉴스를 장식하지만 어떤 이들의 죽음은 그저 숫자로만 지칭되고, 어떤 이들의 죽음은 헐값에 넘어간다. 어떤 죽음은 심지어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그러나 숫자로만 지칭되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기억하겠다 다짐할 때, 또한 고의적으로 지워진 죽음을 복원하려 할 때 ‘정치적’이라는 모함이 뒤따른다. ‘종북 선동세력’을 운운하던 이들의 헛소리가 아닌, 거리로 나와 ‘국가의 제 역할’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난이 덧씌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함을,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지워지는 죽음일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찾아내고 기록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의 전반부가 민영화 이후 철도 노동자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의 과정을 차근히 다룬다면, 후반부는 이윤을 앞세워 안전 규정들이 차례로 무시되는 상황을 다룬다. 정리해고 이후 인력파견업체에 속해 그날 그날 일을 받던 믹은 어느 날 현장에 나갔다가 영국 철도의 안전 규정이 싸그리 무시된 채 작업을 요구받고 이에 항의한다. 8명이 한 조로 일해야 하는 작업을 고작 4명이서 해야 하는 데다, ‘열차 감시자’를 세우고 신호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의 기본 절차조차 생략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6주간 동전 한 푼조차 벌 수 없는 실업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는 끔찍한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생계가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스스로 인간다움과 노동자성을 포기한, 과거 노동자-인간이었던 존재들의 모습.

그런데 이 영화의 첫 상영 이후, 인터넷 뉴스에서 접한 어느 철도 노동자의 죽음이 나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원래대로라면 ‘열차 감시자’가 있어야 하는 작업에서 그는 열차 감시자도 동료도 없이 혼자 일하다 죽었고, 심지어 26시간째 일하던 상태였다. 2001년에 1995년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막 보고난 후 그 영화의 한 장면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실제로 일어나는 이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와 현실의 거리가 왜 이다지도 가까운가. 더욱이 그 영화를 본 직후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그 철도 노동자의 죽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 

<네비게이터> 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애들이 수학여행은 불국사로나 가지…”라는 어느 목사의 발언을 접한 직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본 <레이닝 스톤>에는 “아이 평생 단 한 번의 성찬식이니 예쁜 새 성찬식 드레스를 입히고야 말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가난한 실업자 빚쟁이 아버지가 나온다. <하층민들>의 상영이 끝난 토요일 주말 저녁 극장에서 나오니 바로 앞 보신각에서는 송경동 시인이 연행되고 있다. 카메라와 스크린이라는 매개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통과해 우리의 민낯의 현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영화라는 매체가, 현실과 더없이 밀착돼 있는 이 상황이 안겨주는 현기증. 더욱이, 20년 전 먼 영국땅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말이다. 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켄 로치의 영화들이 던져대는 질문들이, 너무나 무겁다.

The Navigators
철도 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촬영 중인 켄 로치 옹과 그 일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