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안녕’이라 말할 수 없었던

* 이 글은 2014년 2월 2월 유명을 달리한 필립 시모어 호프먼을 기리며 이틀 후인 4일 미디어스에 게재되었다. 돌아보면 영화에 예전 같은 집착을 느끼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가 아마 한날 한시에 안토니오니와 베르이만이 가셨던 그 날이었던 것 같다. 모 매체의 영화 기자이던 그 무렵, 그날의 언론시사회 참석을 마치고 돌아와 울면서 부고 기사를 썼다. 드실 만큼 나이를 […]

버드 보티커 특별전 상영작 8편에 대한 메모 @서울아트시네마

폴 슈레이더가 ‘시네마’ 지에 게재한 버드 보티커에 대한 비평 연구 글, 「비평에서의 사례 연구 : 버드 보티커의 경우 Budd Boetticher: A Case Study in Criticism」의 번역문은 4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 버드 보티커 특별전와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가 발행하는 소식지인 CINEMATHEQUE 2014년 4월호에 실렸고 이후 서울아트시네마 공식블로그에도 실렸다. 이곳을 누르면 새창에서 그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

스즈키 세이준의 남자들

<야수의 청춘> 보다. 어제 트위터에 “나는 시시도 조보다는 고바야시 아키라”라고 썼는데 그 말 취소해야겠다. 물론 시시도 조의 매력을 제대로 본 건 한 편뿐이지만 반대로 단지 한 편만으로 불과 어제 뱉은 말을 취소한다면 게임 끝이지 뭐. 아니 그렇다고 고바야시 아키라가 싫어졌다는 건 아니고… 고바야시 아키라가 무겁고 진중하다면 시시도 조는 뭐랄까, 가볍다기보다,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다. 고바야시 아키라가 […]

좀비의 정치학 : 2000년대에 좀비영화는 어떻게 부활했는가

2002년 대니 보일이 <28일 후>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21세기의 첫 10년이 좀비영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년 후 잭 스나이더가 데뷔작으로 <새벽의 저주>를 내놓았을 때 판도는 바뀌었다.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3부작 중 동명의 두 번째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28일 후>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질주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액션물이었고, 곧 ‘좀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