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랑 믿고싶어 영화만든다” 박진표 감독 인터뷰 (2009. 9. 23)

장편 데뷔작 <죽어도 좋아>에서부터 <너는 내 운명>과 <그놈 목소리>, 그리고 추석 시즌작으로 이번 주에 개봉하는 <내 사랑 내 곁에>까지, 박진표 감독은 이제껏 모두 다 징한 사랑 영화를 만들어왔다. 실제 유괴, 납치 사건을 다뤘던 <그놈 목소리>조차도 아이에 대한 절절한 부모의 사랑과 상실감을 중심에 놓는 영화다. 신작인 <내 사랑 내 곁에>에 대해 감독 스스로는 “이번에는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하지만, 이 영화 역시 루게릭 병이라는 희귀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장례지도사의 격정적인 사랑을 다룬다. 신파 멜로라고? 맞다. 하지만 박진표 감독의 영화가 신파 멜로가 아닌 적도 있었던가. 다만 우리가 흔히 비하적 뉘앙스를 덧붙여 말하는 그런 신파 멜로가 아닐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매번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우리의 삶과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소재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그가 그런 영화를 해온 이유가 뭘까. 왜 이토록 징글징글한 멜러만 만드는 것일까. <내 사랑 내 곁에>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내 사랑 내 곁에
왼쪽부터 김명민, 박진표 감독, 하지원. (홍보사로부터 제공받음.)


– 추석 시즌작으로 개봉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그러게, 그렇게 됐네. 추석시즌 가족용 영화가 됐다. 등급도 좋게 나왔더라.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많이 두렵고 떨린다.


– 네 번째 영화인데 아직도 두렵고 떨리나.
당연히 그렇다. 갈수록 더하다.


– 전작 세 편이 두 실화 소재에 논쟁적인 영화였다. 이번 영화는 실화가 아닌가?
이번에는 실화 아니다.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부담을 드렸고, 나 자신도 그간 부담이 컸다. 특히 전작에서는 이른바 ‘선동’까지 했지 않은가. 특별한 목적으로 강요도 했고. 이번에는 양적인 부담을 줄이고 편안하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 그래서 정말로 편했는가.
그렇다. 아무래도 그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경계를 잘 타야 하는 문제인데, 이번에는 더 자유로웠다.


– 왜 하필 루게릭 병인가? 특별한 개인적인 계기라도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병 자체가 워낙 잔인한 병인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환우나 가족들이 겪는 소외감이 크다. 많이 알려져야 치료약 개발이나 요양소 건립같은 것도 될 텐데. 그게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아런 거다. 병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갔을 때 루게릭 병은 온몸이 근육이 빠져서 점점 마비가 되지만 정신은 또렷해서 자신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보게 되는 병이다. 대단히 영화적인 설정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주인공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며 진행이 되니까 앞과 뒤가 강렬하게 대비가 되고, 배우들도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 삶이나 죽음, 사랑에 대해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으로 픽션이어서일까, 이전 영화들과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전형적인 신파멜로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듯 보인다.
말랑말랑해졌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 지수가 ‘완전’이란 말을 많이 쓰던데.
내가 ‘완전’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완전’, ‘절대’ 이런 단어들. 결론을 지을 때 잘 쓰는 말이다.


– <내 사랑 내 곁에>로 오면, 종우(김명민 분)가 먼저 사귀자고 하는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신파 멜로에서는 반대이지 않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는 한사코 거부하고 다른 쪽은 순정적으로 설득하며 헌신하고.
일부러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런 식의 강박관념도 없고. 이야기를 구성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다. 마지막에 보면 종우가 사귀자고 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나. 영화의 형식적인 구성에 대해서 고려했을 뿐이다. 다만 죽음을 다루는 여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을 가진 여자, 그러나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컴플렉스를 가진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의 마음은 뭘까, 그걸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이유가 드러나니까.


– 두 사람은 결과를 알면서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극이 예정돼 있다고 하면 일단 피하지 않는가.
그것도 실은 편견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다만 내가 보고싶은 사랑이 그런 사랑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론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욕망이, 설레임이 되기도 하다. 다양하다. 내가 보기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단어에 불과한 것 같다. 여러 가지 감정을 포괄해서 써놓은 그냥 두 글자의 단어. 그래서 좀 뜬구름 같고, 속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다 뭉뚱그려 사랑이라 부르는 것 같고. 그런 걸 그려보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의 사랑에도 희생이나 지켜주고 싶은 마음, 설레임, 고통, 후회… 다 들어있지 않나. 결국 이 영화는 사랑이 삶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사랑이란 것엔 해답이 없다.


–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사랑을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 수많은 감정들이 합쳐져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걸 ‘사랑’이라 부르는 거지. 연애 초기의 설레임도 사랑이지만, 점차 지내면서 갖게 되는 애증이나 헤어지기 직전 갖게 되는 증오도 다 사랑에 속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도 사랑이고, 질투도 사랑이고…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


– 영화마다 ‘사랑’의 의미가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 같다.
글쎄, 변화는 아닌데. <죽어도 좋아>가 설레임과 열정의 사랑을 담았다면 <너는 내 운명>은 상대를 지켜주고 이해하는 사랑을 담았다. 설레임도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거지. <그놈 목소리>는 좀 다른 부모와 자식 간에 있는 좀 다른 의미의 큰 사랑이고.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또 여러 형태의 사랑들이 있다. 그냥 다른 종류의 사랑들인 거지. 확장된다는 말은 맞는 것 같긴 한데.


– <내 사랑 내 곁에>가 <너는 내 운명>과 쌍둥이 같은 영화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외견상 비슷하긴 한데 성격은 정반대인 쌍둥이 말이다.
아무래도 순정적인 측면에서 곁에서 끝까지 지켜준다는 점 때문에 그렇겠지. “어떻게 저렇게 끝까지 지킬까, 나라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너라면 과연 해줄 수 있니?” 마음 속에는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인 셈이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얘기는 두 영화가 분명 다르다. 본질이나 질과 양이 다르다기보다는 그냥 종류가 다른 슬픔인 거다. 눈물이 나도 다른 눈물이 날 것이라고, 만들면서도 생각을 했다. 본 사람들도 다르단 얘길 하고. 똑같이 울어도 그 눈물과 이 눈물은 차이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양은 잘 모르겠는걸. <너는 내 운명> 쪽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웃음)


– 사랑이란 것 자체에 이기적인 속성이 있지 않나. 치사하거나 비굴하거나 폭력적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선 그런 걸 감추지 않고 직설적으로 드러내 버린다. 혹은 보통 다른 영화에서는 ‘눈빛만으로도 다 통한다’는 식의 설정을 쓰면서 낭만화하는데,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종우가 눈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도 종우의 의도를 지수가 제대로 캐치 못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씬도 나온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언제나 격정적인 사랑을 다루지만 실은 냉정하다는 느낌이 있다.
내가 냉정하다고? 그렇진 않은데 (웃음). 다만 사랑이란 것이 언제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니까. <너는 내 운명>에서의 커플은 그런 사랑이 가장 어울리는 사랑인 거고, 이 커플은 이 커플의 상황이 있으니 이런 사랑이 어울리는 거고.


– 영화를 보면 언제나 굉장한 격정을 담는데 정작 이를 그려내는 감독의 방식이나 시선은 냉철하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인물들의 끓어오르는 에너지와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이 충돌하면서 다시 에너지가 발생하기도 하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과연 뭘까? 당신은 왜 그런 것 같은가?

– 디테일한 부분에 강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랑찬가들이 생략하는 부분을 굳이 보여줘서인 것 같기도 하고, 글쎄, 나도 당신의 영화에서 왜 그런 느낌을 받는 건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런 식의 영화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영화적 장치나 방법을 쓰지 않고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니까 그런 것 아닐까? 당신처럼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 지나친 미화도 하지 않고 말이다.
더 영화적으로 할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둘이 여행을 간다는 설정을 하거나, 다른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 그러지 않은 것은 그럴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외출 정도라면 몰라도… 그것도 이 영화에선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여자가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다 행복하게 보내주는 것이니까. 보내주는 것이 슬프고 가슴아플 수도 있지만 오히려 보내주는 사람도, 그 손을 통해 가는 사람도 행복할 수도 있다. 마지막 씬에서 보내줄 때 하지원 양에게 울지 말자, 잘 보내주자고 말했다. 종우도 행복하고 보내는 지수도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결국 죽음을 맞고 아파한다는 점에서 비극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통해 마지막을 정리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보내준다는 면에서 행복한 죽음이기도 하다.
어차피 종우는 처음의 소망대로 된 것이고, 난 작위적이라 해도 해피엔딩이 좋다. 누군가 죽었기 때문에 언해피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게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난 이 영화가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극이라고 한다면 통념을 따르는 사람이겠고,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해준다면 나의 의도에 부합해주는 사람이겠지.


– 근데 영화 앞부분에서 서로 연애하는 장면은 조금 닭살이던데.
다들 그렇게 사랑하지 않나? 다만 우리가 들키고 싶지 않고 꺼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보통은 다들 처음에 그렇게 시작하고 절정에 이를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그걸 닭살스럽다, 유치하다고 하면, 일종의 부끄러운 감정 때문이 아닐까? 정작 연애를 하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데 남들이 보면 그럴 수 있으니 보여주기가 싫은 거지. 난 그게 솔직한 연애라 생각한다.


– 역시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이 너무 직설적이고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한데, 나는 굉장히 좋은 매치라고 생각했다. 그 매치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극적 장치가 될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길 담을 수도 있으니까. 행복하게 준비하는 죽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죽음엔 정말로 순서가 없고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죽는 순간 스스로도 저렇게 행복하게 준비하면 좋겠다 싶더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지수를 장례지도사로 설정한 건 일부러 그렇게 했다기보다, 말하자면 ‘우연히 했지만 결국 운명’이었던 결과다. 실제로 장례지도사를 만났다가 그 분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물론 환자를 곁에서 끝까지 지켰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직업이 장례지도사이고 세상의 편견을 받는 분이었다. 가족 중 한분이 돌아가셨을 때 만났는데 실제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이 분이 영화 마지막의 자막에서 스페셜 땡스투에도 나간 분이다. 우리 영화에서 장례지도 자문도 해주셨다.


– 서양에선 삶과 죽음을 대척적인 것으로 보고 동양에서는 죽음을 삶 안에 있는 것으로 본다고 보통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 우리 삶에선 안 그런 것 같다. 영화 속 노인분들의 장면도 그렇고.
그런 행사를 하면 영화에서 나온 대로 정말로 노인들에게 두들겨 맞는 게 현실이다,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그래서 관념과 통념이 무서운 거다.


– 사실 당신의 영화들은 절절한 사랑을 다루고 순정을 중요한 키워드지만 네 편의 영화 모두에 죽음이 직접적으로 있거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죽음과 사랑 간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보는 건가?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왜 그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글쎄, 지금의 감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너는 내 운명>에서 “하루를 살아도 은하랑 살다 죽을래”라고 하는 것도 지금이 더 중요하단 얘기니까. 이번의 사랑도 그렇다. 오히려 지금의 삶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죽음이 드리워져 있을 순 있겠지만. 일부러 계산한 건 아닌데.


– 죽음이 앞에 있기에 더 처절한 사랑을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네 편 다 그렇다.
그런가? 내가 어디 가겠는가, 박진표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


– 사실 어제 <그놈 목소리>를 다시 봤다.
보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부담스러우면 그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니까. 그나마 공소시효가 늘어나서 기쁜 마음은 있다. 물론 내 영화 때문은 아니고, 계속 움직임이 있었던 거지만, 어쨌든 <살인의 추억> 때부터 촉발돼서 끝마무리 되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에선 좋더라. 아마 10년이 늘어나서 25년이 됐지? 물론 소급은 안 됐지만. 공소시효나 그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도 신도 아닌데 누가 누구를 벌할 것이며 기간을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어떻게 정하는가.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소위 사회의 통념을 이끄는 사람들,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사회의 소수이다.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거라 생각한다. 그 아픔을 피해자가 용서 안 했는데 법이, 나라가 어떻게 용서하는가? 여기서 신까지 간 것이 <밀양>일 것이다. 희생정신, 용서, 이런 게 신의 뜻이기도 하지만… 난 모르겠다, 우린 인간인데, 어떡해야 할지. 그런 답답함이 있다. 난 학문적, 철학적으로 정립이 안 된 인간이라 적확한 단어로 구사할 수 없지만, 상식의 수준에서 말했을 때 그런 식의 답답함이 있다.


– 다시 <내 사랑 내 곁에>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종우와 지수지만 병실의 다른 환자들의 사연도 비중있게 다룬다.
애초에 구상의 시작이 병실이었다. 그 중 메인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로 커플을 설정하고 옆에 나머지 사람들의 사연을 배치한 거지. 그 커플뿐 아니라 다들 나름대로의 사랑과 희생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곁에서 지켜주는 게 얼마나 힘든가,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숨쉬고 살아있단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그게 잘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는데, 종우와 지수 위주로 볼 때에는 그 장면들이 감정이입에 방해가 된다고도 하더라. 어떤 것을 기대하고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텐데 나에겐 병실 사람들이 다 소중한 존재들이다.


– 병실 자체가 죽음과 삶이 사이좋게 공존해있는 공간의 느낌이었다.
병실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 내가 굳이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죽음과 사랑 외에도 유머가 있지 않나. 웃기려고 집어넣었다기보다 그런 처지나 상황에 놓여있어도 ‘사는 건 사는 거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밥도 먹고 웃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좌충우돌도 하는 거지. 이런 것들은 그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들한테도 특별한 거다.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보여주고 열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 보통의 신파 멜로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와 사랑에 빠지는 상대들은 아무리 그것이 숭고한 희생이나 사랑으로 포장된다고 해도 다소 피학적이거나 자기연민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지수는 오히려 남들이 두려워 외면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고 대면하는 인물로 보였다.
그런 직업을 가졌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고인들을 자신의 손으로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직업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양면을 가진 인물이다.


– 직업이 그런 거랑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그런 상황인 건 다른 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중간에 갈등하는 거지. 지수를 단순한 한 명의 여자로 보자. 그녀의 여자로서의 가장 큰 약점은 뭘까? 손일 것이다. 결국 이것도 편견의 결과물이지만. 그런데 가장 콤플렉스인 손을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자를 만난 거다. 여자로서의 지수만 보면,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아무리 얼마 안 있어 죽는 남자일지라도. 그게 무리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천사가 어딨냐”고 반응할 텐데, 그런 사람에겐 이 영화가 판타지가 될 것이고, 나같은 사람에겐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겠지.


–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오히려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란 생각도 든다. 사실 기존의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육받은 바로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먼저 보내줘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종우도 그러지 않나. 그런데 만약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지금 날 버리면 넌 정말 나쁜 놈이다”라고 협박꺼지 해가면서 매달리고 싶을 것도 같다. 옳은 것과 하고 싶은 건 서로 다른 거니까.
그래서 그게 다 마음속에 있는 거라는 대사도 있다. “가장 먹기 힘든 게 마음이고 가장 버리기 힘든 게 욕심이다.”라고 하잖아. 진짜 마음속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삶에 정답은 없는 거다. 만약 마음의 끝까지 가보면 어떨까, 과연 한 마음만 있을까?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할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마음 속 끝까지 들어가서 토해내는 영화. 내공이 쌓이면 나중에 할 수 있지 않을까.


– 당신이 말하는 ‘끝까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사랑 내 곁에>도 다른 영화들이 미처 가지 않은 단계까진 간 거 같은데. 지수를 대하는 종우의 태도도, 이기적이라곤 하지만 난 그래서 더 좋았다.
옥연 할머니가 남편의 따귀를 때린달지 하는 장면은 비교적 끝까지 간 거긴 하다. 그런 마음에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알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이니까. 우리는 심지어 사람의 사람까지도 좋게 말하면 상식, 아니면 통념이라고 할 만한 것들에 자꾸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너 그렇게 살지 마” “그건 옳은 생각이 아니야” 등등. 그게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데 통념인 경우도 있겠지. 죽을 날을 받아놨다고 해서 프로포즈를 못할까? 저게 말이 되느냐 싶은 거라면, 결국 그런 통념에 맞춘 생각이겠지. 난 그냥 만약 그렇게 프로포즈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이유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면 이유가 충분히 있다.


– 한쪽이 신체적으로 불행을 당하거나 했을 때 곁을 지키는 것을 두고 보통 ‘숭고한 희생’이라고 찬사를 바치는데, 그런 찬사가 약간 껄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렇지. 영화 속에서건 실제에서건, 그런 사람들이 찬사를 받자고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그게 꼭 자기는 싫지만 순전히 상대방을 위해서만 하는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자기가 싫으면 하겠는가. 자기도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것을 판타지라고만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


– 지나친 찬사가 오히려 그런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순애보가 영화 속에서만 있을 일이라고 하면 정말로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게 돼버릴 것 같아서.
맞다.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 집착, 욕망, 승부욕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 당신이 앞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런 집착이나 욕망, 승부욕도 결국 사랑의 한 얼굴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 남녀가 만나서 에로스적인 사랑을 할 때 보면 승부욕도 분명 사랑의 모습이다. 자기만족도 분명히 있고. “너 아프지 마, 너 아프면 내가 아프잖아.”란 말도 따지고 보면 자기 마음 괴롭지 말자는 얘기가 되기도 하잖아. 사랑이란 걸 계속해서 해석해보면 결국 자기만족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랑이 변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거고. 그런 사람들한테는 사랑의 대상이 그 누구여도 상관없겠지. 그 사람도 자기가 그렇다는 걸 스스로 잘 모른다. 상대를 사랑하는 건지 사랑을 사랑하는 건지. 아무래도 나중에 “사랑을 사랑하다”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보다.


– 그런 말씀을 하시니 사랑에 대해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맞다, 나 시니컬하다. 맹목적이지 않고 사랑을 믿지 않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속마음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리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듣고 싶다. 그런 사랑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마음 속에는 그런 게 있다,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거지.


– 사랑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인가.
판타지지 뭐. 만들고 있는 나도 그런데. 사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끝까지 가보면 결국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계속 연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더라. 이런 감정은 뭘까, 저런 감정은 뭘까, 여기 연기는 어떻게 할까, 이후 감정은 어떻게 될까 등등. 그러다 보니 마치 잘 아는 듯 얘기할 뿐인데 사실 내가 뭘 알겠는가.


– 영화로 표현할 뿐 사랑에 대한 철학자가 아닌가.
철학은 좀 갖고 싶다. 학문이나 지식, 철학하곤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 이전에 했던 어떤 인터뷰를 보니, <죽어도 좋아>는 영화감독이 되도록 해준 작품이고 <너는 내 운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없는 게 가늠하게 해준 작품, <그놈 목소리>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게 해준 작품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 사랑 내 곁에>는 어떤 의미가 되는 영화인가?
아무래도 <그놈 목소리> 개봉 때라 그 영화 위주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사람들의 투사라고 생각해 완곡하게 한 대답들이지. 거기서 ‘상업’이란 말을 빼도 되겠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어떤 의미냐… 영화를 오래 만들고 싶어서 좀 유해지려고 생각했고 만든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거 참 어려운 질문이네.


– 꾸준히 만드시지 않았나.
이제 고작 네 편이다. 10편은 넘게 만들어야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거지. 우리나라에서 패턴이나 유행이 짧아서 빨리 하고 빨리 없어지고 이러니까, 그러지 않고 오래 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영화다.


– 타협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타협 맞다, 타협하고 싶다. 타협해야 대화도 되고 소통도 되는 거지, 타협 않고 나 혼자 달려가면 결국 외면받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은 건데. 괜찮다, 타협이라 비난해도. 하도 많은 얘길 들어서. 타협은 중요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ps.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실림 (2009.9.23)

이송희일 감독 인터뷰 (2008. 6. 9)


이송희일 감독과 처음 알게 된 것은 감독과 기자, 혹은 감독과 영화팬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 감독과 영화팬의 관계가 되었고, 다시 감독과 기자 사이가 되었다. 요즘은 감독과 기자 외에도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함께 속해있는 관계, 이기도 하다. (그는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 의장이다.) 이 인터뷰는 지금만큼 친해지기 전, 서로 예의를 지키며 조금 어려워하던 그런 때인데, <디워> 파동이 나고, 그가 말도 안 되는 왜곡 발췌 기사로 어마어마한 오해와 오독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촛불이 한참 시작되던 딱 그 때였다. 딱히 새 작품이 공개된 시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디워> 파동 때부터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벌써 시간이 훌쩍 흘러, 당시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이었던 그의 두 번째 영화 <탈주>가 곧 열리는 부산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체로 많은 감독들이 서퍼모어 콤플렉스를 겪는다. 하지만 훌륭한 예외도 많았다. 최동훈 감독의 경우 <범죄의 재구성>이 지나치게 평가절상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타짜>에 대해서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탈주>도 그런 작품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데 말이다. 이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내가 그 다음 해 인디포럼의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흐흐.) 이 기사는 처음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에 게재되었다.




지난 6월 5일 폐막한 인디포럼의 상임작가의장이기도 한 이송희일 감독은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인감독이다. 불과 1억 원의 예산으로 찍은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독립영화로서는 기적이라 할 무려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한국영화 위기설이 더 이상 ‘설’이 아니라 현실이 돼버린지 오래인 지금, 첫 영화에 이어 신작인 <탈주> 역시 저예산으로 준비하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은 과연 독립영화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탈주>의 제작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촬영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송희일 감독을 <탈주> 제작사무실 한 켠에서 만났다.


– <탈주>의 예산 및 진행상황은 어떤가?


영화진흥위원회 HD지원작에 뽑힌 영화라 4억이 확보됐고 여기에 2, 3억 가량이 더 필요하다. 이 부분 투자가 안 돼서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도 고민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찍고 그간 촬영한 분량을 일종의 데모 테입처럼 만들어 중간이라도 투자를 받는 방법은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 전체 순제작비를 6억에서 7억 가량 잡고 있는 셈인데, HD 지원작은 마케팅비를 포함해 10억을 넘기면 지원받은 4억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마케팅비까지 10억 안으로 끊어야 한다. 영화는 6월 9일 크랭크인해서 약 30회차에 걸쳐 촬영할 예정인데(편집자 주 – 인터뷰 이후 크랭크인 날짜가 한 주 연기되었다.), 기술 스탭들이 다들 미쳤다고 난리다. 서울에서 첫 촬영을 하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후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가, 마지막 장면은 다시 지방에서 찍고 싶다. 워낙 돌아다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스케줄이 좀 빡빡하게 될 듯하다. 마지막 장면은 촬영 맨 마지막에 지방에서 찍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고 있고, 총이라던가 하는 것도 욕심을 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게 저예산 규모에 맞는 영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 국방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국방부가 원래 좀 예민해서, 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굴었다고 들었다. 우리 경우 나중에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방부의 지원에 대해서는 ‘원천적 포기’의 입장이다. 탈영병이 무장 탈영하는 얘기는 사실 세지 않나.


이송희일 감독
직접 찍은 (발)사진이라능.


– 처음부터 끝까지 쫓는 자와 도망치는 자의 ‘달리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한 마디로 ‘멈추면 죽는다’는 거다.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 풍경과 비슷하다. 엊그제 집회를 갔는데 안 잡히려고 계속 도망 다니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멈추면 잡힙니다!’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마치 우리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부터 탈영병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혼자 습작해본 소설도 탈영병에 관한 얘기였고. 다만 머릿속에 그렸던 건 좀 올드해서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에 힘이 들었다. 예전에 단편이나 <후회하지 않아>의 작업을 할 때는 혼자 콘티도 없이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연출부들과 함께 각색했다. 처음 시나리오엔 주인공들이 은행도 털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과연 그게 맞나 생각이 들어서 결국 뺐다. 주인공 세 명이 탈영하게 된 계기는 모두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도 그렇고 다음 영화들도, 장르가 호러가 됐든 아니든 당분간은 쫓기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찍을 것 같다. 세상이 별로 안 좋으니까. 사르트르 시절에 활약했던 보리스 비앙이라는 가수가 부른 ‘탈영병’이라는 샹송이 있는데 가사가 너무 좋다. 군대 가지 말자고, 죄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원래 가사는 ‘쫓으려면 얼마든지 쫓으세요, 내겐 총이 있으니까’라는 내용이었지만 가사가 검열되면서 ‘쫓으려면 쫓으세요, 제겐 총이 없습니다’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만큼이나 유명한 노래다. 그 노래의 정서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 로드무비라 할 수도 있겠다. 쫓는 사냥꾼들의 모습도 넣지 않을 거라고 밝혔는데.


처음부터 쫓는 이의 장면을 넣지 말자고 했던 건 사실 돈이 없어서다. 탈영병의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캐릭터가 부딪히는 가운데 나오는 스릴을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는 장르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이 영화 역시 그런 장르문법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 그러나 한국영화엔 그런 게 별로 없다보니 투자를 위해 시나리오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이 당황하더라. 내겐 너무나 친숙한 장르인데 사람들은 많이 낯설어하곤 한다. 군대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처음부터 탈영병들이 하는 영화는 처음이니까. 굳이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세 사람이 계속 도망친다는 점에서 <세상 밖으로> 정도? 단편들의 경우 군대 내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들이나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등장하는 것 같다. 다만 아직 장르화되지 않고 장르의 옷을 입은 예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싶긴 하다.


– 헐리웃 영화들에는 원래 그런 장르의 영화가 많지 않나?


원래 <병사의 시>라는 휴가병에 관한 영화를 보다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탈영병 영화를 여기에 섞자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 장르의 옷을 입히는 것이 관건인데, 결국 많이 참조한 게 갱스터 로브무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니콜레스 레이 감독의 영화들 말이다. 전적으로 장르영화에 붙지는 않아서 애매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내용도 들어가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군대를 막 비판하고 그러는 영화는 아니다.


–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엎었다.


1억짜리 영화를 찍던 사람이 갑자기 50억짜리 영화를 찍는 게 스스로 맞지 않은 옷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판이 요 몇 년 안에 바닥을 칠 것 같은데 이런 듣보잡 감독에게 누가 50억이나 투자를 할 것이며, 내 성향이 원래 사회비판적이라 내용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액션영화로 포장한들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싶더라.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본 거지. 50억을 갖고 하려던 영화 역시 실은 다소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그 소재는 언젠가 꼭 한번 영화화하고 싶다.


– 하지만 많이들 단편 몇 편 찍다가 바로 웬만한 예산이 들어간 장편들을 찍지 않나.


신인감독을 소비하는 현상 아닐까. 2000년대 초반쯤 한창 거품이 일 때 영상원이나 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감독들을 ‘젊은 천재 감독’이라 포장하며 데려와 눈먼 돈을 끌어들여 영화들을 찍어댔지만 대부분 결과가 안 좋았다. 트레이닝도 제대로 안 돼 있고 탄탄한 기획 마인드로 접근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결과가 안 좋았던 감독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인감독 역시 모두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모두가 나홍진 감독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 독립영화라는 게 개념이 좀 애매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독립영화는 무엇인가?


독립영화란 굳이 얘기하면 1920년대 지하영화들부터 개념이 시작되고, 한국에서 인디영화는 유럽보다는 미국의 개념을 직수입한 면이 크다. 6, 70년대 미국 스튜디오 바깥에서 찍은 영화들 말이다. 인디포럼 행사의 일환으로 독립영화워크숍을 하는데 거기에 가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 한 얘기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 한국 독립영화는 이제 사전적인 의미만 남아있는, 화석화된 개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독립영화의 사전적 의미가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인데,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추격자>가 90년대에 나왔다면 검열 대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영화 같은 경우 제한상영가 받긴 하지만 일부의 현상이고. 오히려 이런 검열은 영화보다 방송이 더 심하다. 내 영화는 공중파에서 튼 적이 없다. 공중파에서 내 영화가 상영되면 사회가 그만큼 좋아진 것 아니냐, 하는 좀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젠 표현수위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아니다는 좀 무의미해진 측면이 있다. 오히려 독립영화들이 훨씬 개인적이면서 멜랑콜리한 감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반면 상업영화들은 장르 안에서 표현 수위 등을 고민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면도 그렇다. 요즘은 거의 국가기관에서 지원받아서 영화를 만든다. 이건 물론 비영리를 목적으로 영화를 공공재로 인식하면서 국가에서 출자하는 돈이긴 하지만, 예컨대 1억, 혹은 4억짜리 영화들을 그런 돈으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가의 문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영진위로부터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극장에서 개봉하면 그 순간부터 ‘상품’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 아닌가. 엄격하게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모든 게 애매해진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의 정의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시스템과 관련한 것이다. 스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고 배우 역시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감독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과연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물론 이 역시 애매한 문제이긴 하지만,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얘기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보자. 그가 만든 <방문자>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LJ 필름이 제작사긴 하지만 분명 독립영화의 마인드로 만든 영화가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인디포럼에서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고, 신동일 감독 역시 자신을 독립영화 감독으로 포지셔닝하며 이번 인디포럼의 트레일러도 제작했다.


– 배급사가 메이저인 프라임인데도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2년 이상 개봉 못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그렇다. 애매하니까. 사실 청년필름도 상업영화사가 아닌가. <후회하지 않아>도 케이블 판권을 먼저 판 돈으로 제작했고 나중에야 영진위 독립영화 지원책의 일환으로 마케팅비를 2천만원 받았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 때문에 독립영화 지원책이 만들어진 면이 있다. 그러니까 1억짜리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생색내기용으로 만든 제도인데, 이게 살 깎아먹는 역효과가 날 거란 예상이 점점 들어맞고 있다. 1억으로 영화를 찍으려면 스탭 인건비도 그렇게 한계가 너무 명확한데, ‘1억짜리도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한다. KT&G에서도 1억원 지원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은 영진위의 지원금으로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영진위 영화사의 직원들’이라는 농담이 돌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디영화란 제작 시스템이란 측면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전권을 부여받은 소수의 스타 흥행감독들의 영화도 독립영화로 불러야 하는가?


감독의 자율권 그 자체가 아니라, 감독의 자율권이 작동될 수 있는 전체 제작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저예산 영화도 스탭들은 계약을 다 한다. 계약을 먼저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것이 갈리기 때문이다. 이건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말이 되려면 스탭 노동에 대해 프랑스의 예술노조처럼 다른 방식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프랑스 예술노조에 소속된 스탭들은 5개월간 촬영을 했다고 하면 나머지 기간 동안은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받는다.


저예산영화에서의 계약 역시 상업영화에서의 계약을 재현한다. 그렇다면 독립영화는 무엇이 다른가? 독립영화의 전제는 아무래도 독립영화를 한다는 ‘공동체’의 측면일 것이다. 예컨대 어떤 영화들은 분명 저예산에 게릴라 방식으로 찍었음에도 왜 독립영화라 칭하지 않는가? 왜 누구는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게 되는가? 이건 감독이 독립영화를 호출하는 방식, 특히 자신을 포지셔닝하면서 독립영화를 지향하느냐, 독립영화 감독의 공동체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배제의 작동 원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배제의 논리보다는 긍정과 포용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다소 선언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란, 독립영화 공동체 안에서 지향하는 바를 얼마나 자신이 지향하는가이며, 장기적으로는 제작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다. 미국도 선댄스영화제가 있기 때문에 저예산 영화는 다 독립영화라 지칭하는 그런 시스템이 존재한다. 저예산 영화가 곧 독립영화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게 결정적으로 선댄스 때문이 아닌가. 유럽은 인디영화란 표현 잘 안 쓴다. 오히려 예술영화냐 아니냐로 구분하다. 전세계마다 다 다른 듯하고, 한국에서도 기자들은 물론 내부에서도 이론이 분분하다. 단편영화만 찍으면 구분이 오히려 쉽지만, 장편 3억짜리를 찍고 나면 스스로도 혼란을 느낀다. 그런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한독협이 요즘은 국가의 돈을 지원받아 집행하는 관료 집단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좀 있기도 하고.


– 장편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숫자가 적다.


장편영화를 만드는 인디감독 중 내가 제일 나이 많다. 내겐 롤 모델이 없다. 모두들 상업영화 씬으로 달려가거나 그나마도 결과가 안 좋아 사라져 버렸다. 홍기선 감독님의 경우 <선택> 이후 별다른 작품이 없고, <선택>도 애매한 경우다. 사실 독립영화 진영에서 장편 극영화는 이제 2,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이것도 디지털이 보급되면서 제작비가 줄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맹아 수준이고,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영화의 숫자도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인디영화의 시장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상영공간의 숫자가 좀더 확보가 됐으면 좋겠지만.


–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의 인건비라는 측면은 영화노조와 부딪히는 면이 꽤 있을 것 같다.


사실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을 그렇게 쓰는 게 또 다른 착취, 또 다른 도제 시스템인 측면이 분명 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그 자체와 영화의 공공성 부분을 사유하자는 것이다. 영화 스탭들과 관련해 진보신당에서 굉장히 좋은 공약들을 내놓았는데, 이런 것들을 ‘귀찮게 괴롭히면서’ 연대할 마음도 있다. 사실 청년필름에서 저예산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도 답이 하나밖에 없다.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예산을 미리 공개하는 대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 올해 영화노조에서는 제협 측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에 대해 흥행 개런티 지불을 교섭안 중 하나로 요구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건 충무로의 자충수라고밖에 할 수 없다. 노조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가장 첫 단계인 셈인데, 작년 제협과 교섭안 타결 때 저예산 영화의 부분을 그냥 제끼고 갔다. 그런데 요즘 충무로의 일반 평균 예산이 8억이라고 하더라. 충무로 일반 영화의 예산이 8억이 되면서 작년엔 생략했던 부분에 대해 그런 식의 요구를 하게 된 거겠지. 영화노조와도 잘 연대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입장이 겹치는 부분이 적다.


– 헬리캠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던데, 그건 뭔가.


탈영병에 관한 영화인 만큼 헬리캠을 사용할 계획인데, 이게 1회 대여비가 상당히 비싸서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영화라는 게 한번 보면 끝나는 7,000원짜리 상품이라기보다는, 관객들이 놀이의 일환으로 함께 참여하는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 이송희일 감독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영화 소개 페이지(http://gondola21.com/run/escape2.htm)에서 헬리캠 후원단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 인터뷰 (2008. 5. 9)


2008년 전주영화제가 ‘디지털 삼인삼색’을 위해 고른 감독은 우리에게는 낯선 영화대륙, 아프리카 출신의 감독들이다. 혹자들은 아프리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지만, 아프리카 역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거장들을 두루 배출해냈다. 2008년의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은 바로 그 아프리카가 배출한 감독들 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부르키나 파소), 마하마트 살레-하룬(차드), 나세르 하미르(이집트) 감독을 선정했다. 이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아프리카가 배출한 거장 중 거장이지만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다.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 더 늦게 한국에 도착해 핸드프리팅과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자료들을 찾다가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이 우리가 몰랐을 뿐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감독인 걸 알고 깜짝 놀랐고, 기자회견에서 빠진 만큼 따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심지어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두대간이 씨네큐브를 처음 개관하면서 선택한 개관작이 바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야바>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비디오로도 정식 출시된 바 있다.) 마침 내가 당시 전주영화제에서 번역한 영화 역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키니와 아담스>였다.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그 감독이 풍기는 아우라에 한동안 뻑갔(…)고, 아프리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가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 페스파코를 꼭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 영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싶다. 이 인터뷰는 원래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에 실렸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감독인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미국의 9.11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2001년 9월 11일>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거장이다. 부르키나 파소 태생인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1989년작 <야바>로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이듬해 <틸라이>로 같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삼바 트라오레(Samba Traore)>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부르키나 파소에서 개최되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로서 ‘제3세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페스파코(FESPACO : Festival of Pan-African Cinema in Ouagadougou)를 이끌고 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2008 – 귀향>에 <생일>로 참가한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동 섹션에서 상영될 자신의 장편영화로 97년작인 <키니와 아담스>를 선택했으며, 이 영화는 2일날 상영된 바 있다. 비행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과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 그를 프레시안이 따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만큼 우에드라오고 감독과의 대화는 ‘디지털’에 관한 것으로 시작됐고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폐쇄 직전의 극장 5곳의 운영권을 부르키나 파소 정부로부터 얻은 뒤 이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물론 후배들과 주로 디지털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이런 경험 때문에 디지털에 대한 견해가 매우 뚜렷했다.


– 필름 작업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매체가 가지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필름과 디지털은 종류가 아주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차에 비유하자면 메르세데스와 벤츠는 기능과 가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은가. 다만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여전히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술적으로 아직 해결이 안 된 것 같다. 그렇기에 디지털이 가진 고유 특성에 대해 주로 얘기해 보자면, 디지털은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장치이다. 또한 필름 작업이 10배에서 20배의 제작비가 들고 조명과 배경 등 꾸며야 할 것이 많은 반면 디지털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필름과 디지털은 광학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디지털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속성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공간적 깊이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카메라나 필름 혹은 디지털도 모두 유럽의 발명품이 아닌가? 아프리카처럼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하얀 것은 모든 것을 반사하고 검은 것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강한 햇빛 하에서는 배경색이 거의 하얗게 뭉개져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아침에 해가 뜨기 전 혹은 햇빛이 강해지기 전 오전에만 찍을 수밖에 없으며,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만 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좋은 디지털 영화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 사실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올 때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결국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되지 않았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모든 기술적 혁신에는 언제나 제약과 반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디지털 매체가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질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필름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민주적인 매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남의 눈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디지털이 조금 더 쉽게 열어줬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면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지금의 제약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건 같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지만.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영화는 이미지다. 다만 도구가 달라지면 제약도 달라지며 작업 도중 얻게 되는 즐거움도 달라진다.”


– 영화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는 아프리카에서 디지털이 영화의 발전과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시장의 논리를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작을 해도 배급이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이지리아와 같은 큰 나라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에는 작은 규모의 국가들이 매우 많은데 이런 나라들은 인구수도 1,000만에서 1,500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 중 8, 90%에 해당하는 인구가 극장이 하나도 없는 외지나 시골에서 산다. 디지털로 쉽게 찍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극장이 없어 배급이 안 되는 것이 더 문제다. 영화는 예술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산업적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시아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는 8,90%의 인구가 영화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그리 열려있는 사회가 아니다. 과연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얼마나 상영되는가? 이것이 오히려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다. 디지털로 아무리 영화를 찍어도 시장이 없고 극장이 없기 때문에 결국 TV에서 방영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야바>가 한국에서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거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Idrissa Ouedraogo
별도의 핸드프린팅 장에서. (JIFF제공)
– 당신이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 영화제인 페스파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부르키나 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열리는 경쟁영화제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영화들만 상영한다. 여기에는 디아스포라(해외에 흩어져있는 아프리카인들)들의 영화도 포함된다. 물론 관객들은 해외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규모가 아주 크다. 전주영화제는 페스파코에 비하면 ‘아가’에 불과하다. 영화제 기간 전체가 축제다.


–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페스파코의 역할 혹은 취지와 의미를 설명해 달라.


7일에서 10일 정도의 단기적인 축제라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극장이 없는 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오히려 텔레비전이 영화를 만나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페스파코는 원래 처음에는 영화제 형태가 아니었고,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들이 각자 겪었던 제작과 배급에 관한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단순한 만남에서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시장이나 배급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 힘들지만 감독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화제라는 축제 형태가 된 것이다.


처음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영화가 아프리카의 문제를 아프리카 사람의 눈으로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곧바로 현실적인 논리 앞에서 깨져버렸다. 영화가 창조적인 예술인 건 사실이지만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 어떤 다른 매체보다 더욱 자본의 구속을 크게 받는 매체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곧바로 인식 전환이 왔다. 사실 아프리카는 작은 국가들이 많은데 그런 나라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며 아프리카의 영화들은 90%가 해외의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부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품이다.


–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품은 <야바>와 <틸라이>인데 굳이 <키니와 아담스>를 전주영화제 상영작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야바>와 <틸라이>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프리카 내부의 고유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 반면 <키니와 아담스>는 짐바브웨라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은 실제 아프리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끊임없이 부자가 되려하고 이것을 ‘차’라는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는 눈이나 요구하는 것이 항상 똑같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인들 역시 외관상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본질적 모습은 서양인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 서양인이 요구하는 한 가지 모습이란 어떤 걸 가리키는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 경험을 했고 그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의 문화가 있으면서 제국주의의 시대에 다른 문화를 타의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두 문화가 대화를 하고 내가 다른 문화와 민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문화밖에 모른다. 자기의 시선만을 가진 채 다른 이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매우 어리석은 시선이다.


영화 역시 문화적인 산물인데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유럽인들에겐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다행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유학을 하면서 이것이 서로 다른 시각과 사고를 교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의 출신으로 제국인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만큼 당신은 프란츠 파농을 연상시킨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당신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는 이미 끝났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내가 가진 힘이다. 독립은 1960년대에 됐는데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는가? 아니다, 지금은 옛날의 노예문제보다 더 해결하기 힘든 세계화라는 싸움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현존하는 괴물이 더욱 문제이며 이것은 훨씬 복잡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석유값은 나날이 폭등하고 아프리카가 아무리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도 아시아는 쌀 생산을 무기로 수출을 안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문제이지, 식민지는 문제가 안 된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두 문화를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배워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식민지 시대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파리에서 공부했다. 레오폴드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가 죽었을 때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헌사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는 모두 아프리카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유명한 시인이자 동시에 정치가이다. 둘 다 흑인정체성 회복운동인 네그리튀드를 이끌었다.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는 프랑스령이었던 세네갈이 독립하자 최초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36년에 이 유학생들은 프랑스에서 ‘흑인학생들’이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서문은 “우리들은 자본주의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서 느꼈던 지적인 갈증은 바로 자유롭고자 하는 갈증이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가 흑인이고 식민지 출신이니 쟁취해야 하는 그런 1차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뜻한다. 그러니 식민지 출신 지식인의 정체성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중요한 것은 타 존재가 있고 그와 교류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고 울 수 있다는 건 배우고 경험하면서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험과 배워서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며 부르키나 파소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 <키니와 아담스>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영어 영화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것에 언제나 관심이 많으며, 다른 언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같은 아프리카에 있음에도 서부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다. 남아공화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영화 자본이나 시장을 가질 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나도 잘 몰랐던,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잘 몰랐던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두 아프리카 사이의 통로와 교각의 의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도시를 동경하던 두 남자가 결국 관계의 파국을 맞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물질 때문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아프리카를 잠식해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 예컨대 의료나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소수의 몇몇에 의해 자본의 투기화가 진행돼가고 있다. 이것이 전 지구를 미친 자본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야만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건 사실이지만 의료나 가난, 빈곤 등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유한 나라에도 그 내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래적으로 추구하려던 것들, 예컨대 사랑이나 연대 같은 것을 언젠가는 다시 찾으려고 들 거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될 순간이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엔 굶어죽나 아파서 죽나 총 맞아 죽나 어차피 상관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결국 반란이나 혁명까지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됐건 어디가 됐든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이 미친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될 것이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두 사람의 우정 관계에서는 아담스가 키니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것뿐 아니라 동성애적인 집착도 보이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인가?


동성애적인 사랑을 의도한 건 아니다. 우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플라토닉한 정신적인 사랑이다. 아담스는 떠나려 하지만 결국 떠날 수 없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우정이 너무 강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 당신은 어떤 감독들을 좋아하며 누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오손 웰즈, 빔 벤더스 등을 들 수 있겠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도 무척 좋아한다. 사실 나는 휴머니티나 사랑, 즐거움 등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영화들을 두루 좋아한다. 때문에 어떤 특정한 영화를 꼽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응수 감독 인터뷰 (2008. 3. 27)


내 생애 첫 단독인터뷰의 대상은 신동일 감독이었지만, 실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가 개봉할 당시 김응수 감독이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될 뻔했다. 인터뷰 때문에 김응수 감독을 만나러 가던 길에 자그마한 소동을 겪었고, 그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가 나중에야 다시 만났다. 사람 만나는 것도, 인터뷰란 작업 자체도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던 당시, 언론시사로 본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 시사가 끝난 뒤 몇 명 남지 않은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했었고,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아 비로소 인터뷰라는 걸 해볼 욕심이 생겼다. 영화를 이미 봤음에도, 영화사로부터 스크리너를 받아 다시 한 번 꼼꼼이 보며 인터뷰 질문들을 정리했던 게 기억난다.


기사가 나간 뒤, ‘길고 재미없다’고 데스크에 또 혼이 났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줄이고 잘라낸 것인데. 하지만 그 이상 그의 말을 잘라내고 싶지 않았다. 감독이 자신의 의지를 매우 또렷하게 영화에 반영했다면, 그리고 그 의지를 인터뷰를 하러 갔다면, 되도록 그의 말을 충실히 싣는 게 좋지 않은가. 많이 배웠던 인터뷰였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싶고 지향하는 인터뷰란 게, 결국은 이런 식인 것 같다. 일간지 포맷에는 다소 맞지 않는, 인터넷 매체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길고 지루한. 이 기사는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에 실렸던 것이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기존의 추모 다큐멘터리의 형식 대신 인터뷰만으로 일관하는, 형식의 파괴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죽고 2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치열한 노력을 카메라에 담으며 ‘망각에 대한 투쟁’을 펼친 김응수 감독을 프레시안이 만났다.


–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영화를 제작했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기존에 역사를 바라보며 추모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다못해 영정이나 추모식 사진 같은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내 의도대로 봐주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를 기억하고 망각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게 이 영화의 주가 되는데 사실 그런 식의 구체적인 비주얼을 삽입해 버리면 힘이 빠지지 않는가. 투쟁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겨우 저걸 기억하려고 힘들게 저럴까 싶을 거다. 기억이 어떤 식으로 남아있든, 단편적이든 사실과 조금 다르든 시점이 어긋나든,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망각 속에서 기억 속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걸 다룬 영화니까. 전형적인 추모 다큐멘터리처럼 몇월 몇일에 태어나 어디에서 살았고 학교는 어땠으며… 이런 식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고 힘이다.


 – 사실 그런 식으로 구성하면 김세진, 이재호 씨가 영웅으로 신비화되긴 한다.


그것도 우려가 됐다. 영화에서 나는 ‘열사’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았고, ‘분신’ 대신 그냥 ‘죽음’이라고만 표현했다. 각자가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고 정리하는 거지 한 집단이 의미를 규정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강요해선 안 된다. 그들은 물론 엄청난 일을 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와 함께 살던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여자친구도 있고 데이트도 했고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 얘기할 때 나는 그들을 세진이 형, 재호 형이라고 호칭한다. 그런 삶의 호흡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는 왜 불가능할까, 의문이기도 했고.


추모비 뒤에 고은 시인의 추모시가 있다. 아주 시적인 표현들인데 난 그것도 보기가 힘들고 부담스럽다. 그거야말로 한순간의 느낌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상화시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예전에 한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그러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하더라. 안에서 서로 간 싸움도 생길 거고 밖에선 또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기 쉽다고. 우리의 마음이 어떻고의 차원이 아니라, 이게 사회의 역관계 속에 있고 현재진행형인 만큼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과거와의 투쟁 아닌가. 대략적으로 역사가 정리가 되지 않고 여전히 혼란한 상태여서 그렇다.


– 20대들은 주로 낯설고 불편하다고 반응하는 듯하다.


낯설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불편하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반응 같다. 편하게 볼 영화라면 박물관에서 흔히 전시물 틀어놓은 거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다. 그저 수동적으로 별 고민 없이 그냥 보고 받아들이고 곧 잊어버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서적 작용이 있었다면 그건 좋은 거지. 지난번에 이 영화를 봤다는 어떤 20대 여성은 그냥 멍했다고 반응을 보내왔더라. 20대인 자신에게 역사는 뭔지 과거는 뭔지, 선배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멍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런 반응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액션이 있다는 거니까.


– 영화의 총예산은 어떻게 되나?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5천 5백만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받은 지원금 1천 4백만원, 해서 총 7천만원 정도로 찍었다. 기획서에서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지 자세히 밝혔는데, 김세진 이재호가 죽었을 때만도 반미는 사형을 각오하고서 외치는 거였지만 이제는 국가의 단체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느꼈다.


– 총 제작에 걸린 시간은?


1년 6개월이다. 제작 의뢰를 받고 고민한 기간만 4, 5개월 된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어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다. 기존의 80년대를 다룬 추모 다큐멘터리 형태로 가는 건 내가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기록물이 전혀 없어서 가능하지도 않았다. 80년대 전반에 관한 기록은 있어도 그들의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하다 보니 다른 다큐멘터리를 보면 공부를 했는데, 유태인 학살을 다룬 <쇼아>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쇼아>를 보면서 증언과 인터뷰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이 그 형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쇼아>를 보면 가스실이나 수용소에 대한 공포가 직접 그 건물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드러난다. 관객에게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그 이미지를 스스로 머릿속에 쌓아올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건의 경우 3일 내내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그 과정 모두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 누구는 한 시간 동안 만났고 누구는 직후에 봤고… 이걸 조합해 보자 생각했다. 사람마다 그들을 목격하거나 함께한 시간과 공간은 다 다르지만 그걸 모으다 보면 맞춰지겠지 생각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던 건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윤곽을 잡아내더란 점이다. 3일의 기간 동안 누구는 어디에 앉아있고 누구는 옥상에 올라가고, 일관적인 흐름이 있는 그림이 잡혔다. 그것만으로 성공했다 생각했다. 형상을 그려냈으니까. 그렇다면 굳이 사진이 없더라도 이것으로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찍는 과정에서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못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누가 그걸 다시 대면하고 싶겠는가. 섭외가 됐다 해도 막상 찍으려고 하니 시간을 맞추는 것도 어렵더라. 모두들 각자 생활인이다 보니 일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주말마다 개인적인 사정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촬영을 드문드문 하느라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도 공들여서 했다.


김응수 감독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담아야 하며, 그 진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제공 _ KT&G 상상마당)


– 인터뷰이 중에 이정승 씨는 이전에 한겨레21에도 증언을 하신 적이 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이전에 공식적인 증언을 했던 사람은 이정승 선배뿐인 것 같다. 인문대 학생회장이라는 공식적 활동을 했던 사람이고 김세진 형과 친구처럼 지낸 사이니까. 도의적으로 친구의 기억을 위해 자신이 안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 싣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여자친구 얘기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 여자친구를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영화가 긴 기간에 걸쳐 들쭉날쭉하면 내가 감당을 못 하니까, 결국 3일간 팩트 중심의 이야기로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증언을 하신 분 중 녹취를 하신 분은 왜 목소리만 제공하신 건가? 얼굴 공개를 거부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원래는 인터뷰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자료 수집 와중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년필과 안경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듣고 있다가 자신이 만년필과 안경이 챙겼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알고 보니 그가 분신 때 옥상에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인터뷰 대상으로 결정했던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얼굴을 보여주려고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가장 적당한 건 녹취구나 판단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녹취를 땄다. 녹취를 듣고 보니 상황이 얼추 아귀도 맞고. 다만 그 사람은 용우한테 줬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재식에게 받았다고 하고, 그 사이에 간격이 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 사람이 용우에게 주고 용우가 재식에게 준 것 같다.


어쨌든 전날 의대(연건동 서울대 의대)가지 갔다가 학교(신림동 본교)에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신림사거리에 가서, 옥상 밑에 있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고 안경과 만년필을 주고… 3일의 사건을 하나로 관통하는 인물이다. 옥상에 올라간 사람은 그 사람 하나니까, 그 사람의 녹취를 영화 전체의 중심으로 놓고 다른 인터뷰들을 맥락이 비슷한 위치에 배치했다. 예를 들면 여자애들이 울고 있는데 사회학과 아이였던 것 같다는 증언 뒤에 여자의 인터뷰를 넣었고. 꼭 그 사람은 아니지만 대략의 연관성을 가지도록 구성을 했다.


– 인터뷰에서 굳이 정면샷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카메라가 바라보는 관객이고 세상이라 한다면, 인터뷰이들이 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들은 인터뷰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눈을 보지 않은 채 그냥 옆에서 찍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일부러 카메라를 완전 정면으로 향하도록 했다. 인터뷰어인 나와 그들이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자, 그들과 관객, 그들과 세상이 서로 정면 대면하는 것이다. 그럴 때 관객에게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 그 얼굴이 말해주는 것들, 이런 걸 찍기를 원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인터뷰가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 얘기가 진행될수록 카메라가 인터뷰이에게 접근하여 얼굴 클로즈업으로 간다.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인가?


그렇다. 설정한 것이다. 찍기 전에 대강 이런 얘기를 이런 흐름으로 갈 것이라고 의논을 했고,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이를 숙지하고 있었다. 이건 사실 ‘감’이다. 이런 얘기 즈음에서 앞으로 가고, 다시 앞으로 가고. 물론 편집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계속 밀착해 들어가는 거다.


– 그런데 이정승 씨 인터뷰 때만 유일하게 카메라가 픽스된 채 이동이 없다.


그건 의도라기보다는 인터뷰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정신없이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서인데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이정승 씨가 얘기한 부분이 일종의 클라이막스인데, 오히려 그 부분이 객관적으로 찍힌 것 같다. 카메라맨이 놓친 것이거나 편집에서 잘린 걸 수도 있겠다.


– 이재호 아버님의 인터뷰가 끝난 후 갑자기 크레딧이 삽입되면서 이를 계기로 영화가 둘로 나뉘는 느낌이다.


아버님이 나오고 비오는 대문이 보이는 것이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자막을 넣었다. 감정을 기대하지 말라, 당신이 감동한다거나 슬퍼한다고 해서 이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라는 게 내 의도니까. 이 영화가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몰입시켜서 눈물을 짜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영화라는 걸 상기시켜 주면서 분위기를 깨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2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영화를 딱히 2부로 나눈 건 아니지만 그 뒤부터 영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 않는가. 공간도 하늘이나 바다로 가버린달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았다.


– 서울대 내에서의 인터뷰가 이어지다가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 중간자막으로 구분이 되는 건가?


그렇다. 계속 학교 내부에서 찍은 후 아버님을 찍고 아버님 뒷모습이 나온 뒤 대문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거다. 계속 안에 있다가 바깥을 향해 나가는 느낌인 거지. 그래서 변산으로 간 거고. 다큐멘터리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외부 공간을 선택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이다. 대개는 그냥 일반 삶 속에서 찍지. 이건 꽤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뭔가 구름 속에서 형상을 찾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 같기도 하고. 바다도 쨍한 바다가 아니라 안개가 낀 것 같이 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뒤로 섬도 보이고 등대도 있고… 게다가 어쩐지 물에 그렇게 집착이 가더라. 비도 그렇고. 물로 뜨거운 걸 꺼주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하늘이 주는 허허롭고 공허한 허공의 이미지, 그리고 뜨거운 걸 꺼야 할 것 같은 물의 느낌 같은 걸 살리고 싶었다. 그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인 거고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나 의미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상징을 찾더라.


– 폐쇄적인 상아탑의 공간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맞는 느낌일 수 있는데, 그건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문제인 것같다. 내가 나름 설정한 마음의 흐름이 있다고 해서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보라고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당신처럼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물의 이미지가 불의 이미지와 부딪히면서 강렬한 걸 느꼈다고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멍하니 보면서 구체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파도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 나 역시 마지막 파도소리를 총성인 듯 들었다. 의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연상을 하게 하는 건 사운드든 공간이든 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상은 각자 자기 경험 속에서 자기 주관성과 만나는 것이다. 대체로 20대들은 당신처럼 느끼지 않는다. 안개 속의 풍경처럼 잘 모르겠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파도소리는 총소리보다는 물이 딱딱한 바위를 부서져라 치면서 깨려는 듯한 느낌을 의도한 거다. 사운드 믹싱을 하는 엔지니어에게도 무조건 세게 넣어달라고 했다.


– 마지막으로 감독이 인터뷰이가 되는데,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굳이 앞으로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망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내 투쟁을 시키고 있으면서 정작 나는 그들 앞에서 심문관으로 서 있다.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심문관 역할을 하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당해야 하는가? 그건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의 문제이기도 한 거다. 나도 같이 당해야 한다. 내 인터뷰 장면 때문에 다른 인터뷰이들도 다 수긍을 하고 영화가 끝났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들 나중에 자기 거는 빼달라고 했을 거다. 할 때야 큰 생각 없이 하는데 찍힌 거 보면 쑥스러울 테니까. 그런데 내 인터뷰 장면을 보고 말들이 없더라고. 그래서 영화가 정리가 된 거다.


– 영화라는 게 감독의 것인 것만큼 그 목소리를 감독의 시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아니, 내가 통합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심문관의 자격이 있는가? 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 3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이 증언한 인터뷰에서만 짐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다가 나중에 군대에 끌려간 다른 사람 얘기가 끼어든다.


그것도 3일에 관련된 얘기다. 김세진, 이재호가 주도한 의대 점거농성 투쟁과 관련된 얘기니까. 오히려 그 전에 3월 18일 반전반핵 평화투위가 뜨던 날 이재호를 만난 얘기, 그리고 학생회비 걷어서 김세진 선배를 찾아간 얘기가 3일과 관련없는 얘기이다. 이건 일부러 넣었다. 두 사람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이 너무 없기에 형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난 두 사람을 원래 알았던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이후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기억이 난 거다. 자연대 학생회실에 갔다가 김세진을 만났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도 이상하게는 느꼈다.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라고? 머리도 길고 미소년 타입에 예쁘게 생긴 데다 딱 부잣집 아들 티가 났다. 이재호 선배는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게 기억난다. 그땐 반미 얘기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얘기였으니까. 난 주체가 아니었으니 그런 절대절명의 기분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면 그 날 시위도 좀 달랐다. 예상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전반핵 외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에너지가 달랐고 목소리도 똘똘 뭉쳐 있었으며 불안과 함성 같은 게 다른 때와 차원이 달랐다. 그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구호 자체가, 참여 자체가 공포스러웠기에 집회도 오래 할 수 없었는데, 도서관 통로 지나갈 때 구호 때문에 통로가 막 울렸던 것도 기억나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사형을 각오하고 외친 반미 구호였으니 이 중에 누구는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게 기억날 정도다.


– 오늘날에 외치는 반미 구호는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를까?


그때 문제제기가 됐기에 오늘날 우리가 미국이 옳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평화협정 문제도 초보적이긴 하지만 얘기가 오갔고. 그때는 그런 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휴전협정의 주체가 미국과 북한인데 주체가 빠지면 누가 얘길 하나? 논의 주체에 3자, 미국이 있다는 게 그 사건으로 분명해진 거지. 남한-북한, 북한-미국, 남한-미국 간 얘기가 따로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아직도 미국과의 관계 문제가 북한 문제가 항상 가운데에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걸 영화에서 얘기할 순 없었고… 모든 문제가 같이 풀려야겠지.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기타 등등. 북한 문제가 풀려야 우리 문제도 풀리는 것 아닌가.


– <과거는 낯선 나라다>의 가치에 대해 특히 영화미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자평하는가?


인터뷰라는 건 단순히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사람의 현재의 존재 자체를 찍는 것이다. 얼굴에 드러나는 현재의 상태,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까지 찍어야 인터뷰의 힘이 발휘된다. 이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는데, 이건 이제까지의 인터뷰가 잘못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힘에 대해 하나의 지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80년대에는 폭로나 고발이 다큐메터리가 가진 힘으로 여겨졌다. 탄압의 시대였으니까. 90년대는 주로 회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게 너무 많아졌고 사람들도 많이 지쳐버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한번 얘기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얼마나 많았나? 그렇다면 2000년대엔 어떻게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할 것인가? 현재와 과거를 결합시키고 현재 속으로 과거를 불러와야 한다. 과거가 저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공기 안에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제기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역사를 다루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더 이상 회고하지 말고 신비화하지도 말자는 거다. 우리의 현재에 과거가 어떻게 남아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듬어 가자고 문제제기를 한 게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큰 의의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 물론 이것은 내 의도이기도 하다.


– 이재호 아버님의 장면에서, 찍을 때 대답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대답을 못 하셨던 장면을 넣은 건 다큐멘터리의 윤리성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연출자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조작한 것은 아닌가?


나는 진실의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이미 학습화된, 준비해놓은 대답을 하셨고 그건 진실의 대답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계시고 아들이 죽었으니 이렇게 얘기해야 부모의 도리겠지 싶은 것들, 아들 친구가 왔는데 뭐라도 대접해줘야겠다는 마음, 동네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 같은 걸 고려해 생각해놓은 답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할 얘기가 없으면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찍었다. 조감독에게도 어떤 게 진실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조감독 역시 대답을 못 하셨을 때가 진실이라고 하더라. 사실 예민한 문제가 아닌가? 아들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보다는 그저 다들 행복하고 잘 살기 바란다는 예의상의 말씀을 하시기 마련이다. 말하고 행동하는 걸 그대로 찍는 건 사실을 찍는 거지만,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아닌 것들은 들어보면 생명력이 없기 마련이다. 이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찍는 거라 생각한다.


– 관객은 그 장면에서 강한 정서적 울림을 받게 된다. 장면을 두고 선택을 한다는 건 감정의 조작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는 내 선택이고,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다 선택의 영역이다. 한 시간 인터뷰해서 모든 걸 다 집어넣을 수 없으며, 그 중 일부분을 내가 선택하는 것 아닌가. 무얼 말하고 행동하는가, 그 사실의 영역을 찍은 후 그 사실 덩어리 속에서 어떤 걸 취할 것인가, 이 사람의 말 중 어느 것이 사실의 진수인가를 선택하는 건 감독인 내 몫이다. 세진 형의 부모님도 증언을 하셨었고, 병원에서의 상황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 증언 역시 사실이고 본인들도 우실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것을 고려하면 그 장면들은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게 바로 진실이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선택을 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찍는 거라 얘기하지만 사실을 얘기해서 과연 뭘 할 건데? 그 뒤에 있는 진실을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보면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실에서 어긋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각각의 증언에서 아귀가 서로 안 맞는 부분들도 있지 않는가? 누구는 8시라 하고 누구는 9시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맞추지 않고 그냥 그대로 넣었다. 그렇게 기억하는 것 자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차원에서의 그런 소소한 어긋남은 핵심이 아니다.


–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여기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이제껏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의 함정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찍는 것. 그 많은 에피소드나 사실 중 내가 보는 진실은 뭔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냥 쭈욱 사실을 찍는답시고 찍는다. 자신의 진실의 관점대로 장면을 선택하고 그걸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거다. 사실만 나열한다면 받을 비판도 없겠지.


– 결국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보는 진실이란 얘기인가?


그렇다. 각자가 보는 진실인 셈이다. 저것은 거짓이고 저것은 참이다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같은 소재에 대해 찍는다면 다른 진실이 나올 것이다. 역사는 완전히 절대적으로 객관화될 수는 없다. 세상을, 사건을 바라볼 때 확실히 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단면들이 합쳐져야 그것이 전체가 된다. 다양하고 다른, 상반된 관점들이 여럿이 있어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광주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면 광주 영화도 다를 거다. 다 뒤집을지도 모르지.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네마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관점을 제시하며 이렇게 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화려한 휴가>는 과연 누구의 관점으로 만든 영화인가? 누군가에겐 광주의 정신에 근접도 못한 채 권력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고 민주화 운동도 지금 누구의 관점대로 서술된 것인가?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죄 같은 건 과연 누구의 어떤 관점으로 정리돼 버렸을까? 다른 사람 눈엔 전혀 어이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내가 보는 관점은 그렇다. 어떤 사람들에겐 90년대에 일반화돼 있던 광주 다큐멘터리 같은 게 객관적인 거라 여겨지겠지. 아무 비판도 있을 수 없는, 그냥 짜깁기된 화면들 말이다. 과거에 이랬고 이런 사건이 이랬고 우린 지금 민주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식의. 과연 그게 지금도 유효할까? 그런 건 객관적인 게 아니라 아예 시점이 없는 것이다.


– 다음 작품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중인가?


시각장애인과 카메라와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다. 극영화를 하면서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과거는 낯선 나라다>를 만들면서 찍는 카메라와 찍히는 대상에 대한 상호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카메라가 내가 가진 눈이 되는 것 같고, 인터뷰이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 같기도 하더라.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등장하는 영화들은 의례 항상 지팡이를 들고 불쌍한 모습으로 훌쩍대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한탄하고, 그러면 사람들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식의 영화들이다. 왜 이렇게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봐야 하나. 그들도 엄연히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랑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죽네사네 하면서 산다. 그리고 이미 시각을 잃어버렸는데 그냥 그 안에서 살아야지 자꾸 완전한 세계가 여기 있고 당신들은 불완전하다는 식으로 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우리야 그 사람들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것뿐인데, 그걸 못 하면서 동정만 하고 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발언하는지 찍고 싶다.


내가 카메라로 찍을 때 이 사람들 역시 정면으로 응시하며 찍을 수 있을까? 못 찍을 거다. 그건 폭력이 된다.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찍는다 해도 이미 그건 우리의 고착화된 시선이다.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찍게 된다. 그들의 눈 자체가 이상하고 불완전하다 생각하며 어색해하는 거다. 그렇기에 내가 이번에 만드려는 영화는 그들을 존중하며 어떻게 찍을 수 있을지, 이들은 어떻게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볼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 영화는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매체인데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찍기가 힘들다. 처음엔 이 시각장애인이 보는 걸 카메라가 찍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못 찍을 거라는 게 지금의 내 결론이다. 문제해결 지점을 찾는 게 아니라 그가 보는 걸 내가 찍지 못한다는 것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 역시 ‘나는 본다’고 표현하며 경계를 넘으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보지 못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 경계 내에서 그냥 인정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영화란 생각을 지금은 한다. 경계를 넘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넘어선다는 건 힘든 욕망 아닌가. 하지만 경계를 정리한다는 건 그만의 성찰이고 성장이다. 그러니까 이건 다큐멘터리보단 극영화에 더 어울린다. 경계를 인정하고 그저 자신 안에서 살 뿐이라는 것, 카메라는 그 사람의 바깥에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상호 그걸 인정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다큐멘터리를 다시 찍고 싶은 생각은 없나? 꼭 만들어보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찍고싶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역시 펀딩의 문제 아니겠는가. 예전엔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게 편했는데 요새는 아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젊었을 땐 사회적 문제에 관심 많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적인 문제나 철학, 실존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는데 나는 반대다. 내 영화를 봐도 알겠지만 오히려 확장되고 넓어진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다. 거기에 영화의 힘이 있다. 개인에 파묻혀 있어 거기에 대단한 게 있는 듯 치장하는 것, 사회를 보는 건 촌스러운 거라는 식의 생각이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역시 광주다. 총체적 시선으로 광주항쟁을 정리하고 완벽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그러던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부족함이 많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점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완벽하게 다루는 건 하느님만 하는 거지. 나는 나의 진실이 담긴 광주를 그리고 싶다. 누군가는 그의 진실대로 또 다른 광주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런 게 쌓이면 사람들이 이것저것 보면서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 물론 이상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누구 한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하면 될 텐데 왜들 안 할까? 나보다 돈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면 좋을 텐데.


–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상처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거야말로 오만 아닐까. 자신을 낮추면 된다.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쟈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영역 속에서 하면 되는 거다. 뭘 두려워하나? 각자는 그냥 한 인간일 뿐인데 뭘 다 정리를 하나? 투쟁도 자기가 호흡하는 인간으로서 하는 거지, 자기로 인해 세상이 변하고 뭐 대단한 걸 이루고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


– 기록이란 게 한번 남으면 계속 남는 건데,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면 되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리서치 하고 사람을 만나보고 어떤 시점이 좋을지 고민하고, 이게 정수다 생각되면 밀고 나가면 되고. 그럼 누구는 너무 투쟁적이다, 너무 시적이다 욕하려나.


–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예전엔 거장 감독들의 후기작들을 좋아했다. 미장센이 잘 돼 있고 형식적으로 잘 짜여져 있는 영화들, 예를 들면 파졸리니의 후기작, 피터 그리너웨이의 장중한 영국식 작품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과 같은 후기작들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엔 초기작들과 다큐멘터리들이 좋아진다. 그 안에서 진실들이 느껴지는 영화들 말이다.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멋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어떻게 접근하느냐, 진실을 어떻게 담을 것이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요즘 내 고민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것이다. ‘나는 본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내게 카메라는 뭔가. 예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 했던 장-뤽 고다르의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요즘엔 마음에 와닿는다. 그의 영화들 보면 유럽의 실존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뒤로 가면서 굉장히 넓어진다. <아워 뮤직> 같은 영화를 보라. 사회, 인류, 이런 거에 대해 너무나 고집스럽고 맑은 느낌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저렇게 안 해도 사적으로 멋을 부릴 수 있고 더 멋지게 나갈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투박스럽게 자꾸 고민할까, 나이가 들었는데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구나, 그런 부분들에서 감동을 느낀다. 영화 매체의 실험도 계속하면서 주제나 소재 면에서 자기가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주제넘은 말이지만, 나도 한 측면으로는 화가가 그림 그리듯 이미지라는 게 뭘까 뭘 재현할까, 카메라는 뭘까, 이런 문제가 많이 고민되고, 주제 면에서는 좀 더 예전보다 넓어지고 있구나 여겨진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자신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인가보다. 예전엔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남이 요구하는 대로 가야 성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이 들면서 그런 데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이런 변화, 스스로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