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클레망 | 태양은 가득히

지금의 감각에는 좀 난감한...


알랭 들롱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이 1960년작은, 확실히 알랭 들롱의 위험천만한 매력 – 야심많고, 비틀려있고, 아름답고, 불안하고, 그래서 더 잔인한 – 을 한껏 빛나게 해줍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소설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원작에 가까운지, 하이스미스의 원작 소설이 원래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맷 데이먼이 톰 리플리로 나왔던 <리플리>와 비교해 본다면 캐릭터간 감정의 흐름이 정반대인 것이 꽤 재미있습니다. <리플리>에서의 리플리는 보통 디키를 ‘선망’할 뿐아니라 동경에서 비롯한 ‘애정’도 갖습니다. 자아도 참 약하지요.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에서는 오히려, 오만하고 난봉꾼인 필립 그린리프(<수영장>에서도 알랭 들롱과 함께 공연했던 모리스 로네가 맡았습니다.)가 알랭 들롱의 리플리에게 압도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물론 워낙 돈 많은 귀족청년이신지라 리플리에게 못되게 굴지만, 특히 요트에서 (톰의 가방에서 자신의 은행내역을 발견한 뒤로) 자신을 죽이고 나면 어떻게 할 건지 꼬치꼬치 묻는 대화씬에서 그런 분위기가 확 살아요. 물론 ‘애정’같은 감정은 없지만, 뭐랄까, 두려움과 함께 경외감도 갖고있는 듯하고, 위협감을 느끼면서도 그걸 은근히 즐기는 듯한 분위기도 함께 있습니다. 육지에서야 돈과 지위로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겉모습을 부풀렸지만, 돈도 자신의 신분도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망망대해 위의 요트에서, 그는 본질적으로 강하고 단단한 존재 앞에 너무나 쉽게 자신의 연약함을 대비시킵니다. 당당하고 오만한 디키 앞에서 연약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톰이 나오는 <리플리>와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겉으로는 그저 돈많은 친구 뒤를 따라다니며 뒷수발을 하는 하인친구를 하는 듯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강하고 단단하고 위험한, 그리고 내면의 불안함을 이러한 강함으로 충분히 상쇄시켜버릴 수 있고 때가 됐을 때 그 마각을 드러내 버리는, 그런 톰 리플리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알랭 들롱의 완벽한 육체입니다. 눈을 치켜뜨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의 알랭 들롱, 결코 두껍지 않지만 아주 단단해 뵈는 근육투성이인 상체를 드러내고 짧은 바지를 입은 알랭 들롱이 새파란 바다 위에서 요트를 몰고 있는 그 한 컷이, 바로 톰 리플리의 성격과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이 표현한 대로 “바다 위에 상체를 벗은 알랭 들롱만으로 영화 한 편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사실 ‘사회적’ 결과물로 얻은 힘으로 가련하게 허세를 부리는 나약한 귀족/부르주아/왕족이, 단단하고 굳은 육체를 가진 노동계급/하층계급의 인물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설정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다부진 육체를 가진 남자배우에게 끌리는 건 이것과 아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의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실제 신분이 어떻건 누군가를 훔쳐보는 데에서 기인하는 우리 시선의 우월한 위치가 저런 두려움의 매혹을 비슷하게 재현시켜 준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알랭 들롱이 귀족의 자제로 출연한다 했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저런 강한 육체성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겁니다.


바로 이 컷...


그러고보면, 앞에 <지하실의 멜로디>에서 제가 느꼈던 알랭 들롱의 매력, 즉, 어느 순간 연약함이 드러나긴 하지만 곧 능숙하고 숙련된 프로페셔널의 솜씨로 정확하고 날카롭게 뒷마무리를 하며 그 연약함을 솜씨좋게 감추어버리는 선 굵은 남자 알랭 들롱의 매력은, 바로 이 영화에서 좀더 젊은 매력의 버전으로 이미 나타났던 것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이번 알랭 들롱 회고전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인 <수영장>에서도 이 매력이 드러나네요. 나타나는 순서는 조금 꼬여있지만요.


영화가 아주 솜씨가 좋아요. 전 사실 르네 클레망의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이 영화가 처음이라, 그의 원래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드러난 걸로만 본다면, 차갑고 날카로운 맺고 끊기의 미학이 잘 살아있지 싶어요. 정확하게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리는 집념의 연출솜씨라 해야 할까. 그러다가 영화 맨 마지막에, 마르쥬 호에 연결된 줄 끝으로 시체가 육지로 올라올 때 쾅! 하는 느낌은, 이제껏 제 템포를 유지하며 쌓아온 냉정하고 정확한 벽돌탑을 그 스스로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정서적 충격을 가하지요.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이어지는 마르쥬의 비명소리는, 이 무너뜨림이 그저 ‘흩어짐’이 아니라 역시 ‘잘 계산된 무너뜨리기’라는 느낌을 주며 순식간에 깔끔하게 정리를 해버립니다. 이후 에필로그처럼 붙는 마무리, 즉 경찰들이 체포하러 오는 것도 모른 채 해변가에서 고급 술을 즐기던 리플리가 전화 왔다는 이야기에 카메라 쪽으로 걸어오다가 스크린 밖으로 빠지고, 카메라가 그대로 바다를 보여준 채 ‘끝’을 맺는 방식은, 그의 범죄가 완전범죄가 되길 바라면서도 들통나기를 바라고, 그에게 역시 매혹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관객에게 어떤 서정적인 허망감을 선사해 줍니다. 아주 멋진 솜씨였어요.

유명한 그 영화음악 테마가 니노 로타의 것인지는 몰랐네요. 오프닝 타이틀에서 니노 로타의 이름을 보는 순간 아주 아련한 향수에 젖는 것같았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만 해도 라디오의 영화음악실에서는 ‘고전적인’ 영화음악 테마가 꽤 자주 흘러나왔고, 니노 로타 역시 단골 아이템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니노 로타는 이미 ‘옛날 영화의 곡들을 만든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는데도요. (그럴 수밖에요, IMDB를 찾아보니 니노 로타가 죽은 게 1979년이었는데요.) 요즘은 다들 한스 짐머나 하워드 쇼어, 제임스 뉴튼 하워드를(엔니오 모리코네마저도 옛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아니 이병우와 조영욱을 얘기하고, 니노 로타를 잊어버린 것만 같아요. 하지만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나 니노 로타의 음악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코폴라의 <대부> 시리즈도, <길 – 라 스트라다>를 비롯한 펠리니의 일련의 영화들과 비스콘티의 영화 몇 편도 다들 니노 로타의 음악이 덧씌워진 작품들이었으니까요.

앙리 베르뇌이유 | 지하실의 멜로디 Melodie en Sous-sol

Any Number Can Win!


감옥에서 막 나온 범죄계의 지존 샤를(장 가뱅)은 오래 전 동료였으나 현재는 마누라와 소위 ‘건실한 삶을 살고있는 친구가 건네준 청사진을 갖고 카지노를 털 계획을 세웁니다. 젊은 몸빵으로는 날건달 백수이자 제비인 프란시스(알랭 들롱), 운전기사로는 프란시스의 매부를 끌어들입니다. 카지노의 호텔에 투숙한 프란시스는 카지노에서 공연하는 댄서를 꼬셔 루트를 만들지요. 그리고 이들의 ‘완벽한’ 카지노 털기 계획은 실행에 들어갑니다. 결과는?


감독 이름도 낯설고, 그 전날 <세번째 희생자>에서 소위 프랑스식 블럭버스터 스릴러에 살짝 실망한 터라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야말로 대박을 건진 기분입니다. 젊고 섹시한 알랭 들롱의 ‘껄렁한 매력’과, 장 가뱅의 품위있고 묵직한 매력이 조화를 이루는 이 영화는, 흑백 프랑스 범죄영화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경쾌한 재즈 음악 사이로 아주 경쾌한 편집과 연출을 자랑하며 스릴있게, 그러면서도 여유만만하게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영화 후반, 카지노를 털기 위해 미리 세운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겨가는 장면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마지막에 현장을 오가는 경찰들 눈치를 보며 태연한 척, 가방을 옮기는 프란시스와 그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샤를을 보노라면 가슴은 콩닥거리고 손에는 땀을 쥔 채, 온몸의 근육을 미세하게 움찔거리며 화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정말… 하하. 나이가 들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왕 범죄영화는 ‘완전범죄’가 좋더라고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가 제작된 1963년이라는 시대배경상 큰돈을 갖고 무사히 빠져나가는 악당을 그리기가 힘이 들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범죄가 뽀록나고 권선징악의 결말을 맺는 것도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게다가 영화가 좀 멋졌어야지요.


아 정말, 낮은 목소리에 중후한 풍채로 무게를 잡으시는 장 가뱅 형님도 정말 멋지시고, 알랭 들롱의 껄렁한 날건달의 매력이 보석처럼 빛납니다. 그런 느물한 남자는 제겐 하나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보통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잘 이끌린다고 하지요. 보통 주변 친구들이 ‘느끼하다’고 표현하는, 느물느물거리는 바람둥이 캐릭터를, 현실에선 결코 좋아하지 않는데 영화 속에서 호감배우들이 할 때만큼은 뒤로 껌벅껌벅 넘어가거든요.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도 반데라스 옵화의 그 느끼한 매력이 어찌나 좋던지!) 저는 알랭 들롱이, 호탕하게 웃는 것보다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거나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젊은 날건달 백수 제비의 매력 역시 알랭 들롱에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알랭 들롱은, 자신에게 더없이 잘 어울리는 두 개의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까지 알랭 들롱의 프란시스는 번지르르한 얼굴에 속은 얄팍하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양아치 청년입니다. 취직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그야말로 철딱서니없는 10대 아이처럼 반응하는데, 초반의 알랭 들롱은, ‘저이한테 저런 매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을 때, 그는 더없이 집중하고 진지해지면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최고로 꼽았던 대사, “누님, 선수끼리 이러지 맙시다.” 같은 대사는 그 계에서 닳고닳은 느물한 성인남자의 대사예요. 그런데 초반과 중반 이후의 이 상반된 이미지가 전혀 충돌하지 않습니다. 둘 다 알랭 들롱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저 철딱써니없는 동네 양아치에서 진지하고 능숙한 프로페셔널로 넘어가는 게 거슬림없이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휙 넘어가버리거든요. 말하자면 이 영화는 소년 알랭 들롱이 성인남자 알랭 들롱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저는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우며 느물거리는 알랭 들롱의 이미지를 꽤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그건, 어릴 적 어느 토요일 낮에 본 <흑수선> 때문이에요. 이 영화는 알랭 들롱이 성격이 상반된 쌍둥이 형제를 1인 2역으로 연기하는데, 진중하고 성실하며 민중의 고통에 아파하는 귀족청년과, 어릴 적부터 한량에 난봉꾼으로 노느라 집을 떠나 사고만 치고 다니던 호방한 성격의 청년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알랭 들롱의 육체가 주는 이미지가 꽤 재미있는데요.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사실 그의 얼굴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그 미모가 더욱 빛이 납니다. 그런데 근육이 잘 발달돼 있는 그의 몸과 반드르르한 얼굴의 피부는, 이상하게도 성인남자의 느낌과 어딘지 미숙한 소년의 느낌을 동시에 주거든요. 알랭 들롱은 자신의 육체가 갖고 있는 이 상반된 이미지를 매우 잘 알고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는 듯해요. 가죽잠바를 입었을 때의 들롱과 수트를 입었을 때의 들롱, 수영복만 걸쳤을 때의 들롱과 면바지에 니트 스웨터를 입었을 때의 들롱은 손발짓의 제스추어와 걸음걸이, 몸통을 움직이는 방식마저도 변하는 것같아요.



감독은 알랭 들롱과 장 가뱅이라는 배우의 장점과 이들의 케미스트리를 아주 잘 살리면서도, 범죄영화에 있어서의 스릴과 편집 / 연출의 리듬을 아주 제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미사여구, 군더더기도 없고요. 영화 초반, 샤를이 감옥에서 나와 자기 집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 마누라와 딱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까지도, 참 건조하고 절제돼 있으면서도 어쩐지 신뢰가 가는, 그런 부부관계를 캐릭터라이징해서 보여줍니다. 카지노를 터는 과정 역시 음악을 비롯한 사운드 효과를 아주 잘 살리고 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스릴과 웃음을 동시에 뽑아내는 그 긴장감과 여유는 정말, 아주 노련한 장인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삼 낯선 이름의 이 앙리 베르뇌이유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아주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만약 다른 주제전으로 이 영화가 또다시 어딘가에서 상영된다면, 꼭 놓치지 말고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알랭 들롱 옵화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옛날영화답게 템포는 쪼금 느릴지 몰라도 그 여유로움이 또 한껏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자끄 드레 | 수영장 La Pscine

당시 실제 연인이었던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


나무, 새, 하늘, 다양한 자연풍경자연풍경을 찍어서 180도 뒤집은 화면 위로, 자막이 일렁이며 지나갑니다. ‘수영장’은 물의 이미지니까요.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오프닝 자막이 끝나고 나면, 화면은 곧장 수영복만 입은 나신의 장-뽈(알랭 들롱)이 수영장 가에 누워있는 장면으로 뜁니다. 햇볕은 짱짱하고, 선글라스를 쓴 채 누워서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도 별 대꾸없이 카메라쪽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하늘로 향하는 그는 옆에 놓인 컵에 담긴 술을 누운 채 목구멍으로 붓습니다. 곧이어 그 고요를 깨는 풍덩! 소리와 함께 마리안(로미 슈나이더)이 헤엄쳐 옵니다. 부유하고, 여유로우며, 나른한 여름 휴가의 어느 한 장면. 그리고 이 커플에게, 마리안과 과거가 있을 것이라 의심되는 해리(모리스 로네)가 딸 페넬로프(제인 버킨)과 함께 찾아옵니다.


영화는 딱 이 네 사람간에 오고가는 함축적인 대사와 끈끈한 눈빛, 이 안에서 오고가는 심리전으로 흘러갑니다. 그저 친구 사이라는 해리와 마리안은 이상스러울만치 – 페넬로프가 역겨워할 만큼 – 다정해 보입니다. 페넬로프를 흘깃거리는 장-뽈의 시선은 처음엔 딱히 다른 의미를 품고 있지는 않아 보이지만, 해리와 마리안을 의식하며 점점 끈적해집니다. 해리는 유난스럽게 딸을 과시하며 한편으로는 슬쩍슬쩍 마리안에게 스킨쉽을 건네지요. 마리안은 딱히 거부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몸과 분위기를 가진 페넬로프는 어른들의 시선엔 아랑곳없이, 무심하고도 조용하게 수영장을 거닙니다. 처음엔 물가에 가지도 않은 채 원피스만을 입던 소녀는 조금씩 몸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원피스 수영복, 그 다음엔 비키니 수영복 위에 해변용 자켓, 그리고 비키니 수영복. 페넬로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공식적인 커플인 장-뽈과 마리안의 애정표현은 농도가 짙어집니다. 그 가운데 점차 페넬로프의 눈은 장-뽈을 향합니다. 이들은 각자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이 한가롭고 그저 시선으로만 교환되는 은밀한 욕망의 기호들은 어떤 사건을 예비해 놓고 있는 걸까요?


화면은 조용하지만 이들의 침묵 혹은 정겨운 ‘사교적’ 말투 아래로 흐르는 심리적 대립은 꽤 격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이상함이 없는 대화가 알고도 모르는 척, 혹은 모르지만 아는 척 떠보고, 말을 돌리고,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굳이 하는 “파편적인 대화”라는 것은 이들의 눈빛, 작은 제스추어를 통해 표현됩니다. 영화의 후반, 넷이 모두 모여 먹는 저녁식사씬은 이 심리적 갈등이 가장 정점에 이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대립도 뭣도 없는 이 장면은 화면 가득히 팽팽한 긴장으로 넘쳐납니다. 장-뽈, 마리안, 해리가 소리없이 벌이는 전쟁은 서로 탐색전과 떠보기와 아무렇지 않은 척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제 열여덟살인 페넬로프는 아무리 육체적으로는 성숙했다 한들, ‘어른들’의 이런 대화를 가엽게도 견뎌내지 못하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을 먹고, 식사 품평을 하고, 제스추어를 취하고,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 장-뽈의 대화법은 가히 ‘도망자의 천재’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가엾게도 페넬로프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선은 오직 장-뽈에게 고정되어 있어요.


바로 이 장면. 인물별 바스트 원샷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전체샷으로.


이 조용한 전쟁은 결국 파국의 사건으로 이르게 됩니다. 술에 취한 채, 말하자면 이들 사이에 오가던 암묵적인 대화법의 관습을 깨고 그것을 ‘입에 올려버린’ 해리에게 장-뽈은 폭발합니다. 영화 내내 조용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막판에 커다란 사건으로 폭발하는 영화 설정은 지금도 그리 드문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1969년작이란 말이죠. 그런 식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건 확실히 옛날영화가 더 잘 합니다. 요즘 관객은 영화의 2/3 이상이 소위 ‘따분한’ – 그러나 그걸 과연 ‘따분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기저에 이렇게 격렬한 대립들이 오가고 있는데 말이에요 – 대사와 눈빛의 작은 기호로 진행되는 걸 못 참아하니까요. 하긴, 이 영화도 그래서 준비해 놓고 있는 게 육체의 향연이긴 합니다. 알랭 들롱의 단단한 육체, 제인 버킨의 미성숙과 성숙의 기호가 섞인, 가늘고 쭉쭉 뻗은 육체, 로미 슈나이더의, 매우 작고 동글동글하지만 관능적인 완숙미가 있는 육체. 특히 로미 슈나이더의 몸매는 제게 기묘한 경탄을 주었는데요. 그녀는 소위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글래머’는 아닙니다. 키가 굉장히 작고 아담해요. 가슴이 터질 듯 빵빵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몸 곳곳에 작고 단단한 근육들이 붙어있고, 이것이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하면서도 다부진 인상을 주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이더란 말입니다. 그에 비하면 제인 버킨의 몸매는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마르고 긴 체형으로 좀더 ‘모던’하다 할 수 있겠네요.


이태리 버전 포스터같습니다. 꽤 고전적(...)이죠.


나이가 들면서는 ‘완전범죄’에 꽤 매력을 느끼는지라, 결국 물증이 없어 자유의 몸이 된 사람들을 보며 기뻐했더랍니다. 아마도 영화 말미 마리안이 장-뽈에게 말하는, “당신을 모르겠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사람 같아.”가 이 영화의 전체 주제를 요약해 주는 대사이겠지요. 하지만 마리안과 장-뽈은 ‘공범’이 되었고, 결국 마리안은 장-뽈을 떠나지 못합니다. 한배를 탄 운명이 됐어요. 좀더 현대적 영화라면 기어코 마리안은 장-뽈을 떠나겠지만, 그럼에도 전 마리안이 ‘사고친 남자 의례껏 뒷수습 해주는 전통적인 여인’이라기보다는,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자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았답니다. 공식적으로 장-뽈과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해리의 희롱을 거부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팜므파탈로서는 좀 부족하고 미숙해 보였지만, 그 사건 이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진짜 팜므파탈이 됩니다. 그리고 전 나이가 든 뒤로는 이런 ‘무서운 확신범’들을 꽤 좋아하죠. 페넬로프 앞에서 ‘성숙한, 성인 남성’처럼 보이던 장-뽈은 마침내 마리안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나서는 갑자기 초라하고 작은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리안이 뒷수습을 다해 주니까. 영화 내내 그가 보여주었던 대화법이나 처세는, 그러니까 성인의 것이 아니라 방어기제였던 셈이에요. (해리와의 싸움 장면에서 장-뽈의 많은 과거들이 절제된 대사들을 통해 튀어나옵니다.) 마지막 장면, 마리안의 품에 안긴 게 아니라 마리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왠지 그 작고 아담한 마리안 앞에서 굉장히 작고 불안한 소년처럼 보이지요. 아마도 이것이 성인인 척하는 남자의 본질 – 몸만 큰 소년 – 일 겁니다.


ps. 이 영화의 음악은 위에서도 썼듯 프랑스의 국민 영화음악가 미셀 르그랑이 맡았고, 각본에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참여했네요(원안 각색). 역시… 장-클로드 카리에르는, 말하자면,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각본가입니다.

알랭 들롱 회고전 – 12/15~24,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시네마의 공식 페이지 가기(시간표 있음)



상영작


1. 태양은 가득히    – by 르네 클레망 | 1960ㅣFranceㅣ115minㅣColor
2. 로코와 그의 형제들    – by 루치노 비스콘티 | 1960ㅣFrance/Italyㅣ190minㅣB&W
3. 지하실의 멜로디    – by 앙리 베르뇌이유 | 1963ㅣFranceㅣ103minㅣB&W
4. 수영장   – by 자크 드레 | 1969ㅣFrance/Italyㅣ120minㅣColor
5. 암흑가의 세 사람    – by 장-피에르 멜빌 | 1970ㅣFrance/Italyㅣ140minㅣColor
6. 형사   – by 장-피에르 멜빌 | 1972ㅣFrance/Italyㅣ98minㅣColor
7. 암흑가의 두 사람    – by 호세 지오반니 1973ㅣFrance/Italyㅣ100minㅣCol
8. 무슈 클라인    – by 조세프 루제이 1976ㅣFrance/Italyㅣ123minㅣColor
9. 세 번째 희생자    – by 자크 드레 | 1980ㅣFranceㅣ93minㅣColor
10. 형사 이야기    – by 알랭 들롱 | 1981ㅣFranceㅣ105minㅣColor


정식 발음은 ‘알랭 들롱’이 맞지만 추억의 이름은 역시 ‘아랑 드롱’. 아주 어릴 땐 저 이름이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 무언지 모를, 막연히 ‘가슴이 덜컹’하면서 뛰는 느낌을 준 건 역시 아랑 드롱씨. 그건 그가 지금의 꽃소년들과 달리, ‘(성인) 남자’, 그것도 아주 멋지게 잘생긴 남자의 체취를 강하게 뿜어내기 때문이다. (예전 모처에서 모 선배가 아랑 드롱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차이를 이 관점으로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아랑 드롱이 1인 2역으로 출연했던 <흑수선>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20대 후반이 되어 알게 됐던 건, 감독들(남자건 여자건) 역시 잘생긴 남자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잘생긴 배우들이 연기도 되면,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그를 캐스팅해 걸작들을 찍어댄다. 이번 회고전에 상영되는 영화들의 감독들 면면을 보라. (이태리 출신인)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까지 아랑 드롱을 업어가 저 긴 영화를 찍어대지 않나… 그나저나 아트시네마, 비스콘티 특별전은 안 해주려나. <베니스에서 죽다> <레오파드> 두 편만으로 사람 뿅가게 만드신 탐미주의자 감독님.


한불 수교 120주년이라고 여기저기 어마어마한 문화행사들이 많다. 이것도 이거지만 만레이 사진전(이거 16일까지. 끄응 ㅠ.ㅠ)도 있고 뭐가 하여간 많더라. 우리 영화의 자랑스러운 역사랍니다, 하면서 ‘배우’의 출연작 리스트를 짜잔 내놓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지고 부러운 일이다. 새로운 젊은 관객들이 선선이 그 권위를 인정하며 여전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탐닉할 수 있는, 그리고 시대를 고스란히 기억하게 해주고 과거와 새로이 소통하게 해주는. 우린 아직 그런 배우를 갖거나 재발견하지 못했다. 안성기라는 강력한 후보가 있긴 하지만, 성기 아저씬 아직 너무 젊어! 한참 영화 찍으셔야지 벌써 ‘신화’가 되면 안 돼!


하여간 아랑 드롱 만세! 아싸, 나는 상영작 다 보기 도전! 더불어 이 기회에 극장과 통 인연이 없던, 그러나 아랑 드롱의 원조팬이던 4, 50대 아줌마들이 대거 아트시네마로 몰려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