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돕킨 | 웨딩크래셔

Wedding Crashers
찰떡궁합의 철부지 남자들.


대책없는 악동 철딱써니 사람되더라 얘기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 결혼박살단, 혹은 커플파괴단이란 부제에 걸맞게 행동해주기를 바랐건만 얘네들은 그냥… 무임승차하는 가짜손님들 아닌가. 너무 순진한 거 아냐? 게다가 그 정도면 밥 얻어먹을 자격 충분한 게, 결혼식 파티 분위기 열라 띄워주신다. 남들은 돈 주고도 분위기메이커 고용하는데 그 정도면 밥이고 술이고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 그런데 무슨 ‘웨딩크래슁’ 씩이나?


데이빗 돕킨이 연출력이 있는 애라는 건, 초반 파티들에서 얘들 노는 장면들 이어붙인 컷들에서 딱 드러난다. 간결하고 흥겹게, 그러나 얘들 평소 하고 노는 짓거리들 쫘락 한큐에 보여주시는 그 장면 보면서 감탄, 또 감탄. 근데 정작 그 ‘노는 내용’이 너무 건전하고 맹탕. 게다가 별장 가고나서부터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 “막 가는 가족” 분위기 묘사가 힘이 떨어진다. 그게 뭐가 막 가는 가족이야. 그래도 꽤 망가지는 빈스 본, 역시 기대대로. 난 사실 <미스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도 빈스 본만 봤었다. 역시나, 그 덩치에 그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그 깔깔한 목소리로 온몸을 파닥파닥 대면서 “데데데데” 할 때 여지없이 사람 뒤집어 주시고. 오언 윌슨은 사실 온갖 잘난 척과 뻔뻔함과 느물거림으로 블러핑하는 게 매력인데 어째 여기선  이다지도 맹맹하고 심심하더란 말이냐. 열라 느물거리면서 막 가야 하는 애가 왜 갑자기 순정파 해바라기가 되냐고.


근데,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가정’을 이루면 그게 철드는 건가? 누군가를 열심히, 진지하게 사랑하지만 결혼 계획은 안 세우고 있는 나는 그럼 아직 철 안 든 것? 아서라, 난 돈 잘 버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아니란 말이지. 요즘 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에 오백을 넘어가던데 어떻게 애 낳아서 기르냐고요.


Wedding Crashers
이 천진난만한 표정들이란!


하여간에 데이빗 돕킨, 이 다음엔 좀 제대로 된 걸 만들어줘. 난 당신의 재능을 믿고 있다고. <웨딩크래셔>가 그렇게까지 후졌다고 할 순 없지만, 사실 이 영화 제대로 만들려면 훨씬 더 막 갔어야 했어. 근데 당신은 그 ‘막 가는’ 코미디는 못할 것 같아. 차라리 로맨틱 코미디를 해. 사실 <상하이 나이츠>의 캐릭터라이징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커플 아웅다웅기 아니었나? 당신 그거 기막히게 잘 했잖아. 부디 다음 영화에선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ps.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상하이 나이츠> 정말 강추다. 내가 이 영화 <웨딩 크래셔>를 그토록 기다린 이유가 오언 윌슨 + 빈스 본 콤비 말고도 데이빗 돕킨 감독 + 오언 윌슨 콤비 때문이었다.


ps2. 3/25/2006 5:40am 추가
슈퍼 옥시시님이 예고없이 초대 안 받고 걍 빈대붙고 꼽사리 낄 때 “Crash”한다고 쓴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다. 1문단은 완전 헛소리가 되버렸다. 슈퍼 옥시시님께 감사를!

데이빗 돕킨 | 상하이 나이츠

Shangahi Knights
아이고 저 표정들 ㅎㅎ


<상하이 나이츠>가 <상하이 눈>과 눈에 띄게 다른 것은 일단 두 편의 장르가 다르다는 점(첫편이 액션이라면 속편은 코미디다)과 <러시아워>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성룡의 비중이 확연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게다가 <상하이 나이츠>는 유치하고 불쾌한 수준의 오리엔털리즘과 백인우월주의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은 없다는 통설이 이미 여러 차례 뒤집힌 바 있지만, <상하이 나이츠> 역시 당당히 이 반열에 올려야 할 영화다.


사실 <상하이> 시리즈는 단순히 액션 혹은 코미디로 분류하기가 힘든데, 이 시리즈가 서부영화의 틀에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 중 <상하이 눈>은 확실히 서부영화의 장르문법을 변형한 액션이었고, <상하이 나이츠>는 서부영화의 특성을 거의 지워버리고 공간적 배경도 과감하게 옮겨버리긴 했지만, 전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여전히 불려나오는 특성이 있는데다 몇몇 장면은 배경이 서부가 아님에도 서부영화의 장면을 새로이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나이츠>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가 내지르는 뻔뻔스러운 패러디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지극히 유쾌한 유머감각 때문이다. 영화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성룡의 연기에 잘 어울리게 패러디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주는 씬 구성하며,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영국 / 미국의 문화영웅의 기원을 제멋대로 설명해버린다. 우리의 두 친구가 만나게 되는 약간 꺼벙한 경사와 거리의 부랑아 소년이 영화 내내 애칭으로 혹은 퍼스트네임으로만 불리다가 마침내 풀 네임이 언급되는 영화 막판이 되면, 관객의 입장에선 순간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그 문화영웅들의 기원이 실은 작고 나이든 동양인(“샹하이 키드”)이라니. 게다가 이것이 이 영화가 자행해버린 각종 고전 걸작 씬들의 패러디와 결합해 버리면 세계 영화사가 조작돼 버린다. 헐리웃 영화의 모든 특성이 실은 “샹하이 키드”와 “뺀질이 블러퍼”가 겪은 모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말이다.


Shanghai Knights
유쾌한 두 사고뭉치의 코믹 모험담, 둘의 케미스트리도 아주 좋다.


속편을 먼저 봐서인지 오웬 윌슨의 ‘뺀질뺀질한 블러핑의 대가’로서의 코믹한 캐릭터와 성룡의 ‘진중하고 현명한’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대조되는 <상하이 나이츠> 쪽이 내겐 더 익숙해서 <상하이 눈>은 다소 인물들이 흐리멍덩한 데다 성룡은 오웬 윌슨을 보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신기한 몸언어를 구사하는’ 구경거리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느낌. 하지만 <상하이 나이츠>에서 성룡은 오롯이 씬 전체를 이끌고 가며 오웬 윌슨과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액션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이것이 ‘걸작씬 패러디’와 만들어내는 상승효과는 더욱 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모든 즐거운 유머는 실은 <상하이 눈>에서 이미 씨앗이 뿌려진 것들이다. 예컨대 (밝힐 수 없다고 했던 문화영웅 중 한 명을 밝히는 결과가 되겠지만) 영화 속에서 성룡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천왕’인데, 중국어 발음이 낯선 미국인들은 그를 처음부터 ‘존 웨인’이라고 부른다. 위기에 처한 두 남자를 번번이 멋지게 구해주는 건 성룡이 어쩌다 결혼하게 된 인디언 부족의 여성이다. 문제는 <상하이 눈>이 이러한 재치를 씨앗만 뿌린 채 싹도 제대로 내지 못한 반면, <상하이 나이츠>는 싹뿐 아니라 줄기를 키우고 열매까지 맺게 했다는 점. 게다가 대거 응용까지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백인’인 오웬 윌슨은 능글능글한 속물 약탈꾼에 사고뭉치의 자리로 확실히 이동하고, 전편에서 거의 바보 취급을 당했던 성룡의 캐릭터는 더없이 현명하면서도 깊은 문화적 유산을 가진 든든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찬다. 강인한 여성이라는 설정을 그저 주인공들을 위기에서 빼내주는 기능적인 역할(그리고 시나리오의 난점 전담 해결사의 역할)로만 한정시켰던 <상하이 눈>과 달리, <상하이 나이츠>는 맹활약을 펼치도록 든든한 무대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변화들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적 한계와 그러한 땅의 백인 미국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오만함에 대한 애교스러운 자조를 슬쩍 드러내면서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든다. 동양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깊고 풍부한 전통들에 대한 열린마음의 존중도 살짝. 이것들을, 정치적 공정함에 강박을 느끼는 영화들이 의례 갖게 되는 구색맞추기적 어거지나 훈계적 경직성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Shanghai Knights
아마도 해롤드 로이스 영화의 패러디로 보이는 시계탑 액션 장면.


그런데 <상하이 나이츠>가 정말로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이것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니까 가장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 보자면, 미장센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아다시피 성룡 액션의 주안점은 “주변 소품 이용하기”와 “아슬아슬 곡예”이다. 악당을 멋지게 제압해버리는 이소룡과 달리 성룡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악당의 칼질이나 주먹을 피하며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혹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액션씬은, 성룡 액션의 핵심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룡 액션이 특징이 20년대 미국 무성영화, 특히 버스터 키튼 영화의 특징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훌륭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을 최대한 드러내도록 구성하고 있다. 카메라는 성룡 액션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면서도 매끈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편집의 리듬 역시 적재적소에서 끊고 잇는 노련한 솜씨를 과시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 무수한 고전들과 다른 유명한 영화들(심지어 <상하이> 시리즈와 비교하기 좋은 <러시아워> 포함하여)에서 따온 씬들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 나이츠>가 인용하고 있는 영화들은 사실 imdb.com에도 30편 가량이 올라와 있는데, 영화광이 아닌 일반관객들이라도 이 영화가 <싱잉 인 더 레인>을 시침 뚝 떼고 패러디하는 장면 같은 걸 보다보면 그야말로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노골적이건 은근하건 이러한 인용을 영화 전체 분위기에서 튀지 않고 매끈하게, 너무나 잘 어울리게 변형해가며 수행하고 있는 이 영화는, <러쎌 웨폰> 시리즈 이후 사라진 것 같았던 버디영화의 낡은 공식, 즉 까불이 사고뭉치와 뒷수습 전담반 커플이라는 설정이 여전히 강력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종래의 영화들의 온갖 장르와 장르문법을 뒤섞고 패러디하는 하이브리드(‘잡종’이라고 쓰면 왠지 비하의 느낌이…;;)이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영화전통들을 한 편의 영화속에서 아름답고 통일성있게 되살려내는 괴상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엔딩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웃겨주시는 섬세한 감독의 센스는, 성룡 주연의 영화에 언제나 따라붙는 ‘NG모음 보너스’를 더욱 즐겁게 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ps. 방금 imdb를 검색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두 번째 연출작인 데이빗 돕킨 감독의 바로 그 다음 작품이 <웨딩 크래셔>라는 사실이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이 영화는 (최근 들어 벤 스틸러 – 오웬 윌슨파 유머그룹에 편입된) 빈스 본과 오웬 윌슨을 주연으로 아무 결혼식마다 가서 깽판을 치는 악동 둘의 모험(?!)을 다루는 코미디인데 9월경 미국에서 호평을 받으며 개봉하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눈여겨보고 있던 영화의 감독이 우연찮게 건진 너무 귀여운 영화를 찍은 그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의 즐거움이란 언제나 “그럼 그렇지!”하는 반가운 기쁨을 동반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