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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다음 프로그램이 빈센트 미넬리 회고전이었군요. 2월 9일부터 20일까지, 총 11편을 상영한답니다. 빈센트 미넬리! 뮤지컬! 꺄아! 영화사 책마다 언급되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가 이번 상영목록에서 빠진 건 아쉽지만(전 처음 영화책을 사본 때로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이 영화를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구욧.), 빈센트 미넬리의 총 필모그래피 중 1/3도 안 되는 작품수이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를 무려 필름으로! 극장에서! 친절한 자막과 함께! 볼 수 있겠어요? 게다가 <파리의 미국인>이랑 <지지> 같은 영화가 포함돼 있으니까... 원체 모든 영화들이 다 비디오나 DVD보다는 역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봐야 제맛이긴 하지만, 특히 뮤지컬 같은 장르는 그게 좀더 심한 편이죠. 무대 전체를 잡는 마스터숏들이 많으니까, 작은 TV나 모니터 화면으론 그냥 장난처럼 보일 거예요. 친구들영화제 끝나고 나면 좀 한가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우훗.


상영작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작년도 한제 원제 러닝타임
1948 해적 The Pirate 102min
1951 파리의 미국인 An American in Paris 113min
1952 미녀와 악당 The Bad and the Beauiful       * B/W 118min
1953 밴드웨건 The Band Wagon 111min
1955 키스멧 Kismet 113min
1956 차와 동정 Tea and Sympathy 122min
1957 디자이닝 우먼 Designing Woman 118min
1958 지지 Gigi 116min
1960 언덕 위의 Home from the Hill            *(DVD 상영) 150min
1962 낯선 곳에서의 2 Two Weeks in Another Town 107min
1965 샌드파이퍼 The Sandpiper 117min

각 한글제목을 누르시면 아트시네마 공식페이지에 있는 작품소개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상영작 리스트와 상영시간표를 좀더 간단하게 볼 수 있도록 엑셀파일로 만들었는데, 필요하신 분 있으시면 다운받아 가시길. 물론 아트시네마의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셔도 되고요. 다만 제 건 프린트로 출력할 때 80% 축소 출력 같은 걸로 작게 해서 수첩에 붙이고 다닐 용도라 날짜, 시간, 제목만 나와있는 간단 버전입니다.


2008/01/30 23:53 2008/01/30 23:53

한국영화가 무려 다섯 편. 역시 설 연휴는 설 연휴인가 봅니다. 주말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어쨌건 이번 주말에 여세를 몰아야 연휴 때 대목장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다음 주에도 개봉작들이 꽤 많습니다. 아무리 명절 대목 때라 해도 이렇게까지 한국영화 개봉작 수가 많은 것도 드문 일인데, 은근히 걱정되기도 하고요.

이주의 추천작은 단연 <원스 어폰 어 타임>.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풍기는 오라가 어째 조잡한 쌈마이 코미디 같지만, 안 보시면 후회할 겁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영화가 그리 많지 않죠.) 현재까지 평을 내놓은 사람들도 그냥 ‘오락영화’라며 별 주의를 안 주는 모양입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거 대박 물건에 할 얘기도 무지무지 많은 영화입니다. <명장>과 <브릭> 역시 잘 만든 수작이고,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아쉬움이 많네요. (물론 기자시사회 때 반응을 반영해 편집이 좀더 됐다면 제가 본 버전보다 더 나아진 버전으로 개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주의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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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감독 : 정용기 | 주연 : 박용우, 이보영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한국형 코미디’가 진화를 하면 이 정도 수준까지도 이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풍기는 쌈마이 뉘앙스와 감독의 전작들(<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을 때문에 별 관심 안 보이시는 듯한데, 제가 보기엔 이거 정말 대박 물건인데다, ‘경성’을 그리는 방식이 아주 매혹적입니다. 경성은 원래 모든 영화 판타지가 가능한 공간 아니겠습니까. (<기담>이 왜 하필 그 시기를 잡았겠어요?) 게다가 그 공간의 그 무국적 혼란성을 영화의 캐릭터와 전체 분위기에도 적용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각종 장르 관습들을 끌어와 마구 섞어대는 데에까지 능란하게 활용하고, 영화의 단점마저 오히려 장점으로 전화시키는 능글맞은 면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헐리웃의 고전 영화들의 장르 문법을 마구 가져와 응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 좀 봤다 싶은 사람 눈에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 뭐 제목부터 <옛날옛적 서부에서>에서 가져왔으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에서 가져온 거 아닐걸요.) 꼭 보시길. 그리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마시길.


명장
감독 : 진가신 | 주연 :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태평천국의 난 때를 배경으로 의형제를 맺은 세 남자가,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전투장에서 영혼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상을 내세운다 해도 전쟁에 기반한 정치는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인간을 파괴하고 만다는 그 상투적인 - 그러나 여전히 인간에겐 실천이 어려운 - 진리를 참 쓸쓸하고 애잔하게, 단순하면서도 선 굵게 이야기합니다. 세 차례에 걸친 대규모 전투씬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 진가신이 그리려 한 것은 <반지의 전쟁>이나 <트로이> 류의 박진감이 아니라 ‘학살’의 비극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전투씬들의 ‘육중한’ 느낌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잘 통제돼 있고요. 그나저나 금성무는 이 나이를 먹어서까지 ‘순수한 소년에서 삶의 비애를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를 맡는군요. 더욱 문제는, 그게 너무 잘 어울리고, 그 사람도 잘 한다는.


브릭
감독 : 라이언 존슨 | 주연 : 조셉 고든 레빗, 루카스 하스, 노라 제히트너
살해당한 여자친구의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탐문조사를 벌이면서, 결국 근방의 로컬 마약조직 리더와 맞장을 뜨고, 그의 눈에 들어 조직에서 ‘브레인’으로 머리를 빌려주는 척하면서 결국은 영리한 계획과 정치력으로 조직을 붕괴시켜 버리고 경찰에 넘기는 탐정 이야기입니다. 골때리는 건 이게 도시가 아닌 한가로운 시골의 고등학교 배경이라는 것, 당연히 주인공과 다수의 등장인물들도 고등학생이란 사실입니다. 저 마약조직 리더는 26살의 딱 ‘동네 못된 형’인데, 근데 그 리더도 자기 어머니한텐 아가 취급을 받습니다. (“우유 줄까, 쥬스 줄까?”) 여기서 기묘한 유머와 먹먹한 서글픔이 동시에 발생하며 상당히 낯선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좀 무섭습니다. (아무렴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정말 저렇게 조직적으로 마약 팔고 다니는 건 아니겠죠...) 기본적으로 아주 영리하고 잘 짜여진 각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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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감독 : 정윤철 | 주연 : 황정민, 전지현
캐스팅이 황정민, 전지현이다 해서 떠들썩했지만 알고보면 상당히 작고 소박한 영화. 이런 영화는 사실 일급 스타를 붙이면 안 되는데, 그래서 더 어긋나 버리는 느낌. 뭐 전형적으로 ‘미친 놈의 미친 짓을 통해 안 미친 인간들의 미친 짓을 비추어 보는’ 영화, 나아가 미친 놈의 미친 소리가 사실은 나름의 근거가 다 있는 영화, 인데요. 중반까지 잘 나가다가 후반 가면 아주 질질질 끄는데 숨이 턱턱 막힙니다. 보고 나와서 친구와 20분만 잘라내지, 감독이 전지현을 너무 이뻐라 해서 저렇게 전지현 위주로 후반을 끄나, 싶었는데, 역시 기자시사회 반응이 안 좋았는지 이후에 10여 분을 더 잘라냈다고 합니다. 재편집본은 확인 못 해봤지만, 확실히 잘랐다면 나아졌겠지 싶어 ‘나머지들’이 아닌 ‘추천작’으로 분류합니다.



이주의 난감작

더 게임
감독 : 윤인호 | 주연 : 신하균, 변희봉
신하균은 운이 나쁜 건지 시나리오 보는 눈이 영 없는 건지, 잘 풀리지가 않네요. 처음 설정은 아주 좋았습니다. 사금융 최고의 큰손과 젊고 가난한 거리의 화가가 몸이 바뀌어요. 근데 문제는, 바뀌고서... 아무 것도 안 하네요? 러닝타임 중반을 그냥 시간 떼우면서 질질 끌다가, 엔딩 맺을 때 되니까 몸 돌려달라고 내기 한번 더 하잡니다. 밑에 <라듸오 데이즈>는 엉성해도 플롯이란 게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딴 거 없습니다. 게다가 큰손다운 능글하고 교활한 경륜과 재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 젊은 몸까지 손에 넣었으니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짓이... 고작 나이트 가서 돈 뿌리고 술마시며 여자 사는 거랍니다. 이딴 식이니까 소위 된장녀라 찍힌 여자들로부터 “하여간 남자란 종자는 아메바” 소리를 들어도 억울할 게 없는 겁니다. 남자란 원래 이렇게 하등동물이야, 라고 보여주는 거 대부분 남자들이걸랑요. 하여간 이 영화에서의 신하균과 변희봉의 연기는 한 마디로 ‘돼지 목의 다이아 목걸이’입니다. (이 영화는 그럼에도 설정 자체에 대해 할 얘기가 있어서, 감상문을 따로 쓸 예정입니다.)


라듸오 데이즈
감독 : 하기호 | 주연 : 류승범, 김사랑, 이종혁
맥아리 없고 질질질 끌고. 이렇게 좋은 소재를 이렇게 망쳐먹다니요. 도대체 왜 ‘경성’인 겁니까? 컷 하나하나가 다 허합니다. 늘어지고, 편집도 후지고, 캐릭터들 다들 별 개성없이 흐리멍덩하고. 착한 영화랑 흐리멍덩한 영화는 서로 다른 겁니다. 그래놓고 막판에 뮤지컬 시퀀스로 떼우면 다랍니까? 승범이가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아성이가 아무리 깜찍하다고 해도, 절대 용서가 안 됩니다. 이종혁이 맡은 캐릭터인 K는 최악이더군요. 정확히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일명 ‘임정37호’를 그려낸 방식과 정반대. 코미디 영화에서 엄숙하고 진지한 캐릭터는 썰렁한 바보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 독립군 캐릭터를 저질 우스개거리로 만들어놓고 그걸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기냥저냥 나머지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들
감독 : 스벤 타딕켄 | 주연 : 요르디스 트리벨, 위르겐 보겔
작고 귀여운 영화이긴 한데, 큰 매력은 못 느꼈던 영화입니다. 어쩌면 <클로버필드>를 보고 난 직후(아마 10분 쉬다 들어갔나...)에 봐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2003년 부천영화제에서 <우리 오빠는 뱀파이어>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챙기시길. 그 감독의 영화니까요. 마지막 엔딩은 <우리 오빠는 뱀파이어> 때처럼 쇼킹하게 맺더군요. 이거 이 사람 습관인 건지 뭔지...


내 사랑 유리에
감독 : 고은기 | 주연 : 강희, 고다미, 김준배
자폐증 소통불능 상태의 영화들에게 좋게좋게 붙여주는 타이틀이 보통 ‘초현실적’ ‘몽환적’ 어쩌고죠. 제가 독립영화에 무지해서인지 모르겠으나 극장에서 앉아있는 게 좀 힘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여자는 성녀 아니면 창녀,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남자들의 여성 판타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는 방식이 꽤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권위의 이름으로 착취를 하거나(네 몸을 팔아 내게 돈을 내놔!), 사랑의 이름으로 봉사를 요구하거나(낮엔 성녀, 밤엔 나만을 위한 창녀가 돼주오?). 청순한 얼굴과 긴 머리, 수줍음 타며 순수한 성격, 그리고 글래머의 S자 몸매와 죽여주는 방중기술.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 연인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 그래도, 솔직하니까 차라리 낫더군요. 가식까지 떨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미확인 개봉작

나쁜 여자 길들이기
감독 : 이레나 파블라스코바 | 주연 : 다니카 유르코바, 카렐 로덴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체코 영화래요. 제3국의 영화들이 선정적인 포스터에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필름포럼에서 연이어 계속 개봉하는 걸 보는 기분은 참 아햏햏합니다.

2008/01/30 21:34 2008/01/3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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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숨어있어 더욱 무서운.

스티븐 킹은 내가 미국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그건 그가 너무나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그렇다. 현대소설이라는 게 심리 타령, 부조리 타령, 소외와 고독 타령을 하기 마련인데, 스티븐 킹은 이야기 자체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낼 뿐 아니라 그것을 또한 아주 매력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매우 희귀한 - 그리고 고전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스티븐 킹의 소설은 겉으로 드러나는 줄거리 자체도 매우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그 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연이 가진 어둡고 격렬한 감정을 매우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나오는 족족 영화로 옮겨지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 버전도 근사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그닥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드문 작품들에 <미스트>가 새로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미스트>가 그려내는 가장 기본적인 공포는 이유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이지만, 이 영화가 정말로 힘을 받는 장면은 마샤 게이 하든이 연기한 카모디 부인의 종교적 선동과 이로 인해 결집되고 분출되는 인간의 ‘광기’이다. 우리는 데이빗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괴생명체의 촉수를 보는 장면이나 거대한 곤충들이 마트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박진감과 스릴을 느끼지만,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요구하며 아우성치고 결국 군인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끔찍한 공포를 느낀다. 괴물들 자체는 싸구려 CG와 인형의 냄새가 펄펄 나는데, 이것들의 공격을 묘사하는 다라본트의 카메라는 아주 신이 난 데다가 이 상황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매우 효과적으로 잡아낸다.

괴물들의 공격을 요한계시록과 엮은 것은 너무나 탁월한 아이디어(이는 아마도 원작자인 스티븐 킹의 공일 것이다). 거기에 다라본트는 마샤 게이 하든의 카모디 부인을 매우 성실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데이빗이 마트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장면에서부터 해서, 점차 그의 과민 신경증을 찬찬히 드러내고, 더불어 이 여인의 존재감은 점점 강력해진다. 보기엔 별 볼품없는 나이든 중년여인이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카리스마를 얻으며 좌중을 압도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매우 세심하게 계산돼 있어서,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을 충분히 홀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스크린 밖 관객들에겐 정말 *어마어마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스크린 바깥에 있는 우리는 다라본트의 묘사와 마샤 게이 하든의 연기에서, 그녀의 선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너무나 명확히 인지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공포가 높아진다. 만약 우리가 영화 속 인물이었다면 그녀의 선동에 넘어가고도 남아 아무에게나 칼을 휘두르는 저 광기의 대중 중 하나가 충분히 되고도 남을 것이라는 공포, 말이다. 이 공포는 심지어 괴물들의 습격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훨씬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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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아줌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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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다.

원작소설에서는 데이빗 일행이 마트를 벗어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하는데, 다라본트가 덧붙인 엔딩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화들 중 수많은 비극적인 엔딩 중에 이 영화만큼 잔인하고 비극적인 엔딩이 또 있을까? 그 장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구했을 과단성과 행동력이 오히려 비극을 초래했다’고 말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다라본트 감독이 굳이 그런 엔딩을 설정한 것은, 주인공 데이빗의 행동력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다만 “타이밍이 어긋난 것”이 문제라는 것, 즉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행동에 옮긴다 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는 비극적 운명의 힘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는 이것을 때로 ‘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이 그 무수한 노력과 최선의 선택을 최악의 결과로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겐 공포가 될 수밖에 없음을 강변하는 듯하다. 당연히 죽을 것이라 믿었던 여인은 자식들과 함께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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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켜주겠다던 아들과의 약속. 과연 지킬 수 있을까?

결국 이 영화의 공포의 흐름은

외부 존재의 직접적, 물리적 공격 < 인간 본성에 내재한 광기와 폭력 << 넘사벽 << 인간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

이 된다는 것. 애초에 괴생명체가 출현한 것 역시 다른 차원의 문을 함부로 열면서 인간의 통제가 실패했기 때문이었으니, 데이빗이 그런 엔딩을 맞게 된 것도 영화 내적으로 크게 논리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은 엄한 놈(조직)이 저질러놓고 그 피해를 오롯이 엄한 다른 개인이 지게 된 게 마음이 아프달까. 이제껏 국내에 소개된 수많은 미국산 ‘포스트-9.11’ 영화들 중 가장 직접적이고도 탁월한 정치적 해석을 가진 영화로 보아도 무방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ps1. 주연을 맡은 토마스 제인의 연기는 역시 부족했다는 생각. 역시 엔딩장면에서 그 엄청난 비극을 표현해 내는 데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ps2. 영화 속 상황과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그토록 맞아떨어진다면, ‘그러므로 요한계시록대로 다른 예언도 실행될 것이다’가 아니라 ‘과거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로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요한계시록이 아무리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은유적 / 신화적) 기록이 아니라 요한이 본 환상을 서술한 것이라 해도, 어쩌면 그것은 인류가 잊어버린 고대의 집단적인 (무의식상의) 기억을 요한이 떠올린 것일수도 있다. 물론 더 합리적이고 더 쉬운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 Feb. 3, 2008, 오후 2시, 용산CGV, 기자시사회

2008/01/29 01:15 2008/01/29 01:15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통해 철저한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된 영화를 만든다는 발상은 <클로버필드>가 처음 시도한 건 아니다. 국내에 <챨리 모픽>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된 바 있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철저한 1인칭 시점으로 베트남에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 영화의 엔딩은 아마도 카메라를 든 찰리 모픽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고 짐작할 수 있는 장면(카메라에 담긴 화면이 흔들리면서 밑을 향하더니 90도 회전한다.), 그리고 이어 비디오 화면이 꺼지는 장면으로 맺는다. 하지만 <클로버필드>가 시도한 것은 좀 더 야심차다. <챨리 모픽>과 달리 <클로버필드>에서 카메라를 쥔 사람은 전문적인 다큐멘터리 작가는커녕 아마추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카메라 자체를 잡아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며, 그가 사용하는 카메라 역시 35mm나 16mm의 필름 카메라가 아닌 가정용 캠코더이다. 당연히 화질은 훨씬 조악하고, 훨씬 심하게 흔들리며, 앵글도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피사체를 제대로 비추지 못하거나 인물이 잘리는 장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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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은 모두 의도적인 설정이다. 저 불안정한 앵글과 구도의 화면들 역시 매우 공들여 계산된 화면들이며, 몇몇 장면들은 그 인물의 그 카메라 앵글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화면들이 들어있다. 무엇보다도, 카메라에 잡힌 여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근사한 외모를 가진 20대들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화면이 주는 공포감은 강력하다. 여타의 다른 영화들에 당연히 있는 장면, 즉 신(감독)의 입장에서 전체 상황과 인물들?있는 위치를 조감해 주는 마스터 숏이 전혀 없는 까닭에, 관객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 알고 있는 것만 알고, 그가 가진 정보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거대한 파괴의 힘에 쫓겨 무작정 도망쳐야 하는 상황의 그 공포감은, 과연 대단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영화 내내 흔들리는 카메라가 유발하는 현기증과 멀미, 혹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가 그대로 전달된다는 현장감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제까지 봐왔던 영화들이 어떤 영화문법에 의거해 왔는가를, 오히려 그 문법을 다 깨놓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영화 내내 느끼게 되는 답답함은, 영화 내적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데에서 기인하지만, 영화 외적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일명 '마스터 숏'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제껏 보았던 영화들의 '시점'이 대체로 전지적인 신의 위치에 있는 감독의 시선이라는 것, 이 영화엔 존재하지 않는 그 시점이 바로 우리가 봐온 영화들을 구성하는 시점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만큼 강하게 웅변해주고 있는 영화는 없다. 게다가 이 영화의 공포만큼 안전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영화의 시작부터 이 영화가 기준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잡은 채, 과거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기록물이라는 설정을 자막을 통해 공지받는다. 영화 내내 우리는 주인공들의 공포에 함께 하며 그들의 공포를 마치 내 것처럼 느끼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그 공포가 지금 바로 현재 일어나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 철저하게 타인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어느 사건, 나아가 그마저도 실은 '재미의 스펙터클'을 위해 조작된 허구라는 사실을 동시에 되새긴다. 관객은 과거 그 어느 영화를 볼 때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영화로부터 소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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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캠코더가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고 휴대폰 카메라 등으로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며 이른바 'UCC의 시대'가 열린 현재, 우리는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맞은 것처럼 보이고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영화 속에 적극 반영하며 이제까지의 영화들에 강하게 도전을 하고 있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 그 어떤 영화보다 관객을 '공포의 현장감'에 끌어들이면서도 그 현장에서 소외시킨다. 게다가 이 영화에 의하면,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곧 '감독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뜻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철저한 1인칭 시점'을 고수함으로써 오히려 영화감독의 자리(심지어 촬영감독 혹은 카메라맨의 존재조차)를 철저하게 지우거나 숨겨놓는다. (이 영화의 감독인 맷 리브스보다 제작자인 J.J. 에이브럼즈의 이름이 훨씬 더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단순히 유명세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셀프 카메라와 UCC들이야말로 바로 카메라 앞에서건 뒤에서건 누군가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목적이 큰데, 이 영화의 1인칭 카메라 시점은 역으로 카메라 뒤의 존재감을 지워야만 성립이 된다.

이것이 과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영화 문법일까?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실험해 보고 싶은 창작자에게 이런 시도는 한번쯤 해볼 만한 시도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 영화가 초래하는 그 엄청난 불쾌감과 공포와 충격을 보자면 충분히 이 영화가 자신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지만, 과연 이 영화의 방식이 새로운 영화의 미래라거나 방식의 혁신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가지는 폭력적 속성을 고찰해온 영화이론가들(예컨대 국내에서 출간된 [매체로서의 영화]에 실린 논문 중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의 <용병대>를 예로 들며 영화의 폭력성을 고찰했던 볼페 레페니스와 같은)에게,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부르주아적인 폭력의 속성을 관객의 신체에 직접 전달되는 물질적 폭력으로 바꾸어 놓는, 매우 기분나쁜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ps1. 프레시안무비 기사로 올라간 글

ps2. 기본적으로 이전에 여기에 썼던 사적인 감상문과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허구를 가장한 실재를 가장한 허구라는 점에서, 그냥 실재를 가장한 허구이거나 허구를 가장한 실재인 기존 영화보다 오히려 관객을 더 소외시킨다는 관점이 새로 추가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08/01/29 00:26 2008/01/29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