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보딩게이트>, 필름포럼 - <바보>를 건너뛰고 <보딩게이트>를 보러가는데, 집에서 넉넉히 출발했음에도 택시를 탔다가 길이 왕창 밀려 10분을 놓쳤다. 아, 정말 주 내내 이상했다. 이게 뭐야. 올리비야 아싸이야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이 감독 의외로 애증과 집착과 배신과 기타 등등의 그 끈적하고 징글한 감정을 제대로 뽑아내는 분이구나 싶다. 난 또 장만옥의 <이마 베프>나 <클린> 같은 영화들, 스틸 한 장씩만 보고 엄청 우아한 감독인 줄 알았다는. 근데 거참 극장 안 분위기는 난삽하더라는.


2월 22일.

<데어 윌 비 블러드>, 용산CGV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6편을 모두 제끼고 금요일 딱 이거 보러 갔다. 간만에 J.가 동행. 꽤 보고싶어했던 <27번의 결혼리허설>은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딱 겹치는 바람에 통과. 그나저나 이거 제목 꼬라지 봐라. 전날 잠을 제대로 안 자고 갔다가 죽을 뻔했다. 몸의 진을 다 빼놓는 영화, 난 나오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라고 잠깐 생각했다니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나보다 겨우 4살 많은 주제에 무슨 도인이 돼버렸다냐. 이거 완전 호러영화라는. 영화란 매체의 시적 구현, 근데 서사시다. 아웅, 이거 다시 보러 가려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듯.


2월 25일.

<잘 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신촌 메가박스 - 그놈의 졸업식 때문에 이대 앞에서 차가 꽉 막혀서 무려 15분 지각, 그러나 놓친 건 5분 정도인듯. 아놔 헤더 그레이엄 너무 귀여우셔. 진작 좀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들 하시지, <부기나이트>부터 야한 역할들만 맡으셔서리.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연기를 하면서도 꽝 뱃속 깊게까지 때려주는 연기, 이 언니 그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확실히 연기를 잘 하시는구나. 근데 난 아무리 봐도 브리짓 모이나한은 영 안 끌리던데(몸매는 좋더라만), 미국애들은 이 아가씨가 엄청 섹시하다고 생각하나 봐? 흥, 나도 위 아래 짝 맞춘 비싼 속옷 사모을 거야! 함박눈이랑 묘하게 잘 어울리는 영화였어.

<마이 뉴 파트너>, 서울극장 - 눈길에 늦겠다 싶어 지하철 타고 급하게 날아왔는데 다행히 시간 딱 맞게 도착. 조한선 군을 비롯해 안성기와 기타 등등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했는데, 기자간담회는 가볍게 생까고 걍 집으로 왔다. 와, 조한선 키 크더라.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리도 길고, 의외로 어깨 넓고 상체가 우람한 몸매고, 그럼 당연히 내 가슴도 조금은 벌렁여야 하는데, 그것도 참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쩜 아무 매력이 없을 수가 있니. 안성기 아저씬 여전하심. 근데  언제나 멋지신 최일화 아저씨가 안 오셨어 어째. 영화는...  착각을 좀 많이 하셨더라.


2월 26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신촌 메가박스 - 이틀 연짱 신촌메박. 배우님들 짱이셔요. 주드 로도 좋지만 레이첼 와이즈 언니 너무 멋지셔요. 나 울 뻔했자나. (데이빗 스트래턴도 무지 좋았다는.) 사실 한번도 왕가위한테 열광하면서 좋아한 적은 없으니 '지나간 내 청춘' 운운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왕가위 영화는 <2046> 빼고 다 봤을걸. 근데 왕가위는 그러니까, 결국 (서)유럽인으로 태어나지 못해 좌절한 아시아인이었던 거야? <중경삼림>까지 기분나빠질려고 그래. 필름2.0에 Bad 쪽으로 단평을 보냈다.


2월 27일.

<허밍>,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 - 걍 두 마디만. 이게 영화면 내가 심은하다. 한지혜가 영화배우면 난 철인3종경기 세계챔피온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시네마 상상마당 - 가뜩이나 참석한 기자 수도 적었지만 영화 끝나고 기자간담회 때 남은 기자가 겨우 3명. 평소에 창피하다고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을 그래서 기자노릇 시작한지 1년만에 처음으로 해봤는데, 나 혼자 질문을 네 개인가 하면서 1:1 토론 분위기가... 끝나고 나와서 감독님과 인사하고, 마케팅팀 이목 제대로 끌고. (아우 창피해.) 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사업회에서 의뢰하여 만들어진, 인터뷰로만 구성되어 기존 다큠벤터리 공식을 다 깨버리는 다큐멘터리다. 이건 제대로 기사를 쓰고 싶다. 여력이 된다면 인터뷰도 제대로 하고 싶다.

2008/02/28 00:19 2008/02/28 00:19

<쾌도 홍길동>은 '퓨전 사극'이라는 좋은 핑계(!)를 내세워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이야기를 펼치지만, 그 안에 지금까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해내지 못했던 진취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지금, 우리의 젊은 세대들의 기성질서에 대한 '저항'은 물론 세대 내 '연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연대는 곧 깨질 수밖에 없지만.) <쾌도 홍길동>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한 지점들, 가장 빛이 나는 장면들은 홍길동이 아버지 홍판서 대감과, 창휘가 당대 왕이자 자신의 이복형인 광휘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장면들이며, 10회가 넘도록서로 적으로 대립하거나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하며 할 수 없이 협업했던 길동과 창휘가 15회에 이르러 서로를 인정하며 우정을 맺는 장면들이다. (이 미니시리즈는 총 24부작으로 기획되었다.) 16회에 이르면 길동과 창휘는 서로 친구와 동지로서 협동하며, 16회의 마지막 장면은 길동에게 향해진 화살을 창휘가 대신 몸으로 막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홍판서와 광휘는 각각 실질적 / 명목적으로 최고의 권력자들인 만큼, 길동과 창휘가 저항하는 대상은 단지 사적인 아버지와 형이 아니라 당대 강고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며 기성질서이다. 그런데 창휘의 저항은 기성질서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있는 제도에서 부패한 사람을 대신하려는 것이며, 형에 대한 그 저항은 결국 선왕, 즉 아버지의 질서를 복권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즉, 퇴행이며 반동이란 얘기다. 창휘가 지금의 노선을 고집하는 한, 아마도 앞으로 길동의 발목을 가장 강력하게 붙잡는 존재는 아버지도 왕도 아닌 창휘가 될 것이다. 그 자신 아직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혁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길동은 창휘와 일시적으로 접점은 이룰지언정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다. 민중이 새로운 왕의 후보 창휘에겐 별 관심이 없지만 부자들의 재물을 털어 나눠주는 홍길동은 초인적인 영웅으로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적으로는, 창휘와 길동, 이녹 모두 너무나 안쓰러우면서도 예쁜 만큼, 길동은 결국 새로운 왕이라는 것 역시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근본적 혁명을 시도하고, 창휘 역시 기존 질서 자체에까지 의문을 가지고 결국 적통대군의 자리마저 버리는 것이 내가 바라는 진행방향이다. 아마도 길동인 내 바람대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창휘의 경우 내 바람은 말그대로 '바람'일 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길동과 창휘가 이녹을 둘러싼 삼각관계의 연적 관계이기도 한 만큼,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결국 앞으로 전진하는 영웅과 퇴행하고 꺾이는 악당의 대립모드로 몰고가는 걸 좋아하기 마련이다. 나는 다만 연적인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잠시나마 연대를 이루었다는 사실에서 지극히 짧은 유통기한의 기쁨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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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는 다른 '자유인' 홍길동(강지환)의 모습. 사진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

<쾌도 홍길동>의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원작이 16세기 초를 배경으로 했던 것과 달리, 드라마는 왕인 광휘와 그의 자리를 넘보는 적통대군 창휘는 각각 광해군과 영창대군을 모델로 했고 이는 이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만, 광휘에게선 연산군과 영조의 그림자도 살짝 함께 엿보인다. 청나라가 이미 조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대국으로 자리잡았고 저자거리에도 청나라 물품을 파는 가게가 입점해있다는 설정을 보면 명과 청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했던 광해군 치세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 그러니까 18세기 경의 조선을 상당히 참조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라면 색안경과 불꽃놀이용 폭죽, 천축국에서 유래한 코브라와 배꼽춤(!), 색목인의 언어(영어), 골프의 변형(혹은 개인놀이화된 격구) 등이 한양땅에 등장한다 해도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거침없이 전개되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가 어느 순간 그러한 것들을 '그 시대에 정말로 그랬으려니' 하는 이상한 착시의 설득력을 제공한다.

퓨전 사극이라는 측면, 그리고 혁명을 다루고 있고 서로 입장이 다른 주요 인물들의 3각관계가 극 중심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쾌도 홍길동>은 여러 모로 <다모>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2003년에 방영되었던 <다모>가 드라마계와 시청자에게 남긴 영향은 매우 커서, 이제 우리는 사극이라 했을 때 무조건 엄숙하고 딱딱한 형식이나,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소도구와 의상에서 벗어나서 조선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2, 3백년 전 역사가 '판타지'의 공간으로 등장할 수 있고, 이런 식의 사극 판타지는 결국 지금의 상황과 현실을 조금 에둘러 풍자하는 '우화'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쾌도 홍길동>은 이 점을 십분 살려 대부업 광고나 FTA, 새 정부의 영어정책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장면들을 집어넣고, 이를 단순한 일회성 코믹 장면이 아니라 드라마의 스토리와 에피소드에 긴밀하게 엮어넣는 시도를 했다. 대부업 풍자는 9회부터 12회까지 심청 이야기의 변주와 함께 이루어졌으며(심청의 이야기가 좀더 현실성 있게 묘사된다), 16회에 삽입된 청나라 사신과의 아편 전쟁은 FTA를 비롯해 미국에 종속된 한국의 정치/외교관계와 새 정부의 영어정책을 비꼰다.

하지만 <쾌도 홍길동>이 <다모>와 명확하게 선을 긋는 지점은, 바로 <다모>가 실패했던 바로 그 한계지점들에서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소영웅주의에 입각해 혁명을 논했던 <다모>는 결국 인간을, 그리고 사랑을 도구적 입장에서 다뤘고, 사람의 진심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착취하고 결국 퇴행해버림으로써 방영 초기의 팬 일부에게 극렬한 배신감을 안겨줬다. <쾌도 홍길동>에서는 여성이, 사랑이 오히려 혁명을 깨우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폼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은 대의를 위해 작은 이들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런 이들의 목숨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을 배워나가는 쪽으로 성장해 간다. '알 게 뭐야'란 말을 입에 달고살던 홍길동은 사람 하나하나의 작은 마음과 상처까지 배려할 줄 아는 인간, 나아가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인간이 돼가고 있고, 소위 '대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노릇을 해왔던 창휘는 사람들의 아픈 비명소리가 양심을 아프게 함을 깨닫고 그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이녹이란 존재다. 그리고 길동과 창휘는 이녹을 사랑하면 사랑하게 될수록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길을 선택하게 된다.

나아가 <쾌도 홍길동>은 단순히 멋진 영웅 한 명의 활약이 아니라, 그가 민중과 소통하고 그 자신이 바로 민중 중 한 사람임을 선언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홍길동이 민중을 깨우치고 민중을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의적' 홍길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권력자에겐 칼과 창이 있고, 민중에겐 '말'이 있다. 태초에 말이 있어 그 말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창세기와 요한복음의 구절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힘의 신비와 비밀을 드러내는 구절이기도 하다. 초인으로 각색되는 홍길동, 저자거리에서 약장수에 의해 얘기되는 홍길동. 영웅이 신격화되고 다시 탈신격화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이 창작의 힘을 메타적으로 고찰하고 활용하며 여기에 유쾌한 농담을 곁들인다. 웃음 와중에도 다시 한번 돌아볼 가치가 충분한 방식. <쾌도 홍길동>은 바로 이야기의 힘을 믿고, 이것을 전면에 배치하는 드라마다. 그것도 창작자 개인이 아닌, '집단창작'의 힘과 저력을 탐구하는 드라마다. 사실 내게 이 드라마가 이토록 특별한 것도 바로 이 이유가 가장 크다.

앞으로 8회분이 남은 만큼 <다모>가 그랬듯 기대를 배반하며 퇴행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껏 보여준 이야기만으로도 <쾌도 홍길동>은 기존 그 어떤 드라마도 해내지 못했던 영역의 이야기를 특별한 방식을 통해 보여주었다. 달달한 싸구려 당의정으로 말초적 재미를 만족시켜 주면서도 그 안에 올바르고 건강한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이 능력, 이거야말로 내가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 그토록 기대해왔던 것들이다. 진심으로 홍자매 파이팅!을 외칠 수밖에 없다.



ps1. 강지환 버닝모드. <경성 스캔들>을 클리어하고 <90일, 사랑할 시간>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이 보여주는 연기, 참 재미있다. 기술적으로 아직 세련된 수준은 아닌데, 저돌적이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에 곧장 달려들어가 몰입하는 듯한 느낌이고, 거기에 대사나 작은 제스추어에 의외로 세심하게 디테일을 추가해서 캐릭터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더라. 무엇보다도 진지모드와 코믹모드 사이를 별 어색함없이 순식간에 오가는 능력에 꽤 놀랐다. 본격 상업영화 쪽으로 진출하게 되면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고 기대도 되고. 그 특이한 목소리는 처음엔 영 적응 안 돼서 기겁을 하며 TV를 끄곤 했는데, 요즘은 '익숙'을 넘어서 심지어 '감미롭게' 들린다. 언제나 굵은 저음 목소리를 좋아해왔던 나한테는 의외의 현상. (그러나 모님의 "그 앵앵거리는 목소리"라는 표현에 완전 박장대소했다는.)

ps2. 너무 동안인 근석군에겐 이제껏 관심이 없었는데, 세상에 여기에서는 뭘 입고 뭘 두르든 "순정만화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그것도 김진 만화) 미모를 자랑한다. 근데 역시 너무 동안인지라 성유리와 같이 연기하는 씬에서 (이모-조카처럼 보여서) 도통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제일 좋아하는 모습은 눈만 빠꼼히 내놓은 채 검은 두건을 썼을 때.

ps3. 이문식, 최수지, 임현식 같은 배우들이 1회 한정 카메오 연기를 펼친다. 아놔 이문식의 당수 캐릭터는 딱 보는 순간 무지 기대했었는데, 그 회에서 바로 칼맞고 죽어버리데... 최수지는, 정말 최수지 맞나 싶어 깜딱 놀랐다는. 광휘 역의 조희봉, 허노인 역의 정규수, 해명스님 역의 정은표의 연기는 후덜덜 수준, 홍판서 역의 길용우와 노객주 역의 최란은 TV 베테랑다운 연기. 좌상대감 안석환은 요즘 완전히 이쪽 캐릭터로 굳히기 하시는 듯. 그러나 역시 그 포스는 어쩔 수 없다는. 그러고보니 어마어마한 양반들이 조연으로 떡 버티고 있는 드라마로세.
2008/02/26 18:23 2008/02/26 18:23

아카데미 시즌의 정점이라 해야 할까요. 이번 아카데미상의 작품상 후보는 총 5편, 이중 작년에 이미 개봉한 <마이클 클레이튼>을 빼면, 나머지 4편 중 3편이 이번 주에 한꺼번에 개봉합니다. 세 편 다 날씬하게 잘 빠진 영화들인 데다 재미도 훌륭해서 별 이견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작품들이에요. 세 편 다 이번 아카데미상의 주요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부문에 다 후보로 올라있죠. 8개 부문, 7개 부문, 4개 부문. 세 작품 다 각본상이나 각색상, 작품상, 감독상, 거기에 여우조연상이니 남우조연상이니 하는 상들까지. 하지만 제가 추천작 중에서도 추천작으로 꼽을 '이주의 추천작'은 아카데미상에서 고작 사운드상과 음악상 2개 부문에 만 오른 <3:10 투 유마>입니다.

작년에 한국영화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당장 생각나는 영화가 <기담>과 <스카우트> 정도밖에 안 되니까...) 헐리웃은 물건들이 쏟아진 해였던 듯. 아카데미상이고 골든글로브고 전미/뉴욕/LA 비평가협회고 다들 상 뽑으면서 신났겠다 싶습니다. 올해 한국영화들은 사정이 좀 나아지려나요. 나아지길 빕니다.


이주의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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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투 유마

감독 : 제임스 맨골드 | 주연 : 크리스천 베일, 러셀 크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끊겨있던 서부영화의 맥을 잇는다는 홍보사의 자랑스러운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닌 영화이긴 한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사실 기존 서부영화를 배반하는 서부영화이기도 했죠. <3:10 투 유마>가 딱 그렇습니다. 멋진 영웅들이 활약하는 서부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지저분하며 잔혹한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서부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적대적 우정'을 만들어갑니다. 서로 적이기에 결국 어느 한 쪽이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짠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우정이 기반하고 있는 곳,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 동의하게 된 어떤 지점은 상당히 미래지향적이에요. 결국 자식 세대를 위한 거니까... 만약 두 사람이 저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군요. 전 두 주인공이 결국 한 사람의 이면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 둘이 그토록 배려하고 구하려던 존재는 결국 댄의 아들, 윌리엄이고, 그래서 혹자들이 고개를 저었던 마지막 엔딩이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원래 제임스 맨골드는 플롯이나 미장센보다는 캐릭터, 그래서 캐릭터를 위해 플롯이 살짝 늘어지거나 망가지는 일이 제임스 맨골드 영화에 왕왕 있지요. 한번 다시 보고 긴 감상문을 쓰고 싶군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 이선 코언, 조엘 코언 | 주연 : 조쉬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영화광들 사이에 코언 형제의 유머를 이해 못 하는 건 촌스러운 것이란 식의 스노비즘이 오랫동안 존재해왔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코언 형제의 유머나 그들의 영화세계는 저와 맞지 않고 제 취향도 아닙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마찬가지,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이 영화의 완성도라는 건 정말 억 소리가 나오게 훌륭합니다. 영화 자막 올라갈 때 그저 '허허허'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원래 존재하는 원작을 각색했다던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천상 코언 나라의 코언 영화. 그러면서도 뭐랄까, 과거의 코언 영화에서 한 단계를 또 훌쩍 뛰어넘은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뭐랄까, 숭고한 느낌이랄까. 원래 코언의 세계를 좋아했던 미국 평단이 이 영화에 그토록 호들갑떠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톤먼트

감독 : 조 라이트 | 주연 : 키라 나이틀라, 제임스 맥어보이

<오만과 편견> 감상문이 여기 뒤져보면 어딘가에 나올 텐데, 역시 전 조 라이트와는 맞지 않습니다. 특히 이 사람이 인물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퀵줌을 쓴다던가 하는 식의 카메라 장난을 부릴 땐 거부감이 팍 들어요. 뭐랄까, 그런 식의 격렬한 카메라 움직임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와 따로 논다는 느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만과 편견>보다 낫다면, 그건 10대 초반의 소녀(브라이어니)의 성적인 호기심이나, 10대 중후반 소년 소녀(세실리아와 로비)의 에로스에 대한 그 미묘한 태도와 행동들이 아주 잘 묘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연기도 아주 좋네요. 어린 브라이어니를 연기한 시어샤 로난(Saoirse Ronan, 전통 게일어 이름이라 발음이나 표기가 쉽지가 않네요. Shaoirse는 게일어로 '자유'란 뜻, 대강 seer-sha 내지 sur-shuh로 발음이 된답니다.)의 연기는 특히 빛이 납니다.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로 올랐던데, 아무리 아카데미 협회가 매년 욕을 먹는다고 해도 그래도 이 사람들 기본적으로 눈이 있단 말이죠. 원작소설을 사놓은 상태, 곧 읽을 예정입니다.


주노

감독 : 제이슨 라이트먼 | 주연 : 엘렌 페이지, 제니퍼 가드너

성과 사랑을 제대로 알기 전에 임신부터 덜컥 한 16살의 쿨한 소녀 주노의 아기낳기. 작고 재미있으며 감동적인 영화지만 미국에서 그렇게까지 열광했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반은 대사, 나머지 반은 주노의 캐릭터와 엘렌 페이지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는데, 자막을 통해 접하는 우리로서는 대사가 주는 재미의 반은 날려먹을 수밖에 없죠. 주노의 캐릭터와 엘렌 페이지의 매력은... 물론 동년배들에게도 어필하겠지만, 제가 의심하고 있는 건 영화 속 마크가 그랬듯 3, 4, 50대 아저씨들한테 우리 식으로 하자면 '국민여동생' 모드로 어필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만두소희가 저 임신했어요, 하는 캐릭터로 나올 때 아저씨들의 반응이라 해야 할까. 물론 영화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하게 감정변화를 묘사하고 있고, 바람직한 가족상도 보여주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도 사실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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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냥저냥 나머지들

보딩게이트

감독 : 올리비야 아싸야스 | 주연 : 아시아 다르젠토, 마이클 매드슨, 오가룡

크게 보자면 현재의 연인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과거의 연인을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게 만만한 얘기가 아닙니다. 과거의 남자는 금융계의 큰 손이었으며 지금은 몰락의 위기, 거기에 꽤나 가학적이고 지배력이 큰 남자로, 과거 그녀에게 사업상 파트너를 접대(!)하도록 강제한 일이 있죠. 그녀는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의 지배력과 영향력 하에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듭니다. 킬러이기도 한 현재 연인에게 저 과거의 남자를 처단해 달라는 청부살인 의뢰가 왔을 때 그녀가 참여한 건 어쩌면 돈보다도 과거를 끊는다는 이유가 더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영화보다도 장만옥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노장 올리비야 아싸야스 감독의 신작. 약간 B스럽고, 저는 꽤 좋았는데 남에게 추천했다간 원성을 더 많이 받을 것 같은 영화로군요.



미확인 개봉작

아주르와 아스미르

감독 : 미셸 오슬로

미셸 오슬로가 처음으로 3D 컴퓨터 그래픽을 차용했다고 하던데, 일반시사회 일정까지 받아놓고 너무 피곤해서 결국 확인을 못 한 영화. 보고 싶어요, 흐윽.


나비두더쥐

감독 : 서명수 | 주연 : 판영진

지하철 2호선의 베테랑 기관사의 이야기. 지하철 2호선도 베테랑 기관사도 모두 제 관심을 끄는 소재들.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인디스페이스에 나들이 가야겠습니다.


내부순환선

감독 : 조은희 | 주연 : 양은용,  배용근

같은 이름을 가진 남녀의 엇갈리는 인연에 관한 얘기라고 합니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또 지하철2호선 기관사라네요. 역시 가서 확인해 봐야죠. 인디스페이스 개봉작.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

감독 : 나카다 히데오 | 주연 : 마츠야마 겐이치, 쿠도 유키

이전 <데스노트>도 만화도 보지 않아서,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지만 감독이 나카다 히데오라고 해서 슬쩍 궁금증이 들었다가, 그러나 굳이 보러 갈 것 같지는 않군요.


IT 버블과 함께 잔 여자

감독 : 사토 후토시 | 주연 : 가네코 노보루, 마츠야 요코

현대판 신데렐라 얘기라곤 하는데 과거 원작소설 및 영화화 버전이 금융계 큰손과 엮이는 여자 얘기였다면 이번 리메이크는 IT업계 큰손과 엮이는 여자 얘기라고 합니다.


도발적 관계 : M

감독 : 히로키 류이치 | 주연 : 미원, 코우라 겐코

누구에게나 설정을 듣는 것만으로 보기 싫어지는 영화들이 전세계 영화의 반이라곤 하지만,  특히 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경우 십중 팔구는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것이다보니 (뭐 명분이야 이것저것 잘도 갖다 붙이지만요), 이런 설정을 갖고 있는 영화는 줄거리만 들어도 일단 거부감이 듭니다. 뭐 정말 좋은 영화를 편견 때문에 놓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제가 가진 게 편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는 거 보면...


일렉트로닉 걸

감독 : 유보현 | 주연 : 안천문, 왕서기

설정은 좀 웃긴데, 역시나 제가 별로 재미있어 할 영화 같지는 않군요.

2008/02/24 19:48 2008/02/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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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카피는 낚시라능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제목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가 그랬듯 명백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에서 기인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제목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가 그랬듯 명백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턴>에서 기인한다. 미국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일련의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가 추구한 것이 실제 서부시대의 역사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 액션’이었던 것처럼, <원스 어폰 어 타임>이 판타지의 공간으로 삼은 것은 해방 직전의 경성, 그리고 만주이다. 웨스턴 장르는 무법자가 판칠 수 있는 공간, 즉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사적 구제가 훨씬 더 광범위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원래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고, 영웅은 역사보다는 전설과 신화의 영역과 더 친하다. 이 영화는 일제시대의 경성이나 만주는 충분히 서부에 필적할 만큼 웨스턴 장르의 변주를 위한 훌륭한 영화적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마의태자 전설이나 석굴암 본존불상의 보석 전설을 가지고 영화를 시작하는 만큼("승자는 역사를 만들고 패자는 전설을 만든다"는 명대사와 함께), 민간전설들을 얽어 코믹액션와 인디아나 존스 아류의 어드벤쳐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하지만 뜻밖에 영화가 품고있는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어떤 (진지한)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정치적이고 세련돼 있다.

영화엔 변변히 등장하지도 않는 만주를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우리의 주인공 오봉구(박용우)가 속해있던 독립운동 조직이 만주에서 주로 활약했던 상해 임시정부의 직속 부대, 그 중에서도 아나키스트 그룹과 가까운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오봉구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각각 성동일과 조희봉이 열연한 미네르-빠의 주인과 요리사이다. 이들은 빠의 주인과 요리사, 혹은 독립군 행동대원 등으로만 언급될 뿐 변변한 이름조차 없다. (요리사의 이름은 '희봉'이지만 배우의 실제 이름과 같아 캐릭터 이름으로서는 별 존재감을 부여받지 못한다.) 배운 것 없고 무식해도 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비록 맡은 임무마다 실수를 하는 데다 평상시의 행동도 어리숙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이름없는 민중'의 표상일 터이다. 이들은 거창한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으로 죽고싶다 /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식민지 최고의 권력자 총감을 암살하는 데에 성공할 뿐 아니라,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고 통쾌한 장면을 장식한다. 이들의 노선 운운 차이 역시 단순히 코미디를 위한 억지설정으로 보기 어렵다. 당시 독립운동 세력들이 노선 차이에 따라 무수한 다양한 세력들로 쪼개져 있었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다소 윗선의 독립운동가인 오봉구와 임정37호가 속한 조직이 그 무수한 세력들 중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이들은 '의열단사(史)'를 공부했다), 두 사람의 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을 오히려 풍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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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들

이들의 바람, 즉 '조선인으로 죽고싶다 / 살고싶다'는 소망은, 또다시 다른 캐릭터들이 무수히 많은 이름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미네르-빠의 주인과 요리사가 자신들의 이중 정체성을 별로 견디지 못하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고 싶어하는 이들에 이름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다른 인물들은 저마다 이중 혹은 삼중의 신분을 가지고 이를 별 갈등없이 유연하게 통제하거나(오봉구, 춘자, 임정37호 등),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정체성에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야마다 중좌, 경찰서장 황춘덕, 악명높은 형사 노덕술). 영화의 표면적인 주인공인 오봉구는 독립군 첩보대 대장 장백산13호이자 문화재 발굴 사업가 가네무라이며, 미네르-빠의 가수 춘자는 하루코이자 안중군의 손바닥 그림을 자신의 인장으로 사용하는 솜씨좋은 도둑 해당화이다. 전당포 주인은 실제로는 임정37호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신분을 오가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돈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반면 자신이 가진 여러한편 제국에 협력하고 있는 헌병대 야마다 중좌, 경찰서장, 악명높은 형사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원래 조선인임을 숨기고 있고, 그 사실을 약점으로 여기며 일종의 정체성 혼돈을 겪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원래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 채, 그럼에도 이를 버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위장'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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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한 자와 혼란한 자의 대립. 이 장면의 액션씬 굉장히 좋아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분열은 말하자면 식민지 근대의 가장 근본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군의 '식민지 근대론'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의 논의를 빌어오면, 소위 '내선일체'로 표현되는 동일화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제국의 본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시 존재했던 차별화가 함께 작동하던 식민지 조선은 근본적으로 분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던 이들의 모습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이 되고싶어 안달하며 영어 발음 하나에도 깐깐하게 구는 사람들이 소위 오늘날 '해방된 조국'의 권력의 윗층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당시 소위 대동아전쟁을 수행하며 '악마같은 서구 세력을 막아낼' 가장 근대화한 제국 일본을 욕망하며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단적으로, 동방의 빛 환송회 장면에서 열정적으로 친일시를 낭송하는 남녀 사회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서정주와 모윤숙을 떠올릴 수 있다. (덧붙이자면, 하세가와 경부/노덕술의 이름은 일제 당시 잔혹한 친일 조선인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실제인물 노덕술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춘자의 경우는 좀더 흥미로운 케이스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니'라 선언하는 그녀는 민족과 조국의 개념이 강하게 형성되던 당시에 국가의 권위를 부정했던, 그러나 식민지 당시 무장독립투쟁에서 그 누구보다 활약했음에도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후 대한민국에서 철저하게 역사가 지워져버린 아나키스트들을 떠올리게 한다. 등장인물 중 그 누구보다 정체성 혼돈을 겪을 만한 신분임에도, 그녀는 오히려 그 혼돈을 일찌감치 초월한 채 어느 나라의 국민이 아닌 '개인'으로서 살고자 하는 대단히 현대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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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관계없음) 오빠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신감과 뻔뻔함.

영화의 마지막은 결국 춘자가 장식하게 된다. 춘자의 공연장면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한 영화의 분위기를 마무리짓기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 장면이지만, 이 영화가 끝까지 정치적 고려를 놓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객석의 반은 미군이 차지하고 있고, 재즈를 빙자해 '도롯토'를 부르던 춘자는 이제 영어 가사의 팝송을 유창하게 부른다. 마지막 해피엔딩의 장면조차 미 군정체제를 거쳐 결국 한국전쟁으로 나아가고, 나아가 오늘날에는 심지어 '어륀지'의 발음 하나에도 그토록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바로 지금 한국의 현실을 제시해주는 이 영화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끝까지 노련하게 우회한 훅으로 건드리고 있다.


ps.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올라간 글

ps2.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장르혼성도 상당히 흥겨웠다.

ps3. 박용우의 연기는 자신감 부족 외에도,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톤이 어긋난 느낌. 그런데 박용우의 오봉구 캐릭터는 두고두고 시리즈 주인공으로 써먹어도 충분히 매력있을 캐릭터. 내가 원래 오봉구 같은 캐릭터를 심하게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2008/02/20 18:14 2008/02/20 18:14
2월 11일.

<주노>, 대한극장 - 한국의 많은 여자들이 주노보다 배의 나이를 먹고서도 주노만큼의 처신도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건 이 사회가 편견에 맞서 내 식대로 살겠다 결심하기엔 너무 험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