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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창호 | 황진이 (1986) 2008/06/12
  2. 배창호 | 고래사냥 2 (1985)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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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성 촬영감독과의 첫 작품.

<황진이>는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대 전환을 이루는 영화로 기록된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그렇지만, 감독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단순히 픽스된 카메라와 극도의 롱테이크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 속에서 보이는 기독교적 희생정신과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배창호 감독은 타르코프스키 얘기가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듯. <황진이>를 만들기 전까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시고, 롱테이크만으로 그런 얘길 하는 거라면 롱테이크가 삽입된 다른 영화들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까지 하시더라는. :)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이 대히트를 친 직후였고 배창호 감독이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만큼, '당대 최고의 흥행술사' 배창호가 만든 황진이 영화에 관객들이 몰려가면서 걸었던 기대는 당연히 화려하고 야한 사극이었을 터이다. 그런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당혹감에 빠졌던 것 역시 충분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어우동>이 개봉된 직후이건 아니건,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는 한국영화사에 있어 매우 이상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필름으로 보고 내가 새삼 확인한 건 이 영화가 공간의 깊이와 입체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식의 '깊은 공간감'을 잘 살리는 영화, 요즘에도 별로 나오질 않는다. 내가 <살인의 추억>에 열광했던 데에는 지하에 위치한 좁은 취조실의 그 '깊은 공간감' 때문이기도 한데, 근 10년간 본 극장개봉작 중 거의 유일했지 싶으니까. 극도로 움직임을 자제하는 카메라, 그리고 그 안에서 거의 '구도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미희의 황진이. 아마도 사극이라 더 그렇겠지만, <황진이>는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되며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다. 도저히 20년 전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감탄만 나온다.

<황진이>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여기에 안배된 러닝타임 비율도 비슷하다. 첫번째는 혼사를 앞둔 '소녀' 황진이(장미희)와 갖바치(안성기)와의 인연이다. 황진이를 사모하던 갖바치는 진이의 집에 침입해 번번이 그녀의 신발을 훔쳐간다. '갖바치'는 원래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키는 말, 그러니 제가 만들고 제가 훔쳐가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래야 진이를 좀더 '공식적'으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발 뒤의 모습이긴 해도. 어느 날 딱 걸리고 만 갖바치, 관아에 끌려가는 순간 그를 '관대하게' 대하기 위해 진이가 직접 나서지만 그건 가파치에겐 가장 혹독한 처벌이어서,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진이의 집 문앞에서 멈춰서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새벽, 진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치마를 벗어 그의 관 위를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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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와 갖바치. 둘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 한다.

두번째 부분은 '명월이' 황진이와 벽계수(신일룡)의 인연. 배창호가 그려낸 황진이는 도발적이고 뭇 유학자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도발적인 기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콧대를 세우는 매우 정숙하고 내성적인 황진이다. 그런 그녀를 뻔질나게 찾아와 소위 '도끼질'을 하는 게 벽계수인데, 그와 사랑에 빠진 진이는 결국 그에게 처녀성을 내준다. 이 장면에서 진이는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머리에 꽃을 두르고 있다. 황진이와 신선놀음을 하던 벽계수는 진이의 치마에 시 한 수 써 주고 송도를 떠난다. 물론 겨울 되기 전 다시 오겠다는 약속 따위 지킬 리가 없다. 그러니까, 콧대높은 기생 하나와 잘 놀다 간 셈, 혹은 '콧대 높은 기생 내가 자빠뜨렸다'는 영웅담이나 하나 추가한 셈이다. 벽계수의 집까지 찾아갔다가 쓸쓸히 돌아서는 진이의 뒷모습이 인상깊다.

세번째 부분은 신분을 숨기고 유랑하는 황진이와 이생(전무송)의 인연. 송도의 그 유명했던 진이는 초라한 행색으로 이름을 숨긴 채 장터의 조그마한 주막에서 지나는 행객들의 술을 따르거나 하면서 밥을 빌어먹으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역시 초라한 행색의 이생을 만난다.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화를 당해 수배된 채 숨어 도망다니는 이생과 진이는 길을 함께 나서 유랑한다. 병약한 이생의 뒷수발을 들며 함께 길을 다니던 진이는 이생에게 한 끼를 먹이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며 계속 유랑하다가 그만 폐병에 걸린다. 처음엔 그녀를 안타까이 여겼던 이생은 나중에 그녀의 포주 노릇을 하기도 하여, 마지막으로 이생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황진이는 병든 몸을 간신히 이끌며 사당패를 나서지만, 결국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렇게까지 요약하는 것은 어차피 만인에게 알려진 황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 줄거리 요약 따위는 스포일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그리는 황진이는 우리가 익히 '야사'로 전해들어 아는 도발적인 황진이와 상당히 다르긴 하다. 황진이가 평생을 가장 애정하며 존경했다는 서화담 따위는 나오지도 않고, 벽계수와의 관계도 정반대로 그려졌다. 알려져 있기로는 오히려 진이가 벽계수에게 굴욕을 안겨준 것으로 돼 있지 않은가. 이생과의 관계는 더욱 픽션화돼 있다. [어우야담]에서 묘사되는 이생은 근심걱정 없는 딱 한량인 모양이고, 둘은 금강산 유람을 위해 길을 나서 거지꼴을 하고 밥을 빌어먹고 하다가 무사히 송도로 돌아왔다고 전해지지만, 영화에서 이생은 상당히... 무기력하고 고지식한 선비이고, 나아가 찌질하게 변하기까지 한다. 어차피 진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 이름에서부터 제대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본명이 '황진'일 것이라 보는 설이 꽤 있다), 그렇게 유명한 당시 명사들과 교류했음에도 사망한 해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족선사를 비롯해 그녀가 당대 어떤 이들을 파계시키고 유혹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서화담에게는 실패했는가가 흥미거리로 전해지는 반면, 말년의 생애(그래봤자 40대에 요절했다고 하지만)도 그저 명산들을 두루 유람다녔다고 전해지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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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수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

이렇게 드문드문 알려진 사실들을 가지고 배창호 감독이 그려낸 황진이는 한마디로 '구도자'라 할 수 있다. 서화담과의 문답에서 '내 삶은 인간을 알기 위한 것이었노라'라고 답했다고 하니, 배창호 식 해석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배창호 감독은 유난히 로드무비를 많이 찍었고, 그 자신도 길을 참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그래서 그의 2004년작은 아예 제목부터 <길>이다.), <황진이>뿐 아니라 <정>에서도 '길을 떠나는 여인'의 이미지는 구도자의 그것과 같다. 세 남자와의 인연을 통해 황진이는 점차 저 위에서 맨바닥으로 추락하고, 이생과의 에피소드에서 진이의 모습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피로와 병색이 가득한 초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자주 나오는 그 '길 떠나는 장면'들이, 바로 황진이를 구도자의 모습으로 만든다.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원래 배창호 감독은 이 장면들을 빼려고 했는데,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거 빼면 나 안해!"를 외치며 끝까지 버텼다는 후문이 있다. 만약 그 장면들을 뺐다면, 그저 남자들 잘못 만나 신세 망치고 추락하는 여인네의 이야기로만 전락했을지도 모르겠다.

<황진이>를 이야기하면서 정일성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그 '화면'들의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나는 <황진이>를 아주 오래 전 비디오로만 보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비디오야 원래 화면비가 1.85:1(비스타비젼)이건 2.35:1(시네마스코프)이건 양옆 다 잘라먹고 4:3 TV 화면에 팬앤스캔으로 만들었으니까, 양옆 잘린 화면을 보며 당연히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정작 필름으로 확인해 보니 이게 웬걸, 비스타비젼이네? 즉, 그렇게 '이미지'와 풍광을 중시여긴 영화인데도 비스타비젼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화면 중앙 저 깊은 후경에 문을 두거나 길을 내놓고 인물들이 후경에서 앞쪽 전경으로 걸어나온다거나 하는 장면들로 '공간의 깊이감'을 살려내며 풍광을 묘사한다. 심지어는 황진이가 혼자 방안에 있는 장면에서도 방은 좁고 깊게 묘사되었다. 진이의 집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도 마찬가지. 이명세 감독의 <형사 : 듀얼리스트>에서 하지원과 강동원이 칼춞을 벌이는 벽 옆 좁은 골목길을 '깊게 잡은' 구도는,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장면들이 있다. 특히 이생과의 에피소드 부분에서는 아예 벽이 화면 중앙 저 깊은 곳 후경에서 시작해 화면 전경에서 오른쪽으로 90도로 꺾어지도록 미장센을 구축한 장면도 꽤 된다. 인물들은 그 벽을 따라 후경에서 전경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좌우로 길게 풍광을 표현하거나 인물이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이동하지 않고(그렇게 이동하는 장면은 단 한 컷, 그나마도 진이가 화면 왼쪽에서 걷기 시작해 화면의 중앙까지 반도 오지 않고 멈춰선다.), 주로 후경에서 전경으로 이동한다.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넘어가는 장면도 폭포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깊은 공간적 입체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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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식으로, 90도를 이루는 벽 장면이 많다.

배창호 감독은 각각의 씬들을 컷을 많이 나누지 않고 롱테이크를 많이 썼으며, 카메라 역시 픽스된 상태로 화면을 만들었다. 좀처럼 영화 속에서 이동하는 법 없이 고정돼 있던 카메라가 (내 기억으로는) 거의 끝 부분에 가서 단 두 컷에서 움직인다. 하나는 사당패들이 있던 낡은 집에서 사당패들과 진이가 떠난 빈자리를 카메라가 좌에서 우로 천천히, 그리고 길게 비추다가 마지막에 홀로 누워있던 이생을 비추면서 멈춘다. 또 하나는 사당패를 따라나선 진이의 모습을 천천히 좌에서 우로 따라가는 장면. 이 장면이 또 이 영화에선 아주 드문, 인물이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해가 뜨는 새벽의 바닷가에서, 사당패가 좌에서 우로 다 지나갈 동안 카메라는 롱샷으로 사당패가 걷는 속도보다 더 늦게 좌에서 우로 이동한다. 곧 프레임 안으로 사당패의 뒤를 따르던 진이의 모습이 들어오는데, 사당패보다 느린 카메라의 이동속도는 바로 진이의 걸음 속도였음이 드러난다. 결국 진이가 쓰러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멈추었다가, 그녀의 모습을 풀샷으로,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비춘 뒤 다시 풀샷으로 잡는다. 죽음이다.

이런 식의 화면 만들기는 지금도 대단히 놀랍고도 드문 것이지만, 당대엔 더욱 그랬으리라. 혹자들은 이 영화에 있어 이런 식의 화면을 전적으로 정일성 촬영감독의 공으로만 돌려버리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이런 독특한 화면은 정일성 촬영감독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고 그의 예술적 야심이 십분 발휘된 게 사실이지만, 그 이후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 예컨대 <기쁜 우리 젊은 날> 같은 영화에서도 롱테이크는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오로지 정일성 촬영감독의 공으로만 돌리며 배창호 감독의 미학적 성취를 과소평가하는 건 매우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의 증언을 빌면, 오히려 <황진이>보다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컷수가 더 적다.

나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 <황진이>만큼은 어딘가에서 상영을 한다고 하면 그때마다 가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아름답고 중요한 영화다. "한국영화는 너무 말이 많아"라는 게 내 평소의 불만인데 - 장면으로 충분히 제시해줄 수 있는 걸 굳이 대사로 떠벌떠벌 설명해주는 촌스러운 센스가 지금 한국영화에도 여전히 넘쳐난다 - <황진이>는 영화란 게 얼마나 인간의 시각에 호소하는 매체인지, 영화에서 새삼 '편집'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공정인지 증명하는, 아주 영화다운 영화다.



ps. May 30, 2008, 오후 2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

ps2. 송혜교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장미희 버전의 황진이에 비하면 송혜교는 그냥 '따위'가 돼버린다는. (그러게 감독을 잘 만나야 한다.) 하지원의 황진이는 안 봐서 모르겠고... 그러나 장미희가 딱히 '한복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장미희가 대단히 세련된 현대적 이목구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한복보다는 역시 현대식 정장을 입었을 때가 훨씬 잘 어울린다.

ps3. 생각해보니 이 영화에선 안성기의 대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고작해야 맞을 때 신음소리 정도;;;

ps4. 이 영화는 국내 최초로 파나비젼으로 촬영되었다. 마지막 엔딩에도 파나비젼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06/12 10:25 2008/06/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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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보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진다.

연보를 찾아보면, <고래사냥 2>는 황기성 사단의 첫 제작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아마도 과거 황기성 감독과 배창호 감독 사이의 친분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게 아닌가 싶은데, 특별전 때 배창호 감독은 이 영화를 20여 년만에 다시 보니 왜 저렇게밖에 못 만들었나, 식은 땀이 났다고 말씀하셨고, 부인인 김유미 씨는 이틀 밤을 잠을 못 주무시더라 증언을 하시기도 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도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의지가 아닌 기획사의 요구로 시작돼 만든 영화로 이 <고래사냥 2>를 꼽은 바 있다. 감독님의 이런 발언들 때문에 특별전 당시 영화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민망해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은 물론 화면 구성마저도 너무나 안이하고 늘어져서 아니 이게 정말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몇몇 흥미로운 요소들이 보인다.

사실 영화들을 쭉 보면서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은 <고래사냥 2>보다는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안녕하세요 하나님>에 대한 감상문은 이후 쓸 예정이고, 아무래도 <고래사냥 2>가 전편에서 제목을 빌어온 만큼 전편과의 비교는 피할 수가 없겠다. 소심한 대학생의 이름은 또 다시 병태(손창민)이고, 그는 우연히 '기인'인 도사(안성기)를 만나며, 또다시 우연히 소녀 영희(강수연)를 만나는데 그녀는 벙어리는 아니지만 부분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고, 이들은 팀을 이루어 영희의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영희의 뒤를 쫓는 악당들을 피하며. <고래사냥 2>는 노골적으로 전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를 테면 병태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도사가 "또 병태냐, 3년 전에도 너 같은 병태를 만나 쌩고생을 했다"고 말한다. 즉 시간상으로 <고래사냥 2>는 <고래사냥>에서 3년이 지난 뒤, 그 사이 거지에서 도사로 변신한 왕초가 또다시 병태와 소녀를 위해 여행을 하는 형식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전편의 병태와 <고래사냥 2>의 병태는 다르다. 전편의 병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짓눌린 채 자신의 정체성도 존재감도 스스로 갖지 못했던 청춘이다. 좋아하는 여자한테서 보답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안고 있긴 하지만, 영화 초반 삽입된 긴 내레이션을 보면 그의 고민은 그저 실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면 <고래사냥 2>의 병태는 그저 자신과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다른 남자와 하는 여자의 결혼식에서 깽판을 부리고, 그 괴로움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철부지 청년일 뿐이다.

영희와 도사의 캐릭터는 보다 흥미롭다. 특히 전편의 그 거지왕초가 3년 후에 도사가 되어 나타났다는 설정은, 사실 내게는 매우 예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전편에서 거지왕초는 사실 명문대의 대학생 한민우였던 것으로 암시가 되는데, 한국에서 과거 운동권들 혹은 지식인층에서 심심치 않게 생명사상이나 도, 기 등 신비주의 사상으로 안착한 예가 흔하다. 박노해나 김지하뿐만 아니라, 이름이 덜 알려진 사람들에게서도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신적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결국 그쪽으로 가는 건 (좀 우스갯소리를 섞어) 딱 무협지 스타일인데, 실은 그 무협지적 정서가 한국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딱 한민우가 그렇지 않은가. 명문대 대학생이었던 그는 (운동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래사냥> 시절에는 모든 소유를 버리고 거지가 돼 있고, 3년 뒤 <고래사냥 2>시절에는 다시 도와 기를 읊조리고 생식을 해야 한다며 대파와 생무는 물론 생낙지와 생닭을 뜯어먹는 '도사'가 돼 있다. 이 설정이, 과연 감독이나 작가가 '아무렇게나' 우연히 설정한 것만은 아닌 걸로 보인다. J.와 나는 얼마 전 저런 식의 신비주의 사상으로 귀결되는 예가 매우 한국적인, 그러나 이 한국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1985년작인 이 영화가 바로 그것을 벌써부터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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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 표정은 어벙하지만 너무 잘 생겼다.

전편에서 창녀였던 여자의 설정은 소매치기 여자로 바뀌었다. 여기서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보여주는 방식은 전편보다 한편으로는 더 은근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스펙터클해졌다. 그녀는 창녀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아비 노릇을 자처하며 드레스를 입히는 악당 두목은 그녀에게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에 유난히 창녀인 여성이 많이 등장했던 건 아무래도 현실 자체가 극도의 가난 속에서 생계와 가족 부양을 위해 몸을 팔아야했던 여성들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고래사냥 2>에서는 여주인공이 그저 소매치기이고 이런 매매춘과 별 상관이 없는 대신, 그녀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동네들은 소위 '양공주'들이 있는 동두천 일대가 된다. 매매춘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은근히 장려되고("여러분들은 달러벌이의 역군들입니다") 조직화돼있는 한편 국가가 처한 모순까지 개입돼 있는 매매춘의 장소가 아닌가.

사실 이 영화는 반미까지는 아니어도 비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아마도 <깊고 푸른 밤> 이후에 찍은 영화여서일까? 병태를 버린 원래 여자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유학생과 결혼하며, 그 여성은 영문과 출신이다. 영화가 시작되고서 10분도 지나지 않아 '미국'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영어에 대한 강박증을 보이는가. 병태와 도사가 굳이 이태원에 가서 안 되는 영어로 미국인에게 돈을 구걸하는 장면도 곁들여 있다. 이들이 한국인 출입금지인 클럽에 통과하게 된 계기는 한쪽은 교포로, 한쪽은 흑인으로 변장을 하고서인데, 이 장면은 얼굴에 검은칠을 하고 흑인인 척하는 안성기의 모습 때문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굴절된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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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2>에는 군경과 대치하는 몇 번 장면이 나온다. 이것도 그 중 하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많은 창녀들, 양공주들이 등장함에도, 영희는 창녀가 아니라는 점일 터이다. 강수연에게 배역을 맡기면서 그녀에겐 창녀보다 소매치기라는, 보다 '말괄량이' 이미지(혹은 보다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감독의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창녀의 딸이 더 이상 창녀의 딸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남자들에게 착취를 당하지만.

<고래사냥>도 그렇고 <고래사냥 2>도 그렇고, 아버지의 존재는 철저하게 지워져 있다. 사실 두 영화 다 거의 전체가 세 명의 '아이들'의 좌충우돌이고,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그토록 그립고 보고팠던 어머니가 제시된다. 한국인들의 고아의식과 외로움이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도 이런 식으로 투영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ps. May 28, 20008, 오후 5시, 서울아트시네마

2008/06/12 07:08 2008/06/12 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