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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런 '추상적인' 포스터가 붙었었다고?

여행지에서 낯선 여인에게 독이 섞인 음료수를 받아마셨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영걸(김정철)은 이후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그런 그에게 연달아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삶의 의지'를 외치며 죽여도 죽지 않는 노인, 뼈에서 살아난 천 년 전 신라 때의 여인(이화시), 그리고 죽음에의 의지로 충만한 까칠한 미대생(김자옥)과 차례로 만나며 영걸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영걸은 누군가 자신을 죽여준다 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정작 남의 손에 (혹은 운명에) 수동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고, 죽음을 향한 탐닉으로 포장된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걸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천 년 전 여인이 환생을 위한 마지막 단도리 절차로 그에게 생간을 요구할 때 상당히 망설인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재밌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주도권은 철저하게 신라 여인에게 있다는 것. 싫은 남자와 결혼하기 싫어 천 년 뒤 부활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 여자는 삶,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미 한 번 죽음을 선택했고. 그러나 그녀는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다.

소극적인 것으로 치자면야 그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열심히 자살시도를 하긴 해도 번번이 노인에게 방해를 받고 결국 죽지를 못하는데, 따지고 보면 영걸은 이 영화 내내 에피소드 셋을 거치는 동안 계속 상황에 따른 소극적인 선택으로 일관한다. '선택'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일련의 언행들. 그건 아마도 그가 죽다 살아난 뒤 목에 나비 목걸이를 걸쳐서일 테다. 이 영화에서 나비는 죽음을 뜻하니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까칠한 공주 미대생의 버릇을 고쳐주네 마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이교수(남궁원)의 권력 하에 존재한다. 그가 이교수를 의심하며 대항하는 것 역시 다른 권위, 즉 형사를 찾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세번째 에피소드로 가면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주인공이 영걸이 아니라 한참 새파란 시절의 김자옥이 주연을 맡은 미대생 여인이 된다. 그녀는 삶에 대한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는, 죽음에 단단히 매혹된 여성이다. (그녀의 주된 작업 주제가 '나비'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런데 정작 암에 걸리고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미련을 보인다. 이건 영걸이 계속해서 보여줬던 어떤 입장들, 그러니까 죽음을 동경하지만 정작 그 죽음이 찾아왔을 때 이를 거부하는 어떤 양태와 통한다.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이런 점을 들며 죽음에 대한 매혹을 그저 '겉멋'이라며 싸잡기 쉽지만, 사실 죽음을 탐하면서도 정작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란 지금의 삶보단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이란 존재할 수 없거나 죽음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윤회든 사후의 삶이든)을 인식하며 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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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에피소드, 왼쪽부터 영걸의 친구, 형사, 영걸, 전경엔 남궁원이 열연한 이박사.

혹자들은 이 영화를 '옴니버스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그게 맞을 것이다. 첫 에피소드가 상당히 기괴한, 초현실주의적인 호러라 친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천녀유혼> 유의 전형적인 귀신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룬 환상 멜러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세번째 단편으로 가면 또 미스테리 스릴러가 되고 말이다. 세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당연히 주인공인 영걸과 그의 친구이다. 이 친구는 첫 에피소드에서 나비수집 여행을 같이 간 일행이고, 사람이 되는 유골을 같이 발굴하러 간 동지이자, 이박사의 조교 자리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에피소드가 종합되는 게 바로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삶의 의지!"를 외치는 '머리통' 장면일 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시, 술에 형편없이 취한 두 친구의 악몽에 가까운 꿈일지도 모른다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 뭐 물론, 다시 살아나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 김기영 감독은 실은 "자꾸 자살타령하지 마라, 그래도 삶은 소중한 거니 한번 살아봐라"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듯. 사실 그런 식의 '설득 포스'를 워낙 강하게 느꼈다. 근거가 박약하건 충만하건 말건... 근데 뭐, 자살에 대한 욕구라는 건, 물론 개개인마다 유전적인 부분부터 해서 가치관 같은 거에 크게 달려있긴 하지만, 지금 현대사회라는 건 사실 자살을 지나치게 터부시하면서도 자살을 권장하는 사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배고파서 죽으나 총맞아 죽으나 자살하나...

하여간, 김기영 복권 바람을 타면서 이 영화가 '컬트영화'로 상당히 명성을 누린 게 벌써 10년인데, 흥미로운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여섯 편 가량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본 다음 내가 조심스럽게 내리는 '중간' 판단은, 김기영 감독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거. 물론 김기영 감독의 경우 그 자의식과 영화의 '형식미'가 충돌하는 지점이 상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 네이버 어디에선가 내린 '아스트랄 괴작영화'라는 평가가 딱 마음에 든다.


ps. May 28, 2008, 토요일 오후 4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ps2. 이화시가 너무 조아효... 너무 섹시한 언니, 가장 매력적인 건 나탈리 우드 부럽지 않은 그 이글이글한 눈!

ps3. 어떤 소개에 의하면 김정철의 캐릭터 이름이 '용빈'이고 남궁원은 '장박사'이다. 대체 이 완전히 다른 이름체계, 이유와 곡절이 뭔지 아시는 분~~?

2008/07/03 03:19 2008/07/03 03:19


김수철 - 나도야 간다


배창호 감독의 1984년작 <고래사냥>의 주제가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아니라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이다. 물론 송창식의 곡이 먼저 나왔고(아마도 75년, <바보들의 행진> OST에서였다고), 배창호 감독의 영화 제목은 거기에서 따왔을 수도, 혹은 다른 데에서 연유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마지막에 일행이 춘자의 고향에 도달해 무사히 어머니의 품에 안착할 뿐만 아니라 춘자가 말을 되찾기까지 하는, 매우 낙관적이고 희망이 넘쳐나는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에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송창식의 노래가 아무래도 좀 우울한 구석이 있는데다 가사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간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도피'의 고래를 찾아나서는 듯한 느낌인 반면, 김수철의 노래에는 청춘다운 패기와 정말로 희망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힘이 살아있다.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젊은 나이를/세월을 눈물로 보낼 수 있나"인데,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 박용철이 1925년에 발표한 시 '떠나가는 배'의 1연을 베이스로 한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가련다) 김수철의 '젊은 그대'도 그렇지만, '나도야 간다' 역시 굉장히 단순하고 힘찬 로큰롤 가락인지라 박용철의 원시의 비장하면서도 절망어린 표정 대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는 희망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이런 건강한 희망과 낙관이야말로 현실을 돌파하는 가장 큰 힘, 나아가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를 검색하다가 저 뮤직비디오를 찾았는데, 2002년에 제작된 거라고 하는 듯? 이미숙과 안성기가 찬조출연을 해주고 있는데, 이미숙의 추억 속 앨범에 등장하는 <고래사냥> 원래 영화 장면, 이라는 시작도 좋고(미숙언니 너무 예쁘심 ㅠ.ㅠ), 안성기가 <고래사냥>의 바로 그 거지왕초 캐릭터로 다시 등장하는 것도 너무 좋다. (안성기 최초의 뮤직비디오 출연이라고 한다.) 다만 현대의 아이들은 너무... 곱고 팬시하다는. 뭐 뮤직비디오니까 어쩔 수 없는 거려나. 남자애가 보고 있던 TV에 나오는 장면이 유곽에서 도망치는 장면과 기차 지붕 위로 올라타는 장면인데, 특히 저 기차 장면은 영화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잘 찍힌 명장면이다. 음악은... 기타 사운드가 좀더 일렉해지고, 전체 템포가 좀더 빨라진 듯한. 소박한 원래 버전이 더 좋지만 이 버전도 나쁘진 않다.

<고래사냥>이 저토록 희망차고 낙관적인 영화임에도 나는 영화를 보다가 여러 번 눈물을 흘리며 아픈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신나는' 2002년 뮤비 버전도, 처음에 볼 땐 혼자 막 눈물 찔끔대며 가슴이 아팠더랬다. 웃다가 울다가 가슴 부여잡다가, 그럼에도 너무나 밝은 저 김수철의 표정이 참 좋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근데 다시 들어도 진짜 명곡이다. 25년 전 노래가 이토록 세련되고 여전히 힘있을 수가 있다니까. 김수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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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3 00:57 2008/07/03 00:57

네오이마주의 네오plus에 6월 10일 실렸던 글인데, 네오이마주에서는 블로그로도 글을 서비스하는 고로 여기에는 그냥 링크만 매답니다.

나와 배창호 영화 : 배창호의 영화를 보며 얻은 사적인 깨달음들 (혹은 여기)


1.
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 (하략)


이 글의 반 이상이 배창호와 별로 상관이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돼 있는 것은, 네오이마주 밑에 달린 고마운 댓글에도 드러나다시피 배창호 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군림하던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여성' 영화팬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보통 영화팬들과는 다른 경험과 다른 영화적 자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얼마 전 영진공의 철구님께서도 동시상영관의 추억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만, 사실 한국의 많은 영화팬들이 이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노라, 나의 영화적 시작은 사실 대단히 고상한 고전 걸작이나 우아한 영화들이 아니라 홍콩무협 / 홍콩누아르 혹은 에로영화였노라, 그리고 실은 바로 그것이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는 식의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중견이 된 영화평론가나 이론가, 감독 등뿐만이 아니라 좀더 젊은 일반 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일반'으로 얘기된다 한들, 어디까지나 '남성영화팬들 일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전 여기서 남성과 여성을 가르려는 의도는 없으며, 모든 남성영화광들의 시작이 그러했고, 모든 여성영화광들의 시작이 그렇지 않았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대부> 시리즈를 호러 장르의 그 어떤 호러영화보다 무섭게 여기고, 에로영화들에 대해 불편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제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꽉 막힌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단적으로, 80년대 후반에 예컨대 <스카페이스>와 <산딸기> 시리즈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동시상영관에 입장을 한 여고생이 있다면, 이 사람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과연 이견이 있을까요?

영화적 추억을 기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재개봉관 혹은 동시상영관의 추억이, 실은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만의 문화였고, 이것이 지금 현재 여성평론가와 여성이론가의 입지가 좁은 이유와 어떤 식으로도 연결이 된다면, 그런 식의 '일반적인' 경험 외에 다른 경로의 경험은 적극적으로 다시 기억되고, 발굴되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전 이렇게까지 배제당한 경험으로 과연 여자인 내가 영화글쟁이는커녕 제대로 된 영화팬으로 인정이나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때가 있곤 하거든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것 때문에 꽤 자괴감도 컸고요. (거울 앞에서 you talkin' to me?를 따라하며 쿨하다고 여기는 남자애들 심리를 30대 초반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

뭐, 사회문화적, 그리고 시대적 환경이 그렇게 주어졌었고, 거기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가지고 제가 열등감을 갖거나,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일이 있었고 이것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식의 영화문화는 대체로 남자들의 문화였다" 정도의, 보편을 특수로 드러내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또다른 특수의 경험들을 늘어놓고 발굴하는 것... 원래 영화비평의 역사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당대엔 쓰레기 취급을 받은 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드러내는 것, 혹은 기존의 평가에 대한 재평가, 등등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인 제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영역은 또 따로 있겠지요. 예컨대 멜러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특히 스크루볼 코미디가 실은 계급과 젠더 차이에 관해 어떤 코멘트를 하고 있었나 등을 밝힌 선배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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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특별전 당시 배창호 감독.


하여간에... 저 '동시상영관 문화'가 아주 일반적이었던 80년대는 배창호 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고, 그 시절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저는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평론가/이론가/감독들보다 밑의 세대입니다. 여성일 뿐 아니라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영화적 자장 역시 꽤 다릅니다. 단적으로 전 독일문화원이나 프랑스문화원 등의 문화원 세대가 아니라 PC통신 세대거든요. 2000년대 들어, 이제 나름 안정화된 시네마테크에서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며 80년대를 기억 속에서 재구성해보자니, 제가 앞으로 가야 할 어떤 방향성 같은 게 좀 그려지더군요. 여러 모로 이번 아트시네마에서의 배창호 특별전은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합니다.

2008/07/03 00:13 2008/07/03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