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4'에 해당되는 글 2건

  1. 노영석 | 낮술 (2007) 2008/07/04
  2. 김기영 | 양산도 (1955) 2008/07/04

최근 실연한 혁진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정선행 여행을 결정한다. 하지만 다음 날, 정선 터미널에 도착한 사람은 혁진 혼자 뿐. "모레 갈 테니 기다리"라는 친구 때문에 혁진은 낯선 곳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지만, 계속되는 음주와 함께 갈수록 상황이 꼬이고 오해가 겹치면서 그의 여행은 점차 악몽으로 변해간다. 문제는, 당사자에겐 끔찍할 악몽이 보는 사람에겐 박장대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코미디라는 점이다.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단돈 천만 원으로 13일만에 총 11회 촬영으로 찍은 초저예산 장편영화다. 예산이 영화의 표현을 제약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한계를 이야기의 재미와 상상력으로 뚫고 나오는 영화도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영화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인디포럼 등에서 상영되며 관객들을 전혀 기대치 않았던 웃음바다로 몰아넣었고, 전주영화제에서는 JJ-Star상과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해 2관왕이 됐다. 그리고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및 배급 활성화를 위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한 달에 한 번씩 마련하는 독립장편영화 쇼케이스에서 6월 상영작으로 선택돼 상영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가에서 숭어를 구워먹는 세 사람. 영화 내내 음주씬이 계속된다.

종종 초점도 나가고 카메라 앵글과 편집이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순전히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낮 야외촬영으로 일관했다는 감독은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모험들을 매우 유기적으로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데에 성공한다. 혁진에게 거듭 찾아오는 우연들은 억지로 선택돼 짜맞춰진 우연이라기보다는 '여행지'에서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으로 여겨지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어리버리하고 찌질한 혁진의 반응이 사건을 계속되는 '반전'으로 몰아간다. 순진하고 소심하면서도 나름 음흉한 구석이 있는 혁진의 기대는 번번이 잔혹한 현실 앞에서 배반당하며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바로 그 지점들이다. 노영석 감독은 코미디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긴장과 웃음의 리듬감을 매우 훌륭하게 이어나간다. <낮술>에서 보이는 다소 기술적인 어색함과 단점들이 보완되고 조금 더 넉넉한 예산이 투입되었을 때 노영석 감독이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가 높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재주꾼'인 노영석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과 촬영, 미술, 편집은 물론 음악도 담당했다. 혁진이 처음 정선 땅에 발을 내딛고 계속 '걸을 때' 나오는 서정적인 기타곡들, 그리고 그가 버스에서 만난 엽기녀 '란희'가 그에게 들려주는 뽕짝리듬 편집의 우스꽝스러운 곡(이 곡은 엔딩 타이틀에서도 다시 한번 나온다) 역시 노영석 감독이 직접 작곡, 연주한 것이다. 감독 자신은 예산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적절한 스탭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직접 했다며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서 퀄리티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지만, 빡빡한 예산 때문에 음악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없어 음악을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기 일쑤인 독립영화치고 음악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립장편영화 쇼케이스에 참석한 노영석 감독.

영화에 자주 나오는 음주 씬들에서 나오는 수많은 대사들과 주사들 역시 매우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혁진의 친구인 기상 역의 육상엽은 연기를 했다기보다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를 캐릭터에 투영시켰다면서, 실제로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밝힌다. 음주씬에서의 수많은 애드립 역시 그대로 영화에 살았다고 한다.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했던 이들이 영화에서 크고 작은 역을 맡아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스크립터이면서 영화에서 작지 않은 비중의 란희 역을 맡은 이란희는 주인공 혁진 역을 맡은 송삼봉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 낮술>의 개봉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독립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개봉을 하고 관객을 만나는 것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한 이후로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영화계 안팎에서 입소문이 나고 화제를 모으면서 상업영화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고, 앞으로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될 예정이라 하니 앞으로 상영 기회가 아직은 열려 있다. 앞으로 '장르물'을 꼭 해보고 싶다는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 '독립영화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며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상업영화로든 다시 독립영화로든 그의 재능이 발휘된 또 다른 다른 작품을 머지 않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ps. 6월 30일 월요일 8:00pm, 인디스페이스

ps2. 프레시안무비에 올라간 글

2008/07/04 03:33 2008/07/04 03:3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 고전틱;;;한 포스터.

데뷔작인 <주검의 상자>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은 덕택에, 김기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양산도>는 이번 김기영 전작전에서 상영된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영화다. 년도 봐라, 무려 1955년이다. 전후 복구로 여전히 정신없었을 당시였을 텐데, 내용은 북한 어드메에 전설로 내려온다는 봉건사회 잔재와 같은 얘기다. 즉, 양반 계급 도련님이 계급적 압박을 이용한 방해를 하는 바람에 결국 비극적인 사랑이 파탄에 이르고야 만다는 젊은 남녀에 관한 멜러드라마다.

마을 최고의 사냥꾼인 수동(조용수)은 마을 최고의 미녀 옥란(김삼화)과 어릴 적부터 집안끼리 정혼한 사이다. 그런데 진사댁의 한량 아들인 무룡(박암)이 한양에서 돌아와 옥란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갈등이 벌어진다. 옥란의 어머니는 부자에 양반인 무룡이 보내온 비단에 혹하고, 무룡은 수동을 견제하고 못 살게 굴면서 옥란을 차지하려 애쓴다. 심지어 수동은 무룡에게 손가락이 잘리기까지 하는데, 옥란 아버지의 전폭적인 도움 하에 둘은 도망을 치지만 곧 무룡의 수하의 손에 붙잡히고 만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옥란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옥란은 무룡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하고, 수동은 결국 목을 매달고 만다.

분명 유성영화는 유성영화인데, 배우들 분장한 거나 연기하는 거나, 입과 대사가 거의 안 맞는 거 보면 무성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피리를 불다가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카메라 앵글과 컷의 연결도 상당히 어색하다. (인물의 시선과 숏과 컷이 어그러져 있다.) 게다가 옥란이가 별로 안 예뻐;;; 수동이도 늙어보여;;; 무룡이는 웬 40대같아;;;; 수동의 잘린 손가락이 막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도 예사다. (손가락 분명 잘렸다며, 다음 씬엔 멀쩡하게 붙어있다.) 화면은 (오래되어 낡은 탓에 더욱) 조잡해 보이고, '영화적인' 기법들은 아직 좀 어색해 보인다. <양산도>는 그러니까, 초기 김기영 영화를 확인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아직 어색은 해도 카메라가 이동한다거나 다양한 카메라 앵글의 다양한 숏이 들어가 있다거나, 컷을 적절히 나누고 잇고 하는 등 이미 고전기 영화 문법의 다양한 활용이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 이후 김기영의 전매특허라고 얘기되곤 하는, 매우 상징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소품과 컷도 등장한다.

영화의 엔딩은 수동 어머니에게서 목에 칼을 맞은 새색시 옥란이 수동의 무덤으로 기어가 죽은 수동과 사랑을 나누고 함께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라 한다. 불행히도 남아있는 필름에서는 옥란이 칼을 맞는 데에서부터 프레임이 많이 유실돼 퍽퍽 튀다가 무덤으로 기어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영화가 끝나버린다. 필름이 그만큼 소실된 것이다. 김기영 감독이 그토록 '멋지고 환상적인 장면'이라고 자랑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씬이라고 하는데, 이걸 결국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편으론 이런 식의 갑자기 판타지스러운 엔딩으로 끝을 맺어버리는 게 당시엔 꽤나 쇼킹했을 것 같기도 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집을 간다네...

옛 한국영화들을 보면 여성캐릭터는 결국 자기 주체성을 갖고 싶어도 남편 혹은 아버지 등 '남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아버지 살리겠다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는 옥란에게 수동은 매우 분노하지만, '효'가 그토록 강조되던 조선에서, 더욱이 집안의 남자들을 위해 언제든지 희생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던 여자/딸인 옥란이 그런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걸 21세기 소위 '현대적 여성'으로서 봐야 하는 괴로움은 좀, 크다. 수동 어머니는 수동이 장가 보낸다고 종으로 몸을 팔았다고 하고, 옥란이는 아버지를 위해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다니. 그걸 또, 한편에선 은근히 '부잣집에 시집간다'는 식으로 윤리적 판단을 하는 듯도 해서 이래저래 좀 마음이 불편. 뭐 시대적 한계려니...



ps. 5월 22일 일요일 오후 2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ps2. 옥이 역의 김삼화는 (안 예쁘긴 해도) 당시 남한 최고의 무용수였다고 한다. 어쩐지 동작이 좀 우아하더라니. 근데 오지혜 좀 닮지 않았나요?

2008/07/04 01:18 2008/07/04 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