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카의 별명은 '영국장미'였다. 유럽 출신 여배우들이 각광받던 당시 데보라 카의 소위 '영국적인' 특징은 기품있는 우아함 등으로 평가되기 마련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우아하다. 느끼한 양키 버트 랭커스터하고도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유약한 섬세남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는 살짝 야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남부 촌 출신의 건강한 말괄량이 아가씨 필이 나는 도나 리드가 확실히 잘 어울린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진주만 공습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그 평화롭고 여유로운, 전쟁 따위 설마 나겠어 싶어 룰루랄라거리던 휴양지 섬에서 제대로 뒷통수 따악 맞고 패닉에 빠지던 당시 분위기를 매우 잘 묘사해낸 영화다. 워낙 군바리 체질에 요령좋고 능력도 좋아 징집병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까지 올라갔지만 장교시험은 보고싶지 않은 일등상사 워든은 겉으로 보기엔 얼음공주 같지만 '놀 만큼 놀았다는' 소문이 도는 대위 마누라 캐런과 연애를 하고, 중사인지 상사인지의 친구 빽 믿고 나팔도 제대로 못 부는 주제에 1등 나팔수 자리를 빼앗아버린 놈에게 열받아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되기를 마다않고 부대를 옮겨버린 한 성깔하는 프루잇은 사교클럽 아가씨 로린, 혹은 알마와 연애를 한다. 그까짓 권투 안 하겠다고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찍혀서 왕따 당하고 괴롭힘 당해도 "남자는 자기 갈 길 가야죠"라고 읊조리는 프루잇. 저런 꼴통새끼 같으니, 투덜거리고 괴롭히긴 해도 은근 맘써주는 츤데레 워든. 그리고 그들의 여자들과 동료들, 그리고 돼먹지 못한 상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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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랭카스터는 상체에 비해 다리가 너무 얇지 말입니다. 영화사상 최고의 키스씬 중 하나.


영화가 끝나기 15분 전쯤인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8시 10분 전, 이들은 산 너머 저쪽 하늘에 잔뜩 뜬 폭격기들이 우다다다 폭탄을 쎄리붓는 데에 얼이 빠져 우왕좌왕한다. 장교도 자리를 비운 그때, 일등상사 워든은 부하들을 이끌고 반격를 하다가 죽고, 단 하나뿐이던 군대 내 동료를 죽게만든 영창 간수새끼를 찔러죽이고 탈영한 프루잇은 전쟁 났다니까 저도 군인이라며 부대로 복귀하다 자기 편 보초에게 총맞아 죽는다. 이런 개죽음이 있나. 그러나 그들의 청춘이 단지 '개죽음'이란 단어 하나로 멸시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도 사랑을 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좋은 걸 주고싶어 했고, 그녀와의 키스에 시궁창 속에서도 장밋빛 꿈을 꿨다.

언제나 전쟁영화는 전쟁터를 최상의 낭만의 장소로 색칠하긴 했고, 그렇게 젊은 청춘들을 유혹하는 한편 그렇게 그들의 희생을 위로했다. 때로는 심하게 거짓말을 했고, 때로는 심하게 겁을 주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헐리웃에서 한동안 제작되었던 일련의 '참전군인 위로영화'의 전통 안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 영화들이 갖기 마련인 어떤 특징들에선 살짝쿵 빗겨나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스코필드 막사는 그저 직장이 다만 군대였을 뿐인 별별 청춘들의 지지고 볶는 일상이 있던 곳, 즉 낭만적인 연인을 만나게 해주기도, 그 낭만을 먹구름으로 뒤덮어버리기도 한 곳이었다. 민망한 군대찬양 대사도 종종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프레드 진네만이 진정 하고 싶었던 건 다른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찬양은 눈가림이에요, 저는 그저 직업이 군인일 뿐인 청춘들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가 새삼 삼삼한 기분이 돼버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이런 것. 채 피기도 전에 져버린 모든 청춘들에게 애도와 명복을. 누군가에겐 단지 개죽음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녀에게 그의 생전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찬란한 빛이었기를. 2008 충무로영화제 공식상영작.



ps. 어릴 땐 예쁘고 섬세한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좋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 내 취향은 듬직하고 어깨 떡 벌어지고 팔 근육 지대로이신 버터 양키 버트 랭카스터. 다시 보니 클리프트 군은 왜 이리 찌질하신가효.

ps2. 이전에도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에서 쉰 살의 버트 랭카스터에게 반해서 "왕자님~" 이러며 정신 못 차리던 때가 있었지. <레오파드>를 찍을 당시 비스콘티 감독은 제작사의 강권에 "랭카스터같은 느끼한 양키 스타 따위~!!" 이러고 펄쩍 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용해서 처음엔 워낙 틱틱거렸는데, 랭카스터가 워낙 성실하게 연기를 하니 홀라당 반해서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다시 작업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랭카스터는 비스콘티의 새까만 후배였던 베르톨루치 감독의 <1900>에도 출연한다.

ps3. 사실 랭카스터나 클리프트나 데보라 카나 내게는 몇 세대 이전의 옛날옛적 배우라는 느낌인데, 로버트 드니로나 제라르 드파르듀와 같이 작업한 적도 있다 생각하면 또 신기한 거다...

ps4. Private인 프루잇을 굳이 '일병'으로 번역한 것은, 당시엔 갈매기를 하나 단 일병이 졸병이었고 그 밑엔 무등병이었기 때문에. 미 육군에 이병 계급이 새로 생기고 일병이 Private the First Class, 이병이 Private이 된 것은 60년대에 들어서다. (아마 68년이었나.) 갈매기 하나에 Private이었던 제임스 라이언이 이병이 아닌 일병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2008/08/22 21:56 2008/08/22 21:56
로드 The Road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아무래도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여파 덕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일부 작가에 대한 심각한 편향이 존재하던 국내에서 폴 오스터를 제외하면 현대 미국작가가 이토록 주목을 끈 적이 거의 없다.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던 코맥 맥카시의 작품 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소설이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된 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2006년작 [로드]가 출간됐다. 출간 직후부터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종합집계에서도 외국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덕에 책이 떴다고 말하기엔 작가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코맥 맥카시는 그저 '영화 덕을 본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에 영감을 준 뛰어난 작가'라 불리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드]가 단숨에 읽기에 결코 쉽지 않은 책인 건 사실이다.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 결국 중간에 책장을 덮고 말았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길을 걷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바닷가 어딘가를 향해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길을 걷는 이들은 숲에서 추위에 떨며 잠이 들고 몇 날 몇 일을 굶은 채, 혹은 과일 통조림 하나로 겨우 끼니를 떼운 채 여행을 계속한다. 책에서 묘사되는 그들의 주변 풍경 역시 온통 잿빛이다. 하늘도 강도 길도, 심지어 방금 내려 쌓인 눈도 잿빛. 물론 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오랫동안 먼지와 때를 뒤집어쓴 잿빛이고, 이들의 '떡진 머리'와 거의 목욕을 하지 못하는 몸 역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잿빛이다. 건물들은 버려져 있고 길은 폐허가 돼 있다. 곳곳에 역시 잿빛으로 변한 사람의 해골들이 늘어서 있다. 혹시나 다른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경계부터 하며 몸을 숨긴다. 아버지는 손에 권총을 단단히 쥔 채 아들을 다른 팔로 감싼다. 이 소설에서 색깔이 언급되는 장면은 부자가 어쩌다 코카콜라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 장면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거리는 이토록 황량하고 이들은 이토록 고통스럽게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아버지와 아들의 시점을 오가는 이 소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직설법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리고 부자간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종류가 됐건 대재앙이 지구를 휩쓸고 간 자리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빈 집에 남은 감춰진 통조림을 챙기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고있다. 문명이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이들은 문명의 흔적만을 뒤쫓고 추억할 뿐이다. 편안한 수면과 풍족한 식사마저 그저 과거의 추억이 돼 버린 세상.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오늘 이렇게 끈질기게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도, 동기도 사라진 세상.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죽이거나 도망치고 봐야 내가 죽지 않는다는 공포가 당연한 세상. 끊임없이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라 말하지만, 정작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우연히 마주친 어린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것을, 혹은 간난아이가 다른 어른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생존 기술'로 소년에게 가르쳐야 하는 세상.

남자의 아내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자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목적은 어린 아들이다. 그렇기에 만약 자신이, 혹은 아들이 죽게 될 상황을 대비해 둘이 함께 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총알을 권총에 남겨둔 상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는 소설 속 세상은 그저 '절망'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코맥 맥카시는 이런 절망의 풍경을 두 사람이 여정 중 겪게 되는 일들과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묵직한 말이었는지, 아니, 일상에서 우리가 이 무시무시한 '절망'이란 단어를 얼마나 남용하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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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제작중인 <로드>. 딱 내가 생각한 비주얼.

고작 두 사람이 길을 걷는 게 내용의 전부인데도,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긴장과 숨가쁜 호흡, 그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계속된다. 아마도 단문으로 툭툭 끊어지는 건조한 문장들 덕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눈앞에 그들의 모습이 당장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묘사가 생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고 모텐센 주연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생생함이 더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이 잿빛 세상 속에서 그래도 오늘의 삶을 끈질기게 계속하는 두 사람의 서로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낭비되는 말이 없는 지극히 간결한 토막 대화들 속에서, 우리는 부자관계를 넘어서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동지이자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절박하게 의지하고 있는지 새삼 확인한다. 코코아 한 잔을 상대에게 챙겨주는 사소한 행위가 이 소설 안에서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된다. 소설 속 세상은 다른 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권하거나, 상대를 위해 통조림의 과일 한 조각을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책의 광고가 강조하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의 정체는 다 읽고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다. 실제로 그 광고문구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가 '겨우...?'라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난데없이 뺨을 흐르는 이 눈물은 무엇이며,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을 먹먹하게, 눈을 뜨겁게 만드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 초라한 장면이 이토록 깊고 촉촉한 잔향을 남기는 이유는. 평소라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너무나 깊은 절망 끝에 비로소 찾아온 것이기 때문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시대에 새로운 걸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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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16:56 2008/08/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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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쓰릴 미>의 막이 올랐다.

피아노 연주자 한 명과 배우 두 명. 뮤지컬 <쓰릴 미>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 사람이 다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의 음악은 피아노주자 한 사람이 담당하고, 연쇄살인, 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로 가득한 이 공연의 연기는 단 두 배우가 책임진다. 인터미션 없이 한 시간 반 동안 한번에 몰아치는 공연이다. 그런데 이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무대 위의 연주자와 배우도, 객석의 관객들도 모두 넉다운된다.

뮤지컬 <쓰릴 미>는 원래 스티븐 돌기도프가 희곡, 작곡, 연출과 출연까지 도맡아 오프브로드웨이에 2003년에 초연을 올린 2인극이다. 1924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네이슨 F. 레오폴드 주니어와 리처드 알버트 로브의 실화를 각색한 것으로,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집안의 자제로서 15살에 대학에 진학할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던 당시 19살의 두 소년이 강도와 방화 등을 일삼다가 15살짜리 소년을 납치해 살인한 사건을 다룬다. 앞길이 창창한 유력한 집안의 범상치 않은 두 소년이 오로지 '재미'를 위해 살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체포된 뒤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가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이 작품은 극 중 '나'로 지칭되는 네이슨이 가석방 심의위원회에서 '그'로 지칭되는 리처드와의 관계를 고백하며 회고하는 액자식 구성을 이룬다. 작년에 처음 국내에 막을 올린 이 작품은 류정한 - 김무열 페어, 최재웅 - 이율 페어와 나중에 빠진 류정한의 빈자리를 메꾼 강필석까지 도합 5명이 번갈아 출연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이 나면서 막을 내릴 때까지 계속 매진 행렬을 이루었다. 그 성공의 신화에 힘입어 올해 다시 막을 올렸다. 류정한과 김무열이 자신의 역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페어를 이루지는 않았고, 대신 네이슨 역에 이창용과 김우형이, 리처드 역에 김동호가 가세했다. 류정한과 김무열이 출연하는 날의 공연은 1차, 2차에 걸쳐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이 됐다.

새로운 네이슨과 새로운 리처드에 대한 관심도 꽤 높은 편. 아무래도 작년 이 공연이 뮤지컬대상에 나란히 남자주연상(류정한)과 남자주연상(김무열) 후보를 내고 류정한이 수상을 했떤 만큼 작년의 네이슨과 리처드와 줄곧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올해 새로 가세한 배우들이 공연 초반에 그만큼 혹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두 배우 간 성량의 조화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자주 일었다. 심지어 새로운 리처드 김동호를 향해서는 기본적인 음정이 불안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러나 공연이 한참 진행된 지금, 이들에 대한 평가는 보다 다양해진 편이다. 작년 초연배우들의 공연이 눈에 익은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돌고 있지만, 그럼에도 올해의 <쓰릴 미> 역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회 공연이 매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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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을 열연하고 있는 김우형.


<쓰릴 미>가 이토록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단순히 소재의 파격성 때문만은 아니다. 작년 김달중 감독에서 올해 이동선 감독으로 연출자가 바뀌면서 과감한 애정씬들이 늘었지만(키스씬이 네 번이나 된다), 작년의 팬들은 오히려 늘어난 애정씬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두 사람의 사랑이 노골적으로 표현될수록 그 절절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극의 제목인 '쓰릴 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로지 '스릴'을 느끼기 위해 자행된 잔혹범죄 뒤에는, 당시 동성애를 죄악시했던 사회적 금기와 부르주아 특유의 억압 밑에서 비뚤어진 두 남자의 우정, 혹은 사랑이 있다. 이들이 그토록 '스릴'을 추구한 것은, 이들이 스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미성숙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고 영리했던 그들은 아직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일찍 사회에 나가고 성인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지만, 이것을 적절한 감성과 사회성 안에 소화시키지 못한다. 니체에게 열광했던 이들이 초인 사상을 "뛰어난 인간들은 살인쯤 해도 괜찮다"고 오독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어른의 지식과 아이의 감수성을 가진 불균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극은 두 남자를 사회적 금기와 억압의 피해자로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이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금지된 사랑'이라는 조건 하에 애정을 빌미삼아 상대를 착취하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사랑을 묶어두려는 두 남자 사이의 무시무시한 심리 게임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베일을 벗는 것은, 지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사랑보다 절실한 사랑이다. 이들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상대가 있기에 비로소 완전함을 느끼는 완벽한 한 짝이었다. 비록 그들이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치기어린 바보들이라 한들, 둘의 심리게임을 따라가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잔혹함 뒤의 쓸쓸하고 외로운 얼굴과 부지불식간 마주치게 되고, 결국 그들의 게임에 동참하면서 네이슨의 애절한 사랑의 갈구와 리처드의 미성숙한 열정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만다. 작년 팬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든 올해 처음 공연을 접한 사람들에게 <쓰릴 미>가 여전히 충격적이며 흡입력 강한 작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두 배우의 호흡과 케미스트리가 극 전체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공연이 월등하게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반복 관람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배우는 단 두 명뿐인데도 극 속의 시간은 무려 34년을 아우르고, 장소 변화가 많으며,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의 흐름이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무대극보다는 오히려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 더 익숙한 관객이라면 몇몇 미묘한 심리적 변화의 순간 '클로즈업'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지도 모른다. 곡들은 극의 성격에 맞게 어둡고 격렬한 편이지만 그만큼 절절한 서정성이 짙은 곡들이 다수다. 특히 주제가인 '쓰릴 미'는 섬세하고 호소력 넘치는 선율로 뇌리에 깊게 박히는 곡이며, 리처드가 아이를 유괴할 때 부르는 '로드스터'는 카리스마 넘치는 곡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10월 12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ps. 7월 16일 수요일 8:00pm,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김우형 X 김동호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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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지금은 김동호 음정이 좀 안정됐나? 저 날 공연보러 갔을 때 김동호의 그 불안한 음정은 정말 안습이었다.

ps4. 김우형 X 김무열, 혹은 이창용 X 김무열의 공연을 보고 싶은데, 인기 많은 김무열 군 표가 다 매진이야! <일지매>에서 깐죽대는 연기 보고 '그' 역을 하는 김무열이 무척 궁금하단 말이다...!

2008/08/15 08:02 2008/08/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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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물, 만주 웨스턴 활극, 무협, 코미디...

<다찌마와 리>는 한 편의 완결된 영화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장르에 관한 영화다. 필연적으로 메타-영화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 리>에서 성취한 것에 대해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오마쥬와 패러디가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들 역시 원 텍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원 텍스트로 삼고 있는 60년대 ~ 80년대 한국 및 한·홍(한국·홍콩) 합작 액션영화들은 DVD나 비디오 등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유통되고 있지도 못하고, TV에서 이른바 '땜빵'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던 것도 90년대 말 내지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끝났다. 과거와의 단절, 나아가 과거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은 근현대사 전체에 대해 현대인들이 갖는 무의식적인 욕망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영화사가 경험하는 과거와의 단절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특히 액션영화의 경우 우리가 홍콩에 기술을 전수해줬음에도 오히려 한동안 홍콩무협의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원류가 어딘지 밝히고 이를 끊임없이 현대의 화면에 불러내는 류승완 감독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는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부정하고 싶어했던 과거의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이것이 실은 멋진 것이라고 확인시켜 준다. 현대의 눈으로 봤을 때 더없이 촌스러워 보이는 것들조차,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웃으며 즐기고 이것을 뛰어넘으면 되는 거라 말해준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이런 노력이 그저 최근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가 타란티노 감독의 아류로 호명하기까지 한다는 것.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과거 액션스타들을 스크린에 다시 불러왔다고는 하지만, 그가 보다 본격적, 적극적으로 과거 한국 액션영화들의 '장면'들을 불러낸 것은 <짝패>이고, 홍콩 무협영화의 공식을 플롯으로 재현한 전작인 <짝패>는 타란티노 감독의 전작인 <킬빌> 직후에 나온 게 사실이다. 류감독이 일찌감치 만든 인터넷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 영화의 조잡함을 의도적으로 살린 지금의 장편영화 <다찌마와 리>는 분명 비슷한 형식 실험을 시도했던 <그라인드 하우스> 이후에 나왔다. 게다가 과거의 스타를 불러내고 과거영화의 플롯을 빌어오는 정도의 수준은 타란티노가 일찍이 <펄프픽션>에서부터 줄곧 해왔던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행적은, 그가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타란티노의 실험과 시도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아무리 따져봐도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와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분명 전혀 다른 별개의 영화들이지만, 타란티노 영화의 '영감'이 전방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 뿐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 역시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통해 <다찌마와 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방법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던 개별 영화의 일부 장면을 따는 패러디 수준이 아니라, 장르 자체의 속성과 코드를 재현한 화면, 혹은 키치를 즐기는 방식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류승완 감독이 고유하게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타란티노가 선수를 쳤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영화적 야심을 밀어부친 결과, 과거 한국액션영화 고유의 특징을 부활시키고 계승함으로써 이의 적자가 바로 자신임을 선언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화미학을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들의 이름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과거 '액션씬'을 가리키던 영화업계의 은어로부터 시작해 호금전의 여자 협객, 한국 액션영화에서 등장한 첫 여형사까지. 한국어 간판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리를 홍콩의 어드메라 우기던 것도 한홍 합작액션에서 자주 등장하던 화면인데, <다찌마와 리>에서도 로케이션에 관한 농담은 다양한 장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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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활극의 전통을 제대로 되살리며 무협영화의 액션틀을 가져왔다.

아무리 김지운 감독이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를 인용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만들었다 한들, 만주활극의 전통을 제대로 부활시킨 건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아니라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후반부다. 다소 개연성 떨어지는 플롯을 의도적으로 재현한 것을 비롯해 '촌스러운' 패션과 문어체 대사들, 조잡한 로케이션을 되살리면서 '과거 영화에 대한 거대한 농담'을 주축으로 삼으면서도, 액션씬만은 대단히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들어냈다. <서극의 칼>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후반부 만주벌판 씬은 <서극의 칼>이 그랬듯 <외팔이 검객>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류승완 감독이 계속해서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들어온 특유의 액션 리듬이 살아있다. 호금전 감독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액션이나 장철 감독의 짧게 끊어치는 날카로운 액션과는 구분되는, 정말로 몸과 몸이 부딪히는 느낌을 전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있는 액션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서구적인 신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동선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체구도 장점으로 살려내는 액션이다.

나아가 <다찌마와 리>는 '영화광의 영화'로서 그 위상을 보다 또렷이 한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보다는 과거 영화들의 전통을 적극 인용, 변형시키는 한편 이를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언제나 서구의 영화들만을 레퍼런스 목록에 올려놓으면서도 선배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 감추고자 했던 소위 '인텔리 출신' 감독들과 명확히 차별되는 이런 특징은, 굳이 누벨바그 감독들에 비유하자면 고다르보다는 트뤼포 쪽에 가깝다. 한국의 수많은 감독들이 모두들 스스로 고다르가 되고자 했을 때(그리고 대부분 실패했을 때) 류승완 감독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적극 만들기의 영역으로 전환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다찌마와 리>는 이것이 최고조로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승완 감독이 비록 한국영화사에 있어 획기적이고 새로운 화면을 '발명'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영화가 언제나 압도적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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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강, 박노식, 김승호, ... 를 부활시킨 임원희와 귀염둥이 만주 양아치 류승범.

여기서 다시 문제는 류승완 감독이 인용하고 끌어온 원 텍스트들이다. 영화제에서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도저히 확인하기가 힘든 그 영화들, 그나마도 몇 년 반짝 유행을 타다가 근래 들어 주춤해진 그 영화들은 여전히 일반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영상자료원을 찾지 않는 한 비디오로 확인해 보는 것도 요원한 일이 돼버렸다. 과거의 한국영화들이 활발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재발굴되고 담론에 오르내리는 때에라야 <다찌마와 리>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찌마와 리>에 대해 나오고 있는, 또한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계속해서 반쪽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ps. 8월 6일 수요일 오후 2시, 메가박스 코엑스, 기자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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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결국 헐리웃 제국의 안과 밖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한국이 헐리웃 변방이라 하여 곧장 힘없는 약소국이 되는 건 아니다.

ps4. 전술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주성치의 작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008/08/14 02:11 2008/08/1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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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짤 비율이 어설프다.

잘나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 여자가 분수에 차고 넘치는 남자를 좋아하다가 미끄러진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의 주변엔 오랫동안 그녀를 흠모하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한, 나름 진국인 남자가 있다. 약간의 오해와 꼬임 끝에 그들은 서로 진심을 확인하고, 새삼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고 행복하게 맺어진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이 흔한 공식을 한 치의 예외 없이 그대로 실행한다. 판에박힌 공식을 '잘' 구사하면 꽤 괜찮은 장르물이 되련만, 이 영화는 장편 극영화로서의 흐름이 못내 버겁다는 듯 툭툭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다. 웃음이 터져야 할 타이밍의 리듬도 어설프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 모든 단점을 단번에 상쇄시켜주는 존재가 있으니, 그건 바로 예지원이다.

신기 들린 슬랩스틱 코미디. 예지원의 코믹 연기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건 단순히 그것으로 인한 찰나의 웃음뿐이 아니라, 지지리 궁상밖에 안 남은 초라한 미혼의 30대 여자가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펼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뿐 아니라 전작인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도 그랬다. 그가 맡은 여주인공들은 워낙 자기 세계가 강해 남들 눈엔 살짝 맛이 간 여자로 보이곤 한다. 그러나 남들이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 물론 쪽팔린 순간에 그녀는 충분히 쪽팔려 한다. 누구나 평소에 겪는 어리버리함으로 인한 민망한 실수들, 그러나 연예인들은 절대로 겪을 것 같지 않는 그런 실수들을 예지원은 스크린 앞에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서 온몸을 허둥대다가, 순발력도 없어 그 상황을 제대로 모면도 못하고 망신은 망신대로 다 당한 뒤 나중에 혼자 가슴을 치며 민망해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예지원의 주인공들은 아무리 쪽팔린 순간이라도 그땐 그 나름의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 순간만 지나면 새카맣게 잊고 내일을 향해 나간다. 언제 민망한 일이 있었냐는 듯 뭐가 그리도 좋은지 샬랄라 팔랄라다. 그럴 수밖에. 그녀라면 능히 어제 저지른 실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줄 또다른 대형실수를 오늘 또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씩씩함은 실은 한번도 잘나본 적도 주목받아 본 적도 없는 여자의 처절한 자기방어다. 그렇기에 그녀가 영화에서 딱 한 번 마침내 울음을 터뜨릴 때, 그녀는 진심을 다해 울고, 이 눈물이 또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절절하게 에이게 만든다.

그녀의 캐릭터가 이토록 빈틈이 많아보이는 건 실제로는 많은 경우 남자 감독들이 그 여자를 그리는 방식이 어설퍼서이지만, 그 여자를 연기하는 예지원은 "저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설득력을 덜컥 부여해 버린다. 그러니 그녀가 아무리 계절과도 유행과도 안 맞는 공주옷을 입고 과장스러운 자아도취의 몸짓을 하든, 좋아하던 남자 앞에서 착각도 대단한 착각에 빠져 혼자 황홀한 표정을 짓든, 우리는 그녀를 보며 함부로 정신나갔다며 비웃지 못할 수밖에. 그녀를 향해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웬지 그녀에게 그냥 믿음이 생기고 연민을 가지면서 더없이 생생한 사랑스러움을 느껴버리는 것이다. 비록 이 영화에서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 때보다 캐릭터가 더 얄팍해지긴 했지만, 예지원이 그려내는 여주인공은 언제나 김선아가 그려낸 김삼순도 미쳐 도달하지 못했던 저 밑바닥의 처절함을 슬랩스틱 연기에 완벽하게 용해시켜 스크린에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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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과 탁재훈의 환상궁합.

스크린으로 진출한 탁재훈이 '배우'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이런 주책 여자 캐릭터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다. 적지 않은 수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지만, 탁재훈이 정말 빛을 발한 건 <내 생애 최악의 남자>와 함께 이번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다. 공통점은? <내 생애 최악의 남자>의 염정아도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예지원도 지지리 궁상 주책의 노처녀면서 남들이 뭐라든 자기 길을 꿋꿋이 가는 고집불통의 드센 여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두 영화 모두에서 탁재훈은 그녀들을 옆에서 충실히 보조해주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워낙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염정아가 그런 여주인공으로는 다소 안 어울렸기에 탁재훈과의 케미스트리도 살짝 엇박자가 났던 반면, 실제로는 무척 아름다움에도 스크린상에선 웬지 만만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착시'를 주는 예지원과는 찰떡 궁합을 자랑한다. 곁에 있으면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저 멀리 있는 스타는 아닌 소박한 옆집 오빠 내지 소탈한 동네 친구의 이미지를 탁재훈만큼 부담없이 활용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선남선녀들의 연애 얘기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낄낄거리며 놀려대기 딱 좋은 내 주변 친구의 아기자기하고 만만한 연애담이 된다. 단점투성이의 이 영화에서 이런 장점을 뽑아내 준 것은 분명 두 배우의 공이다. 탁재훈은 더이상 '스크린에 진출한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로서 평가받아야 하며, 예지원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녀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8월 14일 개봉.



ps. 8월 1일 금요일 4:30pm, CGV용산, 기자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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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4차원 개그'의 본좌인 예지원 언니, 부디 좋은 각본과 연출자를 만나시길.

2008/08/12 19:03 2008/08/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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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스타일의 영웅들, 주인공은 적룡.

<영웅본색>을 둘러싼 담론은 주로 장국영과 주윤발을 주인공으로 '홍콩누아르'의 특징을 서술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영웅본색>이 처음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가 주로 어필한 대상이 지금은 중, 장년층이 된 당시 10대와 20대들이었고 이들이 감정이입한 대상이 장국영과 주윤발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뒤이어 제작된 무수한 홍콩누아르는 홍콩 무협영화와 함께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확실히 <영웅본색>이 갖는 위치는 각별하다. '홍콩누아르'라는 장르 신조어가 생긴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영웅본색>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오우삼을 만든 시작점에 있는 영화이자, 한때 홍콩누아르가 홍콩과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심지어 미국의 일부 감독들, 대표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한 대표주자가 바로 <영웅본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봉 당시의 북경어 더빙 버전이 아닌 본래의 광둥어 버전으로 재개봉되는 <영웅본색>을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노라니, 이제껏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소비되었던 방향과 실제 영화에 약간의 괴리가 있어 보인다. 먼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장국영이나 주윤발보다 적룡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둘째, 이 영화는 홍콩 누아르의 뿌리가 홍콩 무협영화임을 밝히며, 과거 홍콩영화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홍콩무협영화에 애정이 가득담긴 고별인사를 하는 한편 새롭고 젊은 영화에 주도권을 이양해줄 것을 선언하는 과도기 단계의 젊은 영화(였)다. 과연 <영웅본색> 이후로 홍콩영화는 과거의 무협영화와는 차별화된, <소오강호>를 위시한 신 무협과 홍콩 누아르가 양분하게 된다. <영웅본색>은 그렇게 홍콩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 중 하나였다. 한편으로 <영웅본색>은 '누아르'라는 새로운 외피 안에 무협영화의 본질을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무협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전근대 시대에 있어 강호는 (봉건적인) 국가 체제와 별개로 존재하며 나름의 법칙과 윤리에 의해 유지되는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 합법적 국가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공간은 범죄의 공간으로 여겨질 뿐이다. 즉 강호는 더 이상 국가와 별도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 적룡이 연기하는 송자호는 외견상 범죄조직의 수장이지만, 일반적인 조직 폭력 영화들에서 그려지는 보스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현대적인 조폭 조직의 보스가 아니라, 사제들을 거느리고 보살피는 무협영화 시대의 큰사형과 같은 존재다. 말하자면 송자호(적룡)와 마크(주윤발)는 강호가 불법시되는 근대국가에 남은 마지막 강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조직이 바로 '위폐 제조' 조직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운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 단위가 화폐인 만큼, 그가 위폐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존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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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 : 나도 잘나가던 스타였어! / 이자웅 :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적룡이 누구인가? 쇼브라더스 영화사가 무협영화들을 양산하던 시절 강대위, 라열, 왕우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실제 무술 고수이기도 했으며, 호방한 말타기와 힘이 넘치면서도 우아한 봉술과 검술(이는 주로 남방계 무술의 특징이기도 하다)을 선보였던 무협영화 최고의 스타 중 하나가 아닌가. 오우삼 감독이 적룡을 불러들여 송자호의 역할을 맡긴 것은, 서극 감독으로 대표되는 신 무협이 아닌 홍콩누아르야말로 기존 홍콩 무협영화의 적자임을 선언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송자호가 법질서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경찰'인 동생 송자걸과 갈등을 빚는 것은 결국 전근대 시대의 유습이 근대사회에서 범죄로 여겨지는 상황에서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송자호 역시 이 근대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와 조직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송자호는 복역 후 새 삶을 살고자 택시회사의 일개 택시기사, 즉 노동자로 신분을 바꾸게 된다. (그와 달리 마크는 끝까지 법질서적 가치가 아닌 강호의 정의관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자리를 꿰찬 이자성으로부터 범죄에 가담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말하자면 이자성은 구시대 질서의 상징과도 같은 송자호의 '승인'과 정식적인 '승계'의 절차를 밟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자성은 송자호와 달리 근대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전형적인 범죄조직의 두목으로, 돈을 위해서라면 신의나 가족 등은 손쉽게 내팽개쳐버릴 수 있고,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삼는다. 송자호의 조직이 위폐 제조 하나에 매진했던 것과 달리 이자성은 자신의 조직을 돈이 되는 각종 범죄로 확장시키는데, 근대 법치국가적 기준이 아닌 강호의 정의관으로 보더라도 악행이라 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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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가 아무리 불법화 됐어도 강호의 의리는 소중한 거여! 계승해야 헌다고!

그렇기에 영화의 중반 이후는 한편으로는 송자호가 경찰인 송자걸과의 화해로 향하는 긴 여정이자, 기업형 범죄조직이 돼버린 이자성의 조직과의 대결이 된다. 이는 결국 전근대적 무협영화의 영웅이 근대의 자본주의 / 법치국가 체제의 품에 안기기 위한 통과의례가 된다. <영웅본색> 이후 홍콩누아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삼합회는 원래 중국에서 전근대 시대라 할 수 있는 청 말에 만들어진 비밀결사의 의적단체로, 손문을 돕기도 했으나 근대국가의 확립 이후 결국 범죄조직으로 타락하고 만다. 이자성의 조직에서 삼합회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 그리고 마지막 강호인이라 할 수 있는 송자호와 마크가 이자성과 대결을 펼치고 결국 죽거나 경찰의 손에 체포되는 결말은, 한 시대가 마감해 가는 것에 대한 쓸쓸한 고별인사를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마크가 송자걸에게 신의와 의리를 그토록 강조하고 송자걸이 이에 설득되는 것은, 근대 사회가 잊거나 부정하기 쉬운, 그러나 꼭 구습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옛 가치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설파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웅본색>은 전근대적 가치가 근대의 옷을 입고 새로 계승되는 과정을 다룸과 동시에 결국 (옛) 무협영화가 누아르로 전승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기념비적인 영화인 셈이다.

ps. 7월 22일 화요일 2시, 허리우드 극장, 기자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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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22:56 2008/08/06 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