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올해의 상영작이 지난 월요일 발표(새 창으로 열기)됐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나는 인디포럼의 신작전 섹션에서 총 505편의 출품작 중 저 상영작 55편을 선정하는 프로그래머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5월말 열리는 인디포럼을 위해 앞으로도 이런저런 것들, 예컨대 카탈로그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노트 쓰기라던가 시간표 짜기 같은 일정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가장 크고 어려운 산은 일단 넘은 셈이다.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장, 단편 포함해 280편 가량의 영화를 봤다. 지난 한 달 간 글이 거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막판에는 회사에서 일은 때려치운 채 낮에도 영화를 봤고, 밤에는 진한 커피와 박카스와 비타민씨를 먹어가며 거의 매일 밤을 새며 영화를 봤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특히 내 일정 때문에 프로그램팀의 다른 멤버들을 힘들게도 했지만, 사실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나 몇몇 작품들은 보면서 엉엉 울다가 웃다가, 이 좋은 작품들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보고 발굴하는 데에 내가 일조를 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괜히 내가 다 뿌듯했고, 몇몇 작품들은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정도다. 단편이긴 해도 이건 그대로 극장에 개봉해도 되겠다 싶은 작품도 있었고, 다소 서툴지만 열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도 많았다. 찬찬히 그와 그녀의 슬픔과 절망을 들여다보는 작품들, 그리고 어떻게든 어깨를 토닥토닥하고 싶은 감독의 진심도 느껴졌다. 잘찍고 못찍고를 떠나 모든 작품들이 참 소중하고 예뻤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었던 건 영화를 줄기장창 보는 게 아니라, 50여 편을 골라내는 거였다. 아깝게 탈락한 작품들이 너무 많다. 영화제 기간만 더 길고 상영관이 더 있었다면 얼마든지 틀었을 작품들. 하지만 인디포럼에선 상영이 안 됐더라도, 다른 영화제에서나마 상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 반해버린 데다, 보는 내내 가슴을 부여잡으며 엉엉 울었던 영화가 있다.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너무나 많았지만, 280여 편 중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그 작품은 결국 올해 인디포럼의 폐막작이 됐다. (올해 인권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다.) 워낙 이 영화를 강력하게 지지했던 터라 폐막작에 대한 소개글을 내가 쓰게 됐는데,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는데도 여전히 눈물이 펑펑 솟는다. 특히 맨 마지막에 박힌, '고 이근재 님께...'라는 자막을 보고선 더 그러하다.

수많은 죽음들이 너무 쉽게 잊혀진다. 그렇게 잊혀진 수많은 죽음 중 하나를, 이 영화가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그걸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새삼, 영화기자가 되기를 너무 잘했다, 생각한다.

올해 인디포럼은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열린다. 홈페이지는 여기(새 창으로 열기)다.

2009/04/24 02:04 2009/04/24 02:04

한 인터뷰 대상을 10년, 20년 이상 지켜보며 이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응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최근 들어와 서브장르가 세분화, 다양화하고는 있지만,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주로 참담한 현실을 폭로하고 목소리를 거세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체로 하나의 작품이 급박한 시간 안에 만들어져 공개되고, 그 안에 담기는 시간도 몇 개월에서 길어봤자 2, 3년에 걸친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86년부터 2008년까지 22년간 한 일가를 추적하고 관찰한 결과물인 <사당동 더하기 22>의 존재는 놀랍기만 하다.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가 애초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찍은 게 아니라 학술연구의 기록 자료가 쌓이면서 나중에 영화화된 것이라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위안부 출신의 송신도 할머니와 그녀를 지지하는 연대모임의 투쟁을 담은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10년의 세월을 담을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당동 더하기 22

서울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면서 당시 최대의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은 86년에서 88년에 걸쳐 무자비한 철거를 당한다. 이곳에 살고 있던 이들 중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구,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정금선 씨 일가뿐이었다. 현장연구원 한 명이 정할머니 일가와 같은 집에 세들어 8개월을 살면서, 현장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조은 교수와 일행은 이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98년부터는 방송 카메라를 이용해 이들과의 만남을 동영상으로 담게 된다. 그 22년간 촬영기사만 10명이 바뀌었으며, 정할머니의 어린 꼬마 손주들은 이제 30대 초중반의 장년이 됐다. 아픈 몸을 이끌고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로 생계비를 보탰던 정할머니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큰손주 영주 씨는 최근 필리핀 여성과 결혼했으며 둘째인 손녀 은주 씨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막내 덕주 씨는 방황과 일탈의 기간을 거쳐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장년이 된 정할머니의 손주들의 가난은 여전하다는 것.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살 만하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수놓는 것도 영주 씨가 드디어 아빠가 되는 순간이다. 온 가족이 작은 생명을 둘러싸고 앉아 만면에 행복의 미소를 띈 채 새로운 작은 생명에 경이의 축복을 보낸다.

도시의 그늘에서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그 가운데에서도 기쁨과 희망의 순간을 누리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사회는 빈곤을 방치하고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더욱 심각한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오늘도 서울 곳곳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이뤄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으리으리한 빌딩과 아파트가 솟아나고 분수가 설치되고 공원이 생기지만, 그곳에서 원래 살던 이들은 밖으로, 밖으로 내몰린 채 '이주'와 '이산'의 역사를 반복한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과 연변, 필리핀 출신의 가난한 여성들은 이곳을 '좋은 곳(a nice place,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이라 부르며 몰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몇몇은 운좋게 뿌리를 내리기도 하지만, 다수는 표류를 거듭하다 더 나쁜 상태로 내몰린다. 그리고 이 가운데 빈곤은 세습되고 재생산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종종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 잊혀지기 일쑤다. 혹은 가장 극적이고 나쁜 사례들만 미디어에 포획된 가운데 어정쩡하게 지워져 버리거나, 더이상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동정과 자선의 대상으로 묶여버리곤 한다.

<사당동 더하기 22>는 굳이 감독이 큰 목소리를 내어 강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거나 굳이 외면해 버렸던 우리 안의 어떤 삶을 조근조근 펼쳐내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말미에 붙는 자막대로, 이 영화는 한 가족의 22년을 다루기는 하지만 단지 한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차라리 이 영화는 우리가 발딛고 선 땅의 이면을 들추며 사회가 광범위하게 지워버렸던 존재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 중 하나이다. 이번 여성영화제의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던 작품으로, 이미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끝났지만 다른 다양한 영화제들을 통해 계속해서 소개되고 상영되어야만 하는 소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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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영화제(WFFIS2009) 상영작, 4/14 20:30 깜짝상영작

2009/04/16 00:05 2009/04/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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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금요일 저녁에 번개를 치면 과연 얼마나 모이려나요. 이곳 Cinema Blues 드나드시는 분들, 제 개인 블로그 드나드시는 분들, 함 모이죠.

그날 국립오페라합창단 + 기륭전자 분회 등 비정규 투쟁장 공동 촛불음악제가 열립니다. 7시 종로 보신각 앞. 참, 가깝고 가기 쉽죠~잉? 음악도 듣고 투쟁구호도 함께 외치다가, 근처 술집으로 이동해 맥주나 한 잔 합시다. 올 수 있는 사람들 댓글 달아줘요. 전 요즘 급 바쁜 일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인기리에 프레시안에 영화칼럼을 연재하고 계신 이택광 교수님과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라는 책을 내고 인기 책 저자로 등극한 한윤형 씨가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꼬셔볼 예정입니다. 그러고보니 아직 말도 못 꺼냈네. 윤형 씨, 올 거죠? 이택광 선생님께는 며칠 전 얼핏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 인기 캡숑 짱 저자인 쟁가님도 웬만하면 오시도록 꼬셔보겠습니다. (장담은 못 함.)

얼굴도 잘 몰라 부끄러워 못 올 거 같다는 분들. 초면이면 뭐 어때요. 제가 슈퍼울트라캡숑 빅 스마일을 만면에 띄고 뜨거운 환대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접선을 하느냐... 요건 오늘 내일 고민 좀 해보죠. 아이디어 내셔도 좋구요. 뭐 다 같이 "비정규직 좀 철폐하라능?" 뭐 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다던가... 초에다 빨간색 띠를 두른다던가... 음악회에만 왔다가 가셔도 좋아요. 사실 이 번개의 진짜 목적은 음악회 참석...

2009/04/15 20:15 2009/04/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