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단독인터뷰의 대상은 신동일 감독이었지만, 실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가 개봉할 당시 김응수 감독이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될 뻔했다. 인터뷰 때문에 김응수 감독을 만나러 가던 길에 자그마한 소동을 겪었고, 그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가 나중에야 다시 만났다. 사람 만나는 것도, 인터뷰란 작업 자체도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던 당시, 언론시사로 본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 시사가 끝난 뒤 몇 명 남지 않은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했었고,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아 비로소 인터뷰라는 걸 해볼 욕심이 생겼다. 영화를 이미 봤음에도, 영화사로부터 스크리너를 받아 다시 한 번 꼼꼼이 보며 인터뷰 질문들을 정리했던 게 기억난다.

기사가 나간 뒤, '길고 재미없다'고 데스크에 또 혼이 났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줄이고 잘라낸 것인데. 하지만 그 이상 그의 말을 잘라내고 싶지 않았다. 감독이 자신의 의지를 매우 또렷하게 영화에 반영했다면, 그리고 그 의지를 인터뷰를 하러 갔다면, 되도록 그의 말을 충실히 싣는 게 좋지 않은가. 많이 배웠던 인터뷰였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싶고 지향하는 인터뷰란 게, 결국은 이런 식인 것 같다. 일간지 포맷에는 다소 맞지 않는, 인터넷 매체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길고 지루한. 이 기사는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실렸던 것이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기존의 추모 다큐멘터리의 형식 대신 인터뷰만으로 일관하는, 형식의 파괴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죽고 2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치열한 노력을 카메라에 담으며 '망각에 대한 투쟁'을 펼친 김응수 감독을 프레시안이 만났다.

-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영화를 제작했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기존에 역사를 바라보며 추모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다못해 영정이나 추모식 사진 같은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내 의도대로 봐주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를 기억하고 망각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게 이 영화의 주가 되는데 사실 그런 식의 구체적인 비주얼을 삽입해 버리면 힘이 빠지지 않는가. 투쟁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겨우 저걸 기억하려고 힘들게 저럴까 싶을 거다. 기억이 어떤 식으로 남아있든, 단편적이든 사실과 조금 다르든 시점이 어긋나든,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망각 속에서 기억 속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걸 다룬 영화니까. 전형적인 추모 다큐멘터리처럼 몇월 몇일에 태어나 어디에서 살았고 학교는 어땠으며... 이런 식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고 힘이다.

 - 사실 그런 식으로 구성하면 김세진, 이재호 씨가 영웅으로 신비화되긴 한다.

그것도 우려가 됐다. 영화에서 나는 '열사'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았고, '분신' 대신 그냥 '죽음'이라고만 표현했다. 각자가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고 정리하는 거지 한 집단이 의미를 규정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강요해선 안 된다. 그들은 물론 엄청난 일을 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와 함께 살던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여자친구도 있고 데이트도 했고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 얘기할 때 나는 그들을 세진이 형, 재호 형이라고 호칭한다. 그런 삶의 호흡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는 왜 불가능할까, 의문이기도 했고.

추모비 뒤에 고은 시인의 추모시가 있다. 아주 시적인 표현들인데 난 그것도 보기가 힘들고 부담스럽다. 그거야말로 한순간의 느낌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상화시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예전에 한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그러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하더라. 안에서 서로 간 싸움도 생길 거고 밖에선 또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기 쉽다고. 우리의 마음이 어떻고의 차원이 아니라, 이게 사회의 역관계 속에 있고 현재진행형인 만큼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과거와의 투쟁 아닌가. 대략적으로 역사가 정리가 되지 않고 여전히 혼란한 상태여서 그렇다.

- 20대들은 주로 낯설고 불편하다고 반응하는 듯하다.

낯설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불편하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반응 같다. 편하게 볼 영화라면 박물관에서 흔히 전시물 틀어놓은 거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다. 그저 수동적으로 별 고민 없이 그냥 보고 받아들이고 곧 잊어버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서적 작용이 있었다면 그건 좋은 거지. 지난번에 이 영화를 봤다는 어떤 20대 여성은 그냥 멍했다고 반응을 보내왔더라. 20대인 자신에게 역사는 뭔지 과거는 뭔지, 선배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멍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런 반응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액션이 있다는 거니까.

- 영화의 총예산은 어떻게 되나?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5천 5백만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받은 지원금 1천 4백만원, 해서 총 7천만원 정도로 찍었다. 기획서에서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지 자세히 밝혔는데, 김세진 이재호가 죽었을 때만도 반미는 사형을 각오하고서 외치는 거였지만 이제는 국가의 단체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느꼈다.

- 총 제작에 걸린 시간은?

1년 6개월이다. 제작 의뢰를 받고 고민한 기간만 4, 5개월 된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어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다. 기존의 80년대를 다룬 추모 다큐멘터리 형태로 가는 건 내가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기록물이 전혀 없어서 가능하지도 않았다. 80년대 전반에 관한 기록은 있어도 그들의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하다 보니 다른 다큐멘터리를 보면 공부를 했는데, 유태인 학살을 다룬 <쇼아>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쇼아>를 보면서 증언과 인터뷰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이 그 형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쇼아>를 보면 가스실이나 수용소에 대한 공포가 직접 그 건물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드러난다. 관객에게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그 이미지를 스스로 머릿속에 쌓아올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건의 경우 3일 내내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그 과정 모두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 누구는 한 시간 동안 만났고 누구는 직후에 봤고... 이걸 조합해 보자 생각했다. 사람마다 그들을 목격하거나 함께한 시간과 공간은 다 다르지만 그걸 모으다 보면 맞춰지겠지 생각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던 건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윤곽을 잡아내더란 점이다. 3일의 기간 동안 누구는 어디에 앉아있고 누구는 옥상에 올라가고, 일관적인 흐름이 있는 그림이 잡혔다. 그것만으로 성공했다 생각했다. 형상을 그려냈으니까. 그렇다면 굳이 사진이 없더라도 이것으로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찍는 과정에서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못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누가 그걸 다시 대면하고 싶겠는가. 섭외가 됐다 해도 막상 찍으려고 하니 시간을 맞추는 것도 어렵더라. 모두들 각자 생활인이다 보니 일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주말마다 개인적인 사정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촬영을 드문드문 하느라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도 공들여서 했다.

김응수 감독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담아야 하며, 그 진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제공 _ KT&G 상상마당)

- 인터뷰이 중에 이정승 씨는 이전에 한겨레21에도 증언을 하신 적이 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이전에 공식적인 증언을 했던 사람은 이정승 선배뿐인 것 같다. 인문대 학생회장이라는 공식적 활동을 했던 사람이고 김세진 형과 친구처럼 지낸 사이니까. 도의적으로 친구의 기억을 위해 자신이 안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 싣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여자친구 얘기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 여자친구를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영화가 긴 기간에 걸쳐 들쭉날쭉하면 내가 감당을 못 하니까, 결국 3일간 팩트 중심의 이야기로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증언을 하신 분 중 녹취를 하신 분은 왜 목소리만 제공하신 건가? 얼굴 공개를 거부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원래는 인터뷰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자료 수집 와중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년필과 안경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듣고 있다가 자신이 만년필과 안경이 챙겼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알고 보니 그가 분신 때 옥상에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인터뷰 대상으로 결정했던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얼굴을 보여주려고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가장 적당한 건 녹취구나 판단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녹취를 땄다. 녹취를 듣고 보니 상황이 얼추 아귀도 맞고. 다만 그 사람은 용우한테 줬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재식에게 받았다고 하고, 그 사이에 간격이 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 사람이 용우에게 주고 용우가 재식에게 준 것 같다.

어쨌든 전날 의대(연건동 서울대 의대)가지 갔다가 학교(신림동 본교)에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신림사거리에 가서, 옥상 밑에 있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고 안경과 만년필을 주고... 3일의 사건을 하나로 관통하는 인물이다. 옥상에 올라간 사람은 그 사람 하나니까, 그 사람의 녹취를 영화 전체의 중심으로 놓고 다른 인터뷰들을 맥락이 비슷한 위치에 배치했다. 예를 들면 여자애들이 울고 있는데 사회학과 아이였던 것 같다는 증언 뒤에 여자의 인터뷰를 넣었고. 꼭 그 사람은 아니지만 대략의 연관성을 가지도록 구성을 했다.

- 인터뷰에서 굳이 정면샷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카메라가 바라보는 관객이고 세상이라 한다면, 인터뷰이들이 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들은 인터뷰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눈을 보지 않은 채 그냥 옆에서 찍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일부러 카메라를 완전 정면으로 향하도록 했다. 인터뷰어인 나와 그들이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자, 그들과 관객, 그들과 세상이 서로 정면 대면하는 것이다. 그럴 때 관객에게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 그 얼굴이 말해주는 것들, 이런 걸 찍기를 원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인터뷰가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 얘기가 진행될수록 카메라가 인터뷰이에게 접근하여 얼굴 클로즈업으로 간다.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인가?

그렇다. 설정한 것이다. 찍기 전에 대강 이런 얘기를 이런 흐름으로 갈 것이라고 의논을 했고,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이를 숙지하고 있었다. 이건 사실 '감'이다. 이런 얘기 즈음에서 앞으로 가고, 다시 앞으로 가고. 물론 편집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계속 밀착해 들어가는 거다.

- 그런데 이정승 씨 인터뷰 때만 유일하게 카메라가 픽스된 채 이동이 없다.

그건 의도라기보다는 인터뷰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정신없이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서인데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이정승 씨가 얘기한 부분이 일종의 클라이막스인데, 오히려 그 부분이 객관적으로 찍힌 것 같다. 카메라맨이 놓친 것이거나 편집에서 잘린 걸 수도 있겠다.

- 이재호 아버님의 인터뷰가 끝난 후 갑자기 크레딧이 삽입되면서 이를 계기로 영화가 둘로 나뉘는 느낌이다.

아버님이 나오고 비오는 대문이 보이는 것이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자막을 넣었다. 감정을 기대하지 말라, 당신이 감동한다거나 슬퍼한다고 해서 이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라는 게 내 의도니까. 이 영화가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몰입시켜서 눈물을 짜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영화라는 걸 상기시켜 주면서 분위기를 깨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2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영화를 딱히 2부로 나눈 건 아니지만 그 뒤부터 영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 않는가. 공간도 하늘이나 바다로 가버린달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았다.

- 서울대 내에서의 인터뷰가 이어지다가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 중간자막으로 구분이 되는 건가?

그렇다. 계속 학교 내부에서 찍은 후 아버님을 찍고 아버님 뒷모습이 나온 뒤 대문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거다. 계속 안에 있다가 바깥을 향해 나가는 느낌인 거지. 그래서 변산으로 간 거고. 다큐멘터리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외부 공간을 선택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이다. 대개는 그냥 일반 삶 속에서 찍지. 이건 꽤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뭔가 구름 속에서 형상을 찾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 같기도 하고. 바다도 쨍한 바다가 아니라 안개가 낀 것 같이 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뒤로 섬도 보이고 등대도 있고... 게다가 어쩐지 물에 그렇게 집착이 가더라. 비도 그렇고. 물로 뜨거운 걸 꺼주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하늘이 주는 허허롭고 공허한 허공의 이미지, 그리고 뜨거운 걸 꺼야 할 것 같은 물의 느낌 같은 걸 살리고 싶었다. 그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인 거고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나 의미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상징을 찾더라.

- 폐쇄적인 상아탑의 공간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맞는 느낌일 수 있는데, 그건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문제인 것같다. 내가 나름 설정한 마음의 흐름이 있다고 해서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보라고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당신처럼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물의 이미지가 불의 이미지와 부딪히면서 강렬한 걸 느꼈다고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멍하니 보면서 구체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파도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 나 역시 마지막 파도소리를 총성인 듯 들었다. 의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연상을 하게 하는 건 사운드든 공간이든 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상은 각자 자기 경험 속에서 자기 주관성과 만나는 것이다. 대체로 20대들은 당신처럼 느끼지 않는다. 안개 속의 풍경처럼 잘 모르겠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파도소리는 총소리보다는 물이 딱딱한 바위를 부서져라 치면서 깨려는 듯한 느낌을 의도한 거다. 사운드 믹싱을 하는 엔지니어에게도 무조건 세게 넣어달라고 했다.

- 마지막으로 감독이 인터뷰이가 되는데,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굳이 앞으로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망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내 투쟁을 시키고 있으면서 정작 나는 그들 앞에서 심문관으로 서 있다.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심문관 역할을 하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당해야 하는가? 그건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의 문제이기도 한 거다. 나도 같이 당해야 한다. 내 인터뷰 장면 때문에 다른 인터뷰이들도 다 수긍을 하고 영화가 끝났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들 나중에 자기 거는 빼달라고 했을 거다. 할 때야 큰 생각 없이 하는데 찍힌 거 보면 쑥스러울 테니까. 그런데 내 인터뷰 장면을 보고 말들이 없더라고. 그래서 영화가 정리가 된 거다.

- 영화라는 게 감독의 것인 것만큼 그 목소리를 감독의 시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아니, 내가 통합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심문관의 자격이 있는가? 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 3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이 증언한 인터뷰에서만 짐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다가 나중에 군대에 끌려간 다른 사람 얘기가 끼어든다.

그것도 3일에 관련된 얘기다. 김세진, 이재호가 주도한 의대 점거농성 투쟁과 관련된 얘기니까. 오히려 그 전에 3월 18일 반전반핵 평화투위가 뜨던 날 이재호를 만난 얘기, 그리고 학생회비 걷어서 김세진 선배를 찾아간 얘기가 3일과 관련없는 얘기이다. 이건 일부러 넣었다. 두 사람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이 너무 없기에 형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난 두 사람을 원래 알았던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이후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기억이 난 거다. 자연대 학생회실에 갔다가 김세진을 만났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도 이상하게는 느꼈다.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라고? 머리도 길고 미소년 타입에 예쁘게 생긴 데다 딱 부잣집 아들 티가 났다. 이재호 선배는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게 기억난다. 그땐 반미 얘기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얘기였으니까. 난 주체가 아니었으니 그런 절대절명의 기분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면 그 날 시위도 좀 달랐다. 예상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전반핵 외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에너지가 달랐고 목소리도 똘똘 뭉쳐 있었으며 불안과 함성 같은 게 다른 때와 차원이 달랐다. 그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구호 자체가, 참여 자체가 공포스러웠기에 집회도 오래 할 수 없었는데, 도서관 통로 지나갈 때 구호 때문에 통로가 막 울렸던 것도 기억나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사형을 각오하고 외친 반미 구호였으니 이 중에 누구는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게 기억날 정도다.

- 오늘날에 외치는 반미 구호는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를까?

그때 문제제기가 됐기에 오늘날 우리가 미국이 옳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평화협정 문제도 초보적이긴 하지만 얘기가 오갔고. 그때는 그런 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휴전협정의 주체가 미국과 북한인데 주체가 빠지면 누가 얘길 하나? 논의 주체에 3자, 미국이 있다는 게 그 사건으로 분명해진 거지. 남한-북한, 북한-미국, 남한-미국 간 얘기가 따로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아직도 미국과의 관계 문제가 북한 문제가 항상 가운데에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걸 영화에서 얘기할 순 없었고... 모든 문제가 같이 풀려야겠지.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기타 등등. 북한 문제가 풀려야 우리 문제도 풀리는 것 아닌가.

- <과거는 낯선 나라다>의 가치에 대해 특히 영화미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자평하는가?

인터뷰라는 건 단순히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사람의 현재의 존재 자체를 찍는 것이다. 얼굴에 드러나는 현재의 상태,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까지 찍어야 인터뷰의 힘이 발휘된다. 이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는데, 이건 이제까지의 인터뷰가 잘못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힘에 대해 하나의 지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80년대에는 폭로나 고발이 다큐메터리가 가진 힘으로 여겨졌다. 탄압의 시대였으니까. 90년대는 주로 회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게 너무 많아졌고 사람들도 많이 지쳐버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한번 얘기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얼마나 많았나? 그렇다면 2000년대엔 어떻게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할 것인가? 현재와 과거를 결합시키고 현재 속으로 과거를 불러와야 한다. 과거가 저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공기 안에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제기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역사를 다루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더 이상 회고하지 말고 신비화하지도 말자는 거다. 우리의 현재에 과거가 어떻게 남아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듬어 가자고 문제제기를 한 게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큰 의의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 물론 이것은 내 의도이기도 하다.

- 이재호 아버님의 장면에서, 찍을 때 대답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대답을 못 하셨던 장면을 넣은 건 다큐멘터리의 윤리성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연출자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조작한 것은 아닌가?

나는 진실의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이미 학습화된, 준비해놓은 대답을 하셨고 그건 진실의 대답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계시고 아들이 죽었으니 이렇게 얘기해야 부모의 도리겠지 싶은 것들, 아들 친구가 왔는데 뭐라도 대접해줘야겠다는 마음, 동네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 같은 걸 고려해 생각해놓은 답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할 얘기가 없으면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찍었다. 조감독에게도 어떤 게 진실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조감독 역시 대답을 못 하셨을 때가 진실이라고 하더라. 사실 예민한 문제가 아닌가? 아들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보다는 그저 다들 행복하고 잘 살기 바란다는 예의상의 말씀을 하시기 마련이다. 말하고 행동하는 걸 그대로 찍는 건 사실을 찍는 거지만,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아닌 것들은 들어보면 생명력이 없기 마련이다. 이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찍는 거라 생각한다.

- 관객은 그 장면에서 강한 정서적 울림을 받게 된다. 장면을 두고 선택을 한다는 건 감정의 조작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는 내 선택이고,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다 선택의 영역이다. 한 시간 인터뷰해서 모든 걸 다 집어넣을 수 없으며, 그 중 일부분을 내가 선택하는 것 아닌가. 무얼 말하고 행동하는가, 그 사실의 영역을 찍은 후 그 사실 덩어리 속에서 어떤 걸 취할 것인가, 이 사람의 말 중 어느 것이 사실의 진수인가를 선택하는 건 감독인 내 몫이다. 세진 형의 부모님도 증언을 하셨었고, 병원에서의 상황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 증언 역시 사실이고 본인들도 우실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것을 고려하면 그 장면들은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게 바로 진실이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선택을 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찍는 거라 얘기하지만 사실을 얘기해서 과연 뭘 할 건데? 그 뒤에 있는 진실을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보면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실에서 어긋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각각의 증언에서 아귀가 서로 안 맞는 부분들도 있지 않는가? 누구는 8시라 하고 누구는 9시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맞추지 않고 그냥 그대로 넣었다. 그렇게 기억하는 것 자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차원에서의 그런 소소한 어긋남은 핵심이 아니다.

-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여기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이제껏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의 함정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찍는 것. 그 많은 에피소드나 사실 중 내가 보는 진실은 뭔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냥 쭈욱 사실을 찍는답시고 찍는다. 자신의 진실의 관점대로 장면을 선택하고 그걸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거다. 사실만 나열한다면 받을 비판도 없겠지.

- 결국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보는 진실이란 얘기인가?

그렇다. 각자가 보는 진실인 셈이다. 저것은 거짓이고 저것은 참이다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같은 소재에 대해 찍는다면 다른 진실이 나올 것이다. 역사는 완전히 절대적으로 객관화될 수는 없다. 세상을, 사건을 바라볼 때 확실히 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단면들이 합쳐져야 그것이 전체가 된다. 다양하고 다른, 상반된 관점들이 여럿이 있어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광주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면 광주 영화도 다를 거다. 다 뒤집을지도 모르지.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네마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관점을 제시하며 이렇게 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화려한 휴가>는 과연 누구의 관점으로 만든 영화인가? 누군가에겐 광주의 정신에 근접도 못한 채 권력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고 민주화 운동도 지금 누구의 관점대로 서술된 것인가?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죄 같은 건 과연 누구의 어떤 관점으로 정리돼 버렸을까? 다른 사람 눈엔 전혀 어이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내가 보는 관점은 그렇다. 어떤 사람들에겐 90년대에 일반화돼 있던 광주 다큐멘터리 같은 게 객관적인 거라 여겨지겠지. 아무 비판도 있을 수 없는, 그냥 짜깁기된 화면들 말이다. 과거에 이랬고 이런 사건이 이랬고 우린 지금 민주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식의. 과연 그게 지금도 유효할까? 그런 건 객관적인 게 아니라 아예 시점이 없는 것이다.

- 다음 작품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중인가?

시각장애인과 카메라와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다. 극영화를 하면서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과거는 낯선 나라다>를 만들면서 찍는 카메라와 찍히는 대상에 대한 상호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카메라가 내가 가진 눈이 되는 것 같고, 인터뷰이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 같기도 하더라.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등장하는 영화들은 의례 항상 지팡이를 들고 불쌍한 모습으로 훌쩍대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한탄하고, 그러면 사람들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식의 영화들이다. 왜 이렇게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봐야 하나. 그들도 엄연히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랑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죽네사네 하면서 산다. 그리고 이미 시각을 잃어버렸는데 그냥 그 안에서 살아야지 자꾸 완전한 세계가 여기 있고 당신들은 불완전하다는 식으로 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우리야 그 사람들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것뿐인데, 그걸 못 하면서 동정만 하고 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발언하는지 찍고 싶다.

내가 카메라로 찍을 때 이 사람들 역시 정면으로 응시하며 찍을 수 있을까? 못 찍을 거다. 그건 폭력이 된다.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찍는다 해도 이미 그건 우리의 고착화된 시선이다.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찍게 된다. 그들의 눈 자체가 이상하고 불완전하다 생각하며 어색해하는 거다. 그렇기에 내가 이번에 만드려는 영화는 그들을 존중하며 어떻게 찍을 수 있을지, 이들은 어떻게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볼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 영화는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매체인데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찍기가 힘들다. 처음엔 이 시각장애인이 보는 걸 카메라가 찍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못 찍을 거라는 게 지금의 내 결론이다. 문제해결 지점을 찾는 게 아니라 그가 보는 걸 내가 찍지 못한다는 것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 역시 '나는 본다'고 표현하며 경계를 넘으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보지 못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 경계 내에서 그냥 인정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영화란 생각을 지금은 한다. 경계를 넘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넘어선다는 건 힘든 욕망 아닌가. 하지만 경계를 정리한다는 건 그만의 성찰이고 성장이다. 그러니까 이건 다큐멘터리보단 극영화에 더 어울린다. 경계를 인정하고 그저 자신 안에서 살 뿐이라는 것, 카메라는 그 사람의 바깥에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상호 그걸 인정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다큐멘터리를 다시 찍고 싶은 생각은 없나? 꼭 만들어보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찍고싶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역시 펀딩의 문제 아니겠는가. 예전엔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게 편했는데 요새는 아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젊었을 땐 사회적 문제에 관심 많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적인 문제나 철학, 실존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는데 나는 반대다. 내 영화를 봐도 알겠지만 오히려 확장되고 넓어진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다. 거기에 영화의 힘이 있다. 개인에 파묻혀 있어 거기에 대단한 게 있는 듯 치장하는 것, 사회를 보는 건 촌스러운 거라는 식의 생각이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역시 광주다. 총체적 시선으로 광주항쟁을 정리하고 완벽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그러던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부족함이 많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점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완벽하게 다루는 건 하느님만 하는 거지. 나는 나의 진실이 담긴 광주를 그리고 싶다. 누군가는 그의 진실대로 또 다른 광주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런 게 쌓이면 사람들이 이것저것 보면서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 물론 이상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누구 한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하면 될 텐데 왜들 안 할까? 나보다 돈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면 좋을 텐데.

-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상처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거야말로 오만 아닐까. 자신을 낮추면 된다.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쟈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영역 속에서 하면 되는 거다. 뭘 두려워하나? 각자는 그냥 한 인간일 뿐인데 뭘 다 정리를 하나? 투쟁도 자기가 호흡하는 인간으로서 하는 거지, 자기로 인해 세상이 변하고 뭐 대단한 걸 이루고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

- 기록이란 게 한번 남으면 계속 남는 건데,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면 되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리서치 하고 사람을 만나보고 어떤 시점이 좋을지 고민하고, 이게 정수다 생각되면 밀고 나가면 되고. 그럼 누구는 너무 투쟁적이다, 너무 시적이다 욕하려나.

-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예전엔 거장 감독들의 후기작들을 좋아했다. 미장센이 잘 돼 있고 형식적으로 잘 짜여져 있는 영화들, 예를 들면 파졸리니의 후기작, 피터 그리너웨이의 장중한 영국식 작품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과 같은 후기작들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엔 초기작들과 다큐멘터리들이 좋아진다. 그 안에서 진실들이 느껴지는 영화들 말이다.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멋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어떻게 접근하느냐, 진실을 어떻게 담을 것이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요즘 내 고민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것이다. '나는 본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내게 카메라는 뭔가. 예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 했던 장-뤽 고다르의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요즘엔 마음에 와닿는다. 그의 영화들 보면 유럽의 실존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뒤로 가면서 굉장히 넓어진다. <아워 뮤직> 같은 영화를 보라. 사회, 인류, 이런 거에 대해 너무나 고집스럽고 맑은 느낌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저렇게 안 해도 사적으로 멋을 부릴 수 있고 더 멋지게 나갈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투박스럽게 자꾸 고민할까, 나이가 들었는데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구나, 그런 부분들에서 감동을 느낀다. 영화 매체의 실험도 계속하면서 주제나 소재 면에서 자기가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주제넘은 말이지만, 나도 한 측면으로는 화가가 그림 그리듯 이미지라는 게 뭘까 뭘 재현할까, 카메라는 뭘까, 이런 문제가 많이 고민되고, 주제 면에서는 좀 더 예전보다 넓어지고 있구나 여겨진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자신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인가보다. 예전엔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남이 요구하는 대로 가야 성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이 들면서 그런 데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이런 변화, 스스로 마음에 든다.

2009/09/28 12:41 2009/09/28 12:41

2008년 3월이니 벌써 일 년 반 전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신동일 감독을 만나 단독 인터뷰란 걸 했다. 그간 누군가의 인터뷰에 따라가거나 한 적은 있었어도, 내가 내 이름을 걸고 혼자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쓴 건 처음이다. 무척 많이 떨렸고 긴장했다. 인터뷰는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됐고, 그걸 풀어서 기사로 쓰는 데만도 몇 일이 걸렸다. 그나마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1/3 가량이 잘렸다. 제목도 내가 아닌 데스크에서 붙인 것. 당시 신동일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만들어놓고 1년이 지나도록 개봉 날짜를 못 잡고 있었다. 우연히 모니터링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반 년도 더 지나서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잠깐 극장에 걸리는 둥 마는 둥한 모습으로 개봉했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은 세 번째 영화 <반두비>를 내놓았다. 약간 다른 이유, 좀 슬픈 이유로 화제작이 됐지만 흥행에선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만든 영화 세 편이 모두 우여곡절을 겪었고 고난의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고난들이 감독에게 오히려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 사이 신동일 감독은 스스로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갖고 사회적 사안들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차기 한국영화가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 기사가 실린 프레시안 페이지는 여기다.


 2005년 첫 데뷔작 <방문자>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영화계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신동일 감독은 2006년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2006년에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극찬을 받았고 크고작은 해외 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됐다. 그러나 <방문자>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DVD 출시 청원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아직까지 출시되지 못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개봉날짜를 잡지 못한 채 1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잃어버린 1년'이 지나고도 구체적인 개봉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 다만 지난 2월말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한정된 관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 시사회가 열렸을 뿐이다. 평단과 영화제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극장 개봉이 이토록 어렵고 DVD 출시조차 용이하지 않은 바로 이 현실이야말로 '한국영화 위기론'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모니터 시사회장에 참석했던 프레시안이 신동일 감독을 따로 만나 비교적 긴 대화를 나눈 이유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어떤 영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예준은 군대 시절 알게 된 재문과 그의 미용사 아내 지숙의 뒤를 봐주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예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취업이민을 준비하지만 재문이 삼촌에게 맡겨둔 이민비용을 날리게 되면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편 지숙이 미용박람회 때문에 파리에 가 있는 동안 예준의 실수로 재문과 지숙의 갓난아이가 죽고 만다. 지숙에겐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모든 죄를 덮어쓴 재문은 아이의 죽음과 사체 유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옥살이를 하게 되고, 지숙은 예준의 후원 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마침내 재문이 출소하고 지숙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향해 치닫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 <세븐 데이즈> 등에 출연해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박희순이 재문 역을,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뉴하트>에 출연한 장현성이 예준 역을 맡았고, <메디컬 기방 영화관>으로 주목받은 홍소희가 지숙 역을 맡았다. 2006년 제작되어 그 해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후 홍콩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상태다.



- 영화 개봉이 왜 미뤄지고 있는가?
이 영화의 배급사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서 작년에 투자 혹은 배급한 영화들 성적이 신통치가 않아서 내 작품을 비장의 무기로 너무 아끼는 것 같다.(웃음) 하지만 최근 <세븐 데이즈>와 <더 게임>의 성적이 괜찮았으니 상반기 개봉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 영화계 사정이 그만큼 안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이미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06년 부산영화제 이후 홍콩영화제를 비롯해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미국 시애틀과 시카고, 호주 멜버른 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프랑스에는 판권도 팔린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보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됐으면 좋겠다.

- 2006년에 개봉됐던 <방문자>의 경우엔 DVD 출시가 늦고 있다. 못 본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에 수출돼 아마도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시가 될 것 같은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판권을 갖고 있는 회사의 여러 사정들이 얽혀 있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보다 DVD로 볼 관객들이 더 많을 것 같기에 빨리 출시됐으면 하고 있지만 상황이 풀리지 않고 있다. 아마도 늦어도 5월 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방문자>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저예산 비상업영화 계열의 작품인가.
꼭 그렇지 않다. 제작비를 굳이 밝힌다면 정확히 11억 2천만원이 들었다. 다른 상업영화의 1/3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그만큼의 영화적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고 자부한다. (내 영화로서는 드물게) CG까지 사용한 영화다. 어쨌든 <방문자>의 예산이 1억 3천이었는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10배로 오른 셈이다.

- 영화가 상당히 '386스럽다.' 주인공들이 386세대여서 그런가? 궁극적으로 386세대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영화속 주인공들은 사실 386이라기보다는 그 바로 다음 세대(X세대라 할지 N세대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에 해당하는 나이다. 하지만 굳이 386뿐 아니라 더 젊은 관객들, 그리고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아본 부부 관객들 역시 이 영화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 영화속에 <철학에세이>같은 책을 굳이 보여준 것은 뭣때문인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게 97년말 IMF가 터진 직후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그 때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더욱더 공공연하게 신자유주의화된 세상이지 않는가. 주인공 예준이가 예전에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이 키워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랬던 인물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에 종속되는 상징성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묘사들은 전적으로 386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와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의 연령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이 영화에 설정된 맥락을 그렇게 볼 관객들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 친구관계나 가족관계, 부부관계 부분을 유념해서 볼 관객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다층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꼭 그런 틀로만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 당신은 영화들이 386 영화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지만, 전작부터 이번 영화까지 모두 386 먹물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립구도가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계속 붙잡고 있는 주제인 셈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길 나도 바란다. 내 자신도 386, 먹물이다 보니 내 나이 또래나 비슷한 세대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천착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다. <방문자>는 바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지나치게 홀대받고 억눌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영화였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역시 예준보다는 재문과 지숙 커플, 즉 민초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고, 여기엔 나를 비롯한 지식인에 대한 자기비판의 성격이 담겨져 있다.

- 인물들마다에 계급성을 부각시켰다.
그렇다. 일단 예준은 그 가족을 위해 보상을 하는 방법이라고는 금전적인 것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다. 예준이 건네준 통장에 과연 얼마가 들어있었는지는 감독인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지숙은 사정을 모른 채 예준이 준 돈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 우먼이 됐다. 미용실 계단에서 지숙과 공사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나란히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지숙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일종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지숙이 한국인 인부나 이주노동자와 일종의 동질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역을 맡은 배우가 이전에 연기 경험이 없는 분이라 결국 한 컷을 뺐기 때문에 약간 비약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약간 묘하면서 느낌이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에서 칼 맑스가 언급된다. 칼 맑스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 단편영화인 <신성가족>도 맑스와 엥겔스의 논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 대부분이 그렇듯 광주 학살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맑스를 접하게 됐는데, 맑스는 내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데에 지적,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워낙 매도도 많이 당하긴 했지만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가 둘이나 굶어죽는 등 비극적인 개인사를 갖고 있기에 존경심뿐 아니라 연민이 함께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한 여론조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맑스가 꼽히기도 했지만, 맑스가 던졌던 문제의식은 요즘에 와서 더 유효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모두들 한물 갔다고, 철지난 이야기라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그 정신, 다르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필요하고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넣은 건 아닌데 하다보니 맑스에 대한 언급이 계속 들어간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빨갱이라 할 사람들도 있겠기에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2018년에 <칼>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0주년이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해서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웃음) 인물 감정이입이나 어떤 이익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미화를 하기보다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맑스의 인간적인 결함이나 희극성 같은 걸 다루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각각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점들은 무엇인가.
영어로 표현을 해보자면 예준이가 changed, 즉 변질된 인물이라면 재문이는 not-changing한 인물, 즉 일관되고 우직하며 안전 지향적인 인물이고, 지숙이는 changing, 스스로 변화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런 식으로 범주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대사회의 정치와도 관련되지 않나. 재문은 현상유지파고 예준은 타락한 인물이라면 지숙은 이런 걸 깨려는 인물이다.

- 화면에 불러오는 인물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건 현재이면서 항상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래가 함께 있다.
아무래도 에필로그에서 지숙이 임신하고 있는 장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도래하는 건 우리 세대에는 불가능하다 해도 다음 세대에서는 이뤄야 한다는 염원을 갖고 있다. 나도 한때 80년대 후반 학번으로서 이상을 외치기도 했지만 그것이 불과 몇 년 새에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람시가 얘기했듯 "지성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의지로 낙관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이것이 내 작품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한국 감독들 중에서 나만의 차별성이기도 하고.

- 굳이 아이가 죽는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뭔가?
그냥 그런 상상을 했다. 잔혹한 상상인 것도 사실이고 약간 변태적이라 할 수도 있고. 나도 우디 앨런처럼 일 주일에 한번씩 정신분석을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97년말에서 98년에 그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이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싶어 2, 3년 그냥 묵혔던 아이디어다. 언제나 현실이 가장 센 것이고 현실은 상상을 압도하는 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에 다시 그 아이디어를 꺼내면서 영화에 사용했다.

- 노골적인 출산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기술적으로 편집 등을 이용해서 컷을 나누거나 해서 속이지 않나. 그런 식으로 눈속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숙이 출산하는 장면이 있어야 이후에 드라마 전개나 인물의 심리 등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거라 여겼다. 다소 비호감스러운 장면이긴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촬영하기도 힘들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지숙이 애를 잃고 나서야 아픔 등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이 영화가 상당히 관찰자적 시선을 갖고있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불친절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초현실적인 장면들도 있기는 하지만 출산 장면에서 사실적이었으면 했다. 실제로 내 딸이 태어났을 때 내가 직접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출산 장면이나 목욕 장면, 모두 내 실제 경험에서 나온 디테일들이다. 솔직히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 자궁을 직접 보진 못했다,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찍어버렸다.

- 배우들의 연기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가?
박희순의 경우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의 거의 전부를 표현해 내더라.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내가 손쉽게 오케이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다른 걸 주문하면 그걸 그대로 해보이는 매우 흡수력이 강한 배우였다. 홍소희는 연기 경험과 절대적인 인생 경험이 적은 신인이라 촬영하기 전부터 처음부터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럼에도 매우 헌신적으로 열심히 해주어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방문자>로 강지환을 발굴한 것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로 홍소희를 발굴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장현성의 경우는 처음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연기 톤이 많이 달라 당황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장현성의 연기가 예준을 훨씬 더 인간적인 결점이 있는, 더욱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더라. 결국 장현성이 만드는 예준에 내가 수긍하게 됐다.

- 무명 내지 조연이었던 강지환과 박희순, 장현성, 홍소희 모두 주연급으로 성장하고 유명해졌다. 배우 발굴에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한테 그런 안목이 좀 있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도 송강호나 설경구, 문소리 같은 배우들을 발굴하지 않았는가. 나 역시 앞으로 적어도 주인공 중 한 명은 반드시 신인으로 가겠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다. 스타배우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신인 중에 좋은 배우를 발굴하는 것 역시 감독인 나의 책임 내지 의무라 생각한다.

- 당신 영화는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가?
<방문자>에 코미디적 요소가 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스릴러 혹은 누아르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 일상적인 드라마 형식이다. 인생 자체가 하루는 코미디 같기도 하고, 하루는 신파 드라마 같고 하루는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인생 자체가 장르를 벗어나는데 하나의 장르로 승부를 보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도 너무 경직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번쯤은 장르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두 작품을 했으니 좀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스케일이 크건 작건 내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든든한 제작자와 지속적인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다. 이안 감독이 그렇게 성장한 것도 데뷔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산이 어떻게 되든 책임져주는 제임스 샤무스라는 프로듀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 그 이안 감독이야말로 대중에게 친절한 장르영화의 틀을 사용한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나도 장르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다만 내가 장르영화를 만든다 해도 내 색깔은 충분히 묻어날 것 같다. "신동일은 어떤 장르를 만들든 고유의 색깔이 있고, 이슈 지향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캐릭터 중심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나가는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다른 평론가가 해준 적이 있다. 나만의 전복적인 시선이나 특유의 꼬기 같은 걸 보장해 준다면 얼마든지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만들어 볼 의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 코엔형제는 장르를 잘 활용하면서도 장르를 뛰어넘고 장르의 법칙을 변형시킨다. 그런 식이라면 나 역시 장르영화를 해보고 싶다. 문제는 내게 제임스 샤무스 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이지만.

-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참 본질적이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글쎄? 영화는 나한테 애증의 대상이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영화를 시작했는가 하면 영화 때문에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영화를 포기한 적도 있다. 애증의 대상이고 극복대상이자 위기의 대상이고, 내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파고들고 싶은 존재다. 아직, 잘 모르겠다.

2009/09/24 22:38 2009/09/24 22:38

프레시안 관련기사 : 어렵고 힘들어? 그럼 십시일반 해야지! - 인디포럼이 채무변제 파티를 여는 이유(새 창으로 열기)

기자이면서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속해있어 저 기사를 쓰는 데에 좀 애를 먹었습니다. 기자의 양심이란 건, 대체로 자신이 설사 적극 지지하고 있는 대상이라 해도 어느 정도 거리를 취할 때 건사하기가 쉬우니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어느 단체에 안 속해있는 게 좋은데... 여전히 고민중입니다. 그러나 제가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여전히 속해있는 이유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것은, 저의 양심을 걸고 지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디포럼을 비판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누구보다도 매섭고 통렬하게 비판하겠다는 의지를 전제하는, 양심을 건 지지란 뜻입니다. 만약 제 양심과 위치가 충돌할 때가 온다면, 그땐 또 그때 가서 가장 현명하고 ‘옳은’ 판단과 실천을 해야겠지요.

인디포럼에서 채무변제 파티를 엽니다. 시절은 수상하고,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이가 없거나 암울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잘 먹고 잘 자며 잘 놀고 잘 웃으며 힘을 내야 합니다. 말만 ‘초대’지, 실은 오셔서 돈 좀 쓰시란 자리입니다. 하지만 같은 만 원이라도, 좀더 보람차게 먹고 마시며 노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인디포럼 채무편제 파티가 바로 그런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밑에 붙이는 웹자보를 참조하시고, 기왕이면 웹자보에 안내돼 있는 계좌로 미리 티켓값을 송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살포시 제 블로그에 비밀댓글을 달아주시면, 파티장 당일 현장에서 티켓을 드리겠습니다. 이 티켓은 액면가 만 원 상당의 술과 안주를 드실 수 있는 티켓입니다. 오셔서 노바리를 찾으셔도 되고 N.을 찾으셔도 됩니다.

indieforumparty_re

2009/09/07 18:54 2009/09/07 18:54

Coco avant Chanel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보석과 옷으로 치장한 귀부인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그녀는 남자 승마복을 개조한 바지정장에 납작하고 심플한 모자를 쓴 차림이다. 에티엔의 초대손님인 귀부인들이 대놓고 '미소년'이라고 부를 정도다. 파리 근교 시골에서 낮에는 재봉사로, 밤에는 싸구려 가수로 일하던 가브리엘 샤넬이 '성공'을 하겠다며 문을 두드린 곳은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남작 에티엔의 대저택이었다. 정부라고는 하나 하녀들과 식사를 하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단기용 섹스상대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뒤 그녀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용을 쓰는 모습이 너무 처절하고 눈물겹다. 소위 '잘난 남자에게 빌붙어 연명하는' 여자들에게 흔히 가질 법한 거부감, 나아가 경멸이 단번에 안쓰러움으로 바뀔 정도다.

'샤넬 이전의 코코.' 국내에서 최근 개봉한 <코코 샤넬>의 원제는 이렇다. 사람들이 샤넬을 다룬 영화에 흔히 가질 법한 기대를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는 제목이다. <코코 샤넬>은 고아원 출신의 가난한 재봉사가 어떻게 패션 제국의 수장이 되었는가, 그 고단한 여정과 치열한 싸움을 치르는 코코 샤넬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미숙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그녀가 귀족의 잠자리 상대에서 영국의 사업가 아서 '보이' 카펠의 정부로 옮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참 처절하고 구차한 젊은 시절의 가브리엘의 삶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젊은 여자관객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접근을 했다가도, 가브리엘의 그 구차한 여정에 불쾌감을 느끼며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드는 것이다. <코코 샤넬>을 만든 감독이 배우 출신의 여자 감독 안 퐁텐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역시 여자감독이라 로맨스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는, "역시 여자감독이라 구차한 여자의 인생의 치부를 제대로 까발렸다"는 선입견을 갖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데에 훨씬 이로울 것이다. 갈 데가 없어 어떻게든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에티엔의 저택에 붙어있는 과정도 처절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든 사랑을 위해서든 어느 쪽에서도 그녀가 머문 곳은 '정부'의 자리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만든 결혼 따위의 제도, 흥!"이라고 외치는 급진적인 자유연애론자 여성에게도 정부, 특히 유부남의 정부의 자리는 껄끄럽다. 내가 사랑을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기성의 권위와 제도를 부정하는 자리이기보다는,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단물쓴물 다 빨리면서도 제멋에 취한 허세의 자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여성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자리가 되기 쉽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이나 연애와 달리, 부르주아들이란 대체로 결혼은 정략적으로, 연애는 정부와 하면서 실질적으로 다부다처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성공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과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다. 언제나 후자를 선택한 이들은 손쉽게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전자를 고수하는 사람들 역시 그 유혹에 시달린다. 혹은 가끔은, 후자를 선택하는 여자들이 흔히 자산으로 삼는 미모와 젊음을 질투한다. 젊고 미숙한 여성이 후자의 길을 가면서 혹여 상대를 살짝 잘못 짚고 서투르게 간을 보았다가는 무지막지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초기 작품들도 대체로 그런 젊은 여자들을 비웃는 영화가 주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이런 식의 갈등과 야심 사이를 적절히 타협하고 봉합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은 결혼'에 대한 환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전자의 여성들이 후자의 여성들에게 갖는 경계와 경멸은,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다른 여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의 '가상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경계와 경멸은 어느 순간 매우 손쉽게 연민과 이해로 전화되곤 한다. 그러고 보면 <코코 샤넬>을 만든 안느 퐁텐 감독의 시선은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이 양면의 시선을 고루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미 전작 <프라이스리스>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샤넬로 몸을 휘감은 전력이 있던 오두리 토투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퐁텐 감독의 의도를 한층 강하게 설득한다. <프라이스리스>에서 오두리 토투가 맡았던 캐릭터의 진짜 정체는 '꽃뱀'이었다.

Coco avant Chanel

영화의 말미에 비로소 제시되는 "코코 샤넬은 일을 하지 않는 일요일을 가장 싫어했다"는 자막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짐작하게 된다. 샤넬을 진정으로 구원한 것은 상류사회에서의 더부살이도 연애도 아닌, 일, 그러니까 '노동'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그러므로, 샤넬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 결국 '노동의 자격',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신의 노동물에서 소외되는 일반적인 임노동자가 아닌, 장인으로서 노동하는 자가 되는 자격과 여건을 갖추는 과정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남자옷을 입은 채 귀족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샤넬의 모습에서 온몸으로 사회와 부딪치고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샤넬이 결국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남자옷을 입고 다니긴 하되 지배계급 남자들의 지위를 정말로 위협하지는 않아서였을 것이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힐러리 스웽크가 잔혹하게 살해된 것은 그녀가 '감히 남자들의 영역을 침범한' 데에 대한 보복과 응징이 아니었던가. 그에 비하면 샤넬의 남자옷 차림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페미닌한 옷을 입지 않는다고 그에게 툴툴대는 에티엔의 태도가 딱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새로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아내와 딸들에게 기꺼이 사줄 만한 옷을 만들어 제공한 셈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샤넬의 성공은 어쩌면 귀족 시대에서 부르주아 시대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간 유럽에서 복장과 표식, 그로 인한 '인간의 몸에 두른 상징'의 표준을 귀족의 것에서 부르주아의 것으로 바꾸는, 시대적 전환을 마지막으로 장식한 공로의 결과라 할 수도 있다. 바닷가의 억센 어부 노동자들의 작업복에서, 고아원에서 살던 시절 제복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의 소위 '심플한' 옷은, 귀족의 아내보다는 부르주아의 아내와 딸들에게 일차적으로 어필하는 옷이었다. 지금도 샤넬을 선호하는 이들은 전문직 커리어 여성 혹은 소위 '비즈니스 우먼'이다. 샤넬의 옷은, 페미니즘 이전의 시대에도 남자 노동자와 다르지 않게 땀을 흘리며 육체노동을 해야했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평상시 즐겨입을 만한 옷도 아니었다.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샤넬에 대한 칭찬이 지칭하는 '여성'에 과연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얼마나 고려되었겠는가. 언제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패션 거장들이 만들어 트렌드를 일으킨 명품 디자인이 세상을 몇 바퀴나 한참 돈 끝에 세속적으로 한참 하락한 버전의 옷을 입는다. 적어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의 대사에 의하면 그렇다.

재클린 케네디 오아시스가 즐겨 입었고 심지어 케네디가 죽었을 당시 입었다는 옷,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소위 '청담동 며느리룩'이라 통칭되는 옷이 바로 샤넬 트위드 정장이라는 사실이 뜻하는 것. 그리고 오두리 토투가 젊은 시절의 샤넬을 연기할 배우로 낙점을 받았다는 것. (물론 샤넬의 현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오두리 토투 대신 페넬로페 크루즈를 원했다지만.) 이 모든 것이 '샤넬'이라는 대명사가 드러내는 복잡미묘한 빛깔들과 연결된다. 적극 지지하고 존경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은근하고 뒤틀린 호감을 갖게 되는 대상. 그렇기에 매 상품마다 붙어있는 그 비싼 가격에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는 대상. 샤넬은 그런 사람이다. <코코 샤넬>이 새삼 상기시키는 것 역시 바로 그런 아이러니다.


ps. 프레시안 기사 본문(새 창으로 열기) 보기

2009/09/04 16:08 2009/09/04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