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The Road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아무래도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여파 덕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일부 작가에 대한 심각한 편향이 존재하던 국내에서 폴 오스터를 제외하면 현대 미국작가가 이토록 주목을 끈 적이 거의 없다.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던 코맥 맥카시의 작품 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소설이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된 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2006년작 [로드]가 출간됐다. 출간 직후부터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종합집계에서도 외국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덕에 책이 떴다고 말하기엔 작가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코맥 맥카시는 그저 '영화 덕을 본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에 영감을 준 뛰어난 작가'라 불리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드]가 단숨에 읽기에 결코 쉽지 않은 책인 건 사실이다.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 결국 중간에 책장을 덮고 말았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길을 걷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바닷가 어딘가를 향해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길을 걷는 이들은 숲에서 추위에 떨며 잠이 들고 몇 날 몇 일을 굶은 채, 혹은 과일 통조림 하나로 겨우 끼니를 떼운 채 여행을 계속한다. 책에서 묘사되는 그들의 주변 풍경 역시 온통 잿빛이다. 하늘도 강도 길도, 심지어 방금 내려 쌓인 눈도 잿빛. 물론 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오랫동안 먼지와 때를 뒤집어쓴 잿빛이고, 이들의 '떡진 머리'와 거의 목욕을 하지 못하는 몸 역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잿빛이다. 건물들은 버려져 있고 길은 폐허가 돼 있다. 곳곳에 역시 잿빛으로 변한 사람의 해골들이 늘어서 있다. 혹시나 다른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경계부터 하며 몸을 숨긴다. 아버지는 손에 권총을 단단히 쥔 채 아들을 다른 팔로 감싼다. 이 소설에서 색깔이 언급되는 장면은 부자가 어쩌다 코카콜라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 장면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거리는 이토록 황량하고 이들은 이토록 고통스럽게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아버지와 아들의 시점을 오가는 이 소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직설법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리고 부자간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종류가 됐건 대재앙이 지구를 휩쓸고 간 자리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빈 집에 남은 감춰진 통조림을 챙기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고있다. 문명이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이들은 문명의 흔적만을 뒤쫓고 추억할 뿐이다. 편안한 수면과 풍족한 식사마저 그저 과거의 추억이 돼 버린 세상.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오늘 이렇게 끈질기게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도, 동기도 사라진 세상.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죽이거나 도망치고 봐야 내가 죽지 않는다는 공포가 당연한 세상. 끊임없이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라 말하지만, 정작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우연히 마주친 어린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것을, 혹은 간난아이가 다른 어른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생존 기술'로 소년에게 가르쳐야 하는 세상.

남자의 아내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자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목적은 어린 아들이다. 그렇기에 만약 자신이, 혹은 아들이 죽게 될 상황을 대비해 둘이 함께 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총알을 권총에 남겨둔 상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는 소설 속 세상은 그저 '절망'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코맥 맥카시는 이런 절망의 풍경을 두 사람이 여정 중 겪게 되는 일들과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묵직한 말이었는지, 아니, 일상에서 우리가 이 무시무시한 '절망'이란 단어를 얼마나 남용하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로 제작중인 <로드>. 딱 내가 생각한 비주얼.

고작 두 사람이 길을 걷는 게 내용의 전부인데도,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긴장과 숨가쁜 호흡, 그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계속된다. 아마도 단문으로 툭툭 끊어지는 건조한 문장들 덕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눈앞에 그들의 모습이 당장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묘사가 생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고 모텐센 주연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생생함이 더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이 잿빛 세상 속에서 그래도 오늘의 삶을 끈질기게 계속하는 두 사람의 서로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낭비되는 말이 없는 지극히 간결한 토막 대화들 속에서, 우리는 부자관계를 넘어서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동지이자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절박하게 의지하고 있는지 새삼 확인한다. 코코아 한 잔을 상대에게 챙겨주는 사소한 행위가 이 소설 안에서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된다. 소설 속 세상은 다른 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권하거나, 상대를 위해 통조림의 과일 한 조각을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책의 광고가 강조하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의 정체는 다 읽고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다. 실제로 그 광고문구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가 '겨우...?'라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난데없이 뺨을 흐르는 이 눈물은 무엇이며,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을 먹먹하게, 눈을 뜨겁게 만드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 초라한 장면이 이토록 깊고 촉촉한 잔향을 남기는 이유는. 평소라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너무나 깊은 절망 끝에 비로소 찾아온 것이기 때문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시대에 새로운 걸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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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새 창으로 열기) 올라감

2008/08/20 16:56 2008/08/20 16:56

(와, 이 폴더에 글 올려보는 게 대체 몇만 년 만인지.)

간만에 뉴욕타임즈 북섹션에서 날아온 RSS 목록을 보다가, 대사 한 마디 말 한 마디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졌다는 Suzy Lee의 새 그림책 [Wave]에 대한 서평에 꽂혔다. 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이 그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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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저작권은 당연히 Suzy Lee 씨에게 있습니다. 소개를 하자니 어쩔 수 없이 저작권 침해를...;;

그림 자체도 멋지고 색감도 너무 좋아서 첫눈에 와, 했는데, 또 저 여자아이의 저 조만한 옆모습 표정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순간 반하고 말았다. 살짝 까진 엉덩이도. 한국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는 저자, Suzy Lee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RSS로 들어온 글을 무심코 클릭해다가, 저 그림을 보고 한순간에 반한 것뿐이다. 뉴욕타임즈에 호평이 실린 한국 출신 작가, 라는 참 웃기지도 않은 것에 나 역시 혹한 게 사실이다. 어쨌든, 저 그림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서평에서 추측되는 책의 줄거리도 궁금증 가득 자극하는 게 사실이고.

Suzy Lee, 과연 당신은 누구입니까.

2008/07/13 01:31 2008/07/13 01: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상문이라기보단 잡상이에용

인문학 도서가 판매량이 1,000권이 넘으면 대박을 친 것인데, 이 책은 만 부를 넘겼고, 사회에 조그마한 파장을 일으켰고,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통용되게 만들었다. 책이 나오기도 전부터 기대를 했던 이유는 세 가지다. 일단 두 저자, 박권일 씨와 우석훈 선생의 블로그를 드나들며 그간 책의 밑작업이 돼가는 것을 지켜봐왔고, ‘세대론’으로서 접근을 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 분야는 영화인만큼, 몇 년 전부터 한국영화에 있어 또렷하게 드러나는 386세대의 어떤 특성(나는 386 남성 감독들이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고 보고, 그것의 정점이 <괴물>이었다고 본다.)을 흥미롭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서, 내가, 그리고 내 주변 (여자)친구들이 대부분 88만원 세대로 이미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생년과 나이상 나는 소위 ‘X세대’에 속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저자들의 세대 구분은 남성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만큼, 나이로는 X세대인 내가 실질적으로 88만원 세대에 속하면서도 88만원 세대와 또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터이다. 원래 세대론이라는 건 매우 ‘일반적’인 큰 틀의 얘기인지라 구체적인 개인으로 들어가면 제각각 얘기들이 달라지고, 꼭 나이만으로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읽는 사람들이 이 점을 기억하고 읽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세대론 이야기로 논점이 전개되다 보면 읽는 사람도 어느 순간 세대론에 내 상황을 끼워맞추며 읽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건 저자들의 잘못은 아니고, 읽는 사람만의 잘못도 아니다. 하여간에.

다양한 반응들을 체크하는 게 꽤 재미있지만, 그 와중에도 참 복잡한 감정들과 복잡한 생각들이 든다. 예를 들어 “경쟁에 유리하도록 나의 스펙을 높이겠다.”는 결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상황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만 뇌관을 건드리는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도 얼마든지 납득할 만한, 솔직한 반응이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데 남, 내 세대 전체, 대한민국, 세계평화를 상상하는 건 무책임하게 오지랖만 넓은 것일 수도... 있다. 책에 대한 까칠한 몇몇 반응을 봤는데, 난 그 반응들이, 내가 가끔 소위 ‘리얼리즘 영화’에다 대고 내놓는 반응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세상 살기 퍽퍽한데 아무렴 그걸 모를까 봐 영화로 굳이 세상 이렇다고 보여주나, 싶은. 많은 이들이 모범답안처럼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글쎄... 우리가 은밀히 원하는 건, 단 한 시간 반이라도 지금 현실의 퍽퍽함을 잊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마취제인 경우가 많다. 뭔가 희망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내 현실에 대한 정확한 (남의) 분석은, 아픈 가시라서 오히려 버럭 화를 내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까칠한 반응들이, 가슴이 좀 아프다. (하지만, 나이 서른이 넘고도 그렇게 찡찡대는 거라면 똥구멍으로 처먹은 자신의 나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 책에서 주목한 건... 글쓴이가 매우 심상한 듯 슬쩍 던지고 지나가는, ‘스타벅스 대신 20대 사장이 경영하는 구멍가게 커피숍을 가는 것’이, 의외로 강력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대기업과 공기업에 보란 듯이 취직해 연봉 몇 천을 받고말고 하는 건 소수이고, 우리 부모님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 그러니까 대학 나와서 동네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것(품목이 식료품이 됐건, 고급 이탈리아 요리가 됐건)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가슴에 묻어두다가 구멍가게들 작살나는 것보고 그마저도 꿈꿀 수 없게 된 것이긴 하다. 우석훈 박사는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동네 미용실의 숫자의 변화의 추이가 FTA의 영향 결과를 나타낼 것이라 했는데, 당장 그 책을 읽을 때엔 어머나? 했지만 지금에서야 이해가 가는 건, 동네 미용실이라는 게 결국 자기 가게를 가진 자영업자의 한 예라는 사실이다. 시내에 나가면 열 걸음마다 스타벅스, 커피빈, 파스구치 등의 대형 체인망이 있고, 특히 강남대로의 경우 스타벅스가 ‘지들끼리 경쟁하느라 장사 안 될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지천에 깔려있는데, 이런 거 말고 커피맛으로 승부를 내버리는, 자기 이름 내세운 동네 작은 커피숍들의 존재, 나아가 대형마트가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그간의 신용으로 장사를 하는 작은 가게의 아줌마, 아저씨들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이건 의외로 소비 패턴의 꽤 큰 변화를 함축하고 있고, 그리 쉽지도 않은 일이다. 우리의 소비 패턴은, 종목이 뭐가 됐든 대형 체인망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버거킹, 롯데리아, 시즐러, 베니건스, 세븐스프링스, 스파게티아, 소렌토, 별다방, 콩다방, 투썸플레이스, 뚤레주르, 크라운베이커리, 이마트, 카르푸, 피자헛, 도미노 피자, 이화주막, 그리고 각종 편의점들. 하다못해 1,500원짜리 토스트를 먹을 때에도 이름 없는 집보다는 이삭토스트로 가서 줄을 서는 게 대부분의 심리이다. 이건, 편리함 때문이다. 우리가 대형 체인망을 이용하는 건, 어디를 가나 내가 예상한 바로 그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서비스를 받으면 기분이 물론 좋지만, 예상 이하의 서비스로 화가 나는 상황을 막고자 하는, 일종의 ‘모험으로 인한 발견보다는 그냥 평범한 수준의 안전’을 선택하는 셈이다. 동네 작은 밥집은, 모르는 동네의 모르는 가게의 경우 대실패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예컨대 패스트푸드 체인망이라면 그런 도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 뛰어나진 않더라도 내가 예상한 딱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을 테니까.

그런데 특히 그 대형 체인망들이 여성 고객을 주요 타겟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곳들이 일종의 ‘익명성’을 통한 자유로움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대형 매장이 보장해 주는 게 그런 익명성인데, 특히 사회에 진출해 자기가 번 돈을 자기를 위해 쓰기 시작한 거의 첫 세대인 지금의 젊은 여성들(높게 잡아봤자 30대 중반이다)에게는, 그렇게 여성들에게 특히 배려를 해주면서 익명성을 보장해줄, 그리고 그 익명성을 통해 남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내 소비를 즐길 수 있는 소비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소위 ‘된장녀’ 운운 소리를 듣게 되는, 그런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들은, 사실 남성 위주의 소비 공간에서 모종의 위협감이나 불편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모여들게 되는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이용하는 것은, 그러므로 은근한 부지런함과 정보력, 모험심과 위험부담을 요구한다. 어느 곳이건 동네의 작은 가게나 재래시장을 이용한다는 건 한 번의 대실패에, 동선이 무척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소심한 현대인들로서는, 저 주인장이 내 얼굴을 기억할지 안 할지, 나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친한 척을 해야 할지 아닐지, 그랬다가 꽤 민망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아닐지, 걱정해야 한다. 이러느니 결국 대형 매장, 대형 체인망으로 가지, 싶게 되는 건데. 살가운 친절이 어느 순간 위협으로 변할 가능성에 막연한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 혹은 가벼운 거리를 허용했다가 그것이 ‘flurting으로 오해될 경우’에 대한 경계를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더욱, 그저 어딜 가도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과 대형 마트와 대형 체인가게를 더 애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책에서 지나가듯 제시한 하나의 작은 대안은, 실은 그리 ‘작은’ 대안이 아닐 수도 있다.


아 근데 얘기가 어째 산으로 산으로 가는 듯해. 끄응.






ps. 그러고보니 책 감상문은 도대체 얼마만에 올리는 건지, 원.

ps2. 하고픈 얘기가 더 생각나면 잡생각 (2), (3)... 등으로 이어질 거예요. 사실은 디게 많았는데 쓰다가 까먹었음. =.=

2007/12/17 01:09 2007/12/17 01:09
독서문답
from Forgotten City 2007/05/18 23:25

미샤님솔밤님께서 꽤 오래 전에 트랙백을 넘겨주셨는데 죄송하게도 이제서야... ㅠ.ㅠ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바쁜 일도, 심란한 일도 제법 있었네요. 블로그 업데 빈도와 날짜가 보여주듯... (이제서야 쓰는 것에 대한 비굴한 변명!) 5년간 써온 컴퓨터가 얼마 전 사망하시는 바람에 패닉상태였다가 오늘에서야 업글 완료하고서 좀 편해졌습니다. 아직 프로그램 깔 게 남긴 했지만...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네, 뭐, 좋아하는 편이지요.

그 이유를 물어보아도 되겠지요?
재밌으니까요.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많을 땐 다섯 권, 보통은 2, 3권 수준.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소설이죠. 전 서사 중독자거든요.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다른 세계로 가는 관문.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모험이지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게 되는.

한국의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노동강도 높고 야근이 당연하고, 중학생 때부터 입시와 직업을 고민해야 하는 나라에서 책은 부담스럽고 피곤한 취미가 될 수밖에 없죠. 안타깝게 생각하고, 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책을 하나만 추천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정말로 믿었고, 그 믿음에 의해 정말로 계급없이, 직업이 뭐건 자신의 품위와 자긍심을 발견하고 이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평등하게 연대했던, 믿기 어려운 시대가 짧으나마 정말로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죠.

만화책도 책이라 여기시나요?
형태론 책이고, 종류별로는 '예술'이겠지요?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아니면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압도적으로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르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 장르를 그토록 소모적으로 유통시키는 자들(여기엔 작가와 독자가 포함이 될수도, 안 될수도 있습니다만)의 문제가 아닐까요. 소위 '순문학'이라 깝쭉대는 책들 군에서도 쓰레기는 넘쳐나고, 판타지와 무협지뿐 아니라 추리, 호러, SF 등등을 포함한 소위 하위장르에서도 걸작은 넘쳐납니다. 셰익스피어도 당대는 베스트셀러 판타지 작가였어요!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직은.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아직은 모르겠네요. 만약 앞으로 된다면, 서점에서 몰래 숨어 그 책을 사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하루종일 구경할 거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좋아한다기보단, 관심있는 작가들은 많죠. 원체 게을러서 관심있는 작가들 책도 다 못 읽으니까요. 커트 보네것, 마크 트웨인, 존 어빙, 스티븐 킹, 조지 오웰, E.M. 포스터, 보르헤스, ... 최근엔 조너선 캐럴도 추가됐네요. 이밖에도 당장 생각 안 나지만 무지 많아요. 전 누구한테 반하는 데에 선수거든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고맙습니다.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박노인, 다크맨님, ozzyz님, sabbath님, sang님.

2007/05/18 23:25 2007/05/18 23:25

<평전 분야>

존 리드 평전
로버트 A. 로젠스톤 | 정병선 옮김 |아고라 | 2007.3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그 존 리드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7.3
마르케스 자서전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
스탠리 웰스 | 이종인 옮김 | 이끌리오
알라딘 판매가 43,200원, 조낸 비싸구만.

다이앤 아버스
퍼스티라 보스워스 |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허걱 이 책이! 니콜 키드먼 주연의 아버스에 관한 영화의 원작이자 아버스 평전의 지존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고범서 | 대화문화아카데미

카뮈, 지상의 인간
허버트 R. 로트먼 | 한기찬 옮김 | 한길사
새삼 카뮈를 좋아했던 그녀가 떠오른다

내 안의 빨강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 황의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원제는 이게 아닐 성 싶은데... 빨강머리 앤 팬들은 꼼짝없이 낚일 수밖에

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가고싶은 고향을 내 발로 걸어 못가고
안이정선 | 아름다운사람들
위안부 조윤옥 할머니 일대기

스탈린, 강철 권력
로버트 서비스 | 윤길순 옮김 | 교양인
지피지기

인간 루쉰
린시엔즈 | 김진공 옮김 | 사회평론
2권 세트, 루쉰이다!

본회퍼의 삶과 신학
마크 디바인 | 정은영 옮김 | 한스컨텐츠
나치 치하의 독일로 돌아가 저항운동을 한 정통 복음주의 신학자

스파르타쿠스
M.J.트로우 | 진성록 옮김 | 부글북스
신화 속에 재구성된 스파르타쿠스

신념과 비전의 정치가 글래드스턴
김기순 | 한울
아일랜드 자치 법안의 아버지




<문학 분야>

시핑 뉴스
애니 프루 | 민승남 옮김 | Media2.0
이게 애니 프루였구나

보이지 않는 도시
이탈로 칼비노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칼비노다 칼비노!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언젠가 한번은 읽어야 한다만

티가나
가이 가브리엘 케이 |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캐나다 작가의 판타지, 정치적 은유를 담은

평범한 커플
이자벨 미니에르 |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페피타 히메네스
후안 발레라 | 박종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19세기 스페인 작가의 소설이라는데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정영목 옮김 | 해냄

천일일화
프랑수아 페티 드 라 크루아 | 강주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사랑을 믿지 않는 공주를 설득하기 위한 책이라던데

로큰롤 보이즈
미카엘 니에미 |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줄거리도 맘에 들고 출판사 이름도 맘에 든다

2007/03/25 14:08 2007/03/25 14:08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미인의 가면
이나경 옮김, 북앳북스, 2006

무려 2년만에야 출간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의 3권. 2권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넘어왔기 때문에 단번에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음마 라모츠웨는 정부 관료 - 이자 대추장의 친척 - 가 찾아와서 일을 의뢰하는 유명한 탐정이 되었다. 조수 탐정 마쿠치 부인은 2권에서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품게 하더니 3권에 오면 음마 라모츠웨와는 또다른 능력으로 라모츠웨만큼이나 카리스마를 가진 또다른 여자주인공이 된다. 오죽하면, 이 세번째 권이 취하고 있는 제목은 음마 라모츠웨가 아니라 마쿠치 부인이 해결한 사건이다. 게다가 그녀는 매 권마다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데, 1권에서는 그저 비서에 불과했다면, 2권에서 조수 탐정으로서 초짜 탐정일을 시작하고, 3권에서는 유능한 중간관리자로 변신을 한다. 마테코니 씨가 잘 다루지 못하던 날라리 수습공 둘을 어떤 방법으로인지는 몰라도 꽉 잡고 열심히 일하는 애들로 바꿔놓다니. 게다가 마테코니 씨가 직접 맡아서 할 때보다 정비소 운영도 더 잘 되지 않는가. 그러면서 탐정으로서도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준다.

1권과 2권에서 대형사건 하나가 중심 줄기를 이루고 다른 소소한 사건들이 가지를 이루었던 것과 달리, 3권에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두꺼운 줄기 사건이 없다. 각각 음마 라모츠웨가 맡은 '독살미수 의혹'과 마쿠치 부인이 맡은 '미인대회 후보 뒷조사'를 꼽는다고 해도, 딱히 이 두 사건이 중심 줄기를 이룬다고 보긴 어려우며, 이 두 사건만큼은 아니어도 야생소년의 미스터리는 가지 사건으로 보기엔 좀 굵다. 게다가 이 에피소드는 부분과 부분이 앞과 뒤에 너무 벌어져 있고. 게다가 어쩌면 4권에 가서는 주인공이 역전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워낙에 마쿠치 부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지라 책이 좀 많이 산만하다.

그런데 내가 재미있었던 건, 오히려 3권에서의 중심은 의뢰받은 사건이 아니라, 1권과 2권에서는 부수적인 서브 플롯으로만 기능했던,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 사이의 관계의 진행이라는 점이다. 마테코니 씨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영국에서 그토록 사랑받은 이유는, 뭔가 심각한 게 나올 듯 나올 듯하다가 안 나와버리는 데에서 느껴지는 허탈감 그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정말로 마테코니 씨한테 무슨 숨겨진 비밀(...)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우울증이었다니. 아아, 이 책의 앞 두 권을 읽고도 또 속다니, 하며 허탈감을 느꼈다. (2권에서 가정부가 범행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잡혀들어갔을 때 얼마나 허탈했는지를 그새 잊어먹었단 말이냐!) 그런데 그 허탈감이, 싫지가 않다. 뭐랄까, 어쩌면 내가 너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지 않는가, 내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오히려 들 정도였다.

그런데 마테코니 씨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설정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3권의 중심이라고 한 진짜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애의 권태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의 연애를 중심으로 1권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연애의 일반적인 과정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1권 대쉬 및 커플주아 탄생, 2권 연애 초기의 닭살 염장기, 3권 중고 커플의 권태기. 마테코니 씨의 우울증을 핑계로 묘사되는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 사이의 관계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보라. 매일 같이 먹던 저녁식사도 각자 해결해, 만나는 횟수도 줄어, 뭔 말을 해도 무덤덤하고 무관심해, 전화를 해도 시큰둥해, 애정표현도 별로 없어, 출장갔다가 돌아와서도 자기 볼일 다 본 다음에야 만나러 가... 이 커플, 정말 결혼을 하긴 하게 되는 걸까? 막 연애 초기라 그토록 열정적이고 호들갑스럽게 애정표현이 연발되던 2권과 정말 비교된다.

권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느냐 깨지느냐가 귀로에 설 텐데, 맨 마지막, 자신의 '다른 일'을 찾으며 조금씩 우울증에서 헤어나오고 있는 마테코니 씨, 그리고 그를 억지로 끌어 산에 함께 올라 서로 미소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 이들은 어쨌건 첫번째 위기는 무사히 넘긴 것같다. 그러나 서로 대판 싸우고 토라졌다가 화해한 거라면 몰라도, 이런 식의 위기는 두번째 위기를 불러온다는 게, 별로 많지도 않은 연애 경험상의 내 결론이다. 아니, 이들이 오히려 '비 온 뒤 땅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더욱 내밀하고 가까워진다면, 나는 오히려 사랑에 희망을 가질 테다. (... 연애 무능력자 티는 다 내고 있다;;)

3권이 2년만에 나왔으니 4권은 2008년에야 나오려나? 과연 마쿠치 부인의 능력은 어디까지일지, 그 수습공들은 어찌 될지, 음마 라모츠웨와 마테코니 씨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들이 2권에서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한 남매는 또 어찌될지 참 궁금한데, 도대체 4권이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이래서 시리즈물은 완결된 다음에 한꺼번에 사서 한번에 읽어치워야 하는데, 4, 5권 나오길 응원하겠다고 덥썩 1~3권을 사버렸으니, 독자로서는 사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서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도다. 부디 북앳북스에서 4, 5권을 마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내 주시길 바란다.

 

ps. 근데... 2권에선 마테코니 씨가 상의없이 아이들을 데려오더니, 3권에선 음마 라모츠웨가 상의없이 마테코니 씨 정비소로 사무실을 들여가고, 마쿠치 부인을 승진시킨다.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이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작가의 '실수'일까, 아니면 그게 아프리카 식인 걸까?

2006/12/30 04:14 2006/12/30 04:14